"...."
매번 찾아오는 손놈이 하나 있었다.
돈도 없는 인간이 이런 곳에서 뭘 사가려고 난리굿인지 모르겠다.
돈이 없다는 걸 뭘 보고 결정하냐니? 그의 행색을 보아라.
다 떨어진 바지에 갈색으로 윤기가 흐르는 잠바 (원래 노란색이었단다. 윽..)
그리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퀴퀴한 냄새.
그래 그냥 그 행색은 노숙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땐 그렇게 생각했었지.
외형적 특징이라 함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만
저 놈의 신기한 점이 하나 있었다.
예상대로 그는 꽤 잘 빠진 레깅스를 하나 골랐다.
"...얼마요."
"네, 12만 5천 원입니다."
뭐 나온 집에 딸이 있댔나 뭐래나.
여튼 여성용 레깅스는 꽤나 비싼 가격임에도
- 물론 이 매장에서는 가장 싼 편에 속한다.
그는 주머니에서 빳빳한 새 돈으로 12장과 꼬깃하게 접힌 오천 원을 내밀었다.
난 그냥 한숨을 쉬며 쇼핑백에 그 옷을 담아줄 뿐이었다.
"안녕히가세요."
지금까지 관찰한 결과는 이러하다.
첫 번째로 본인이 어떤 물건을 본다. 그리고 절대 팔지 말라고 한 뒤
두 번째로는 한 삼 일 정도 모습이 보이지 않다가
마지막으로 갑자기 나타나 물건을 사 간다는 것.
그리고 특이한 점...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이에 씌워진 금 크라운이 하나씩 사라진다는 것 정도?
아마 그걸 팔아서 살 돈을 모으는 거였겠지.
근데 그 날은 좀 이상했다
'좀'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전에 가을 트렌치 코트를 하나 쓱 보더니만 (B사의 제품으로 가격이 엄청 비싸다.)
갑자기 대뜸 나타나서는 코트를 달라고 했다.
주변에 있는 매장 직원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가 걸은 동선을 따라 핏자국이 있었고, 그의 허리 부분에서 피가 막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과다출혈로 죽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한사코 괜찮다며 코트를 달래서
어쩔 수 없이 제품을 쇼핑백에 담아서 주었다.
이 아저씨 또 현금으로, 신사임당이 그려진 새 지폐 60장을 꺼냈다.
이 손놈의 돈을 구하는 방식이 예사롭지 않아보였다.
한동안 이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한 반 년 쯤 지난 어느 겨울날 나는 직장을 옮겼다.
장신구와 귀금속을 파는 매장이었고, 역시나 같은 백화점 내 매장이었다.
문을 열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생긴 것이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어서오세요, 손님 무엇을 찾으시나요?"
"....."
아무 대답이 없었다. 순간 머릿속에 누군가가 스쳤다.
아닐거라고 생각하며 그 여자를 계속해서 예의주시했다.
그녀는 한참동안 쇼케이스를 둘러보더니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 하나를 골랐다.
"가격이 꽤 나가는데요, 어떻게 계산해 드릴까요?"
"일시불로요."
그녀는 카드를 내밀었다.
"돈이 많으신가봐요? 일시불이라니."
농담조로 건넨 말이었다.
뭐 이 여자는 진지하게 한 질문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글쎄요, 언제 한번 보니까 제 통장에 8억원이 꽂혀 있더라구요."
"정말이요? 그게 무슨 일이래?"
"보험금이에요, 아는 분이 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케이스에 목걸이를 담아서 내 주었다.
웃는 얼굴로 말이다. 놀란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다음에 또 올게요, 그리고 이거 절대 팔지 마세요."
금반지였다.
원래 참 특이한 사람이었나 싶었다만,
역시 그 손놈의 돈 구하는 방식은 너무나도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