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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안녕.
게시물ID : drama_216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밤샘의끝
추천 : 2
조회수 : 30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2/22 16:17:58


한동안 바빠서 미생 리뷰를 못 나누다가, 방금 마지막 회를 봤습니다. 드라마 작가를 욕하는 의견이 상당하더라구요. 작가가 너무 몰입한 나머지 드라마조차도 미생으로 끝마쳤다는 리뷰도 봤으니 사람들의 분노가 손에 닿게 느껴졌습니다. 원작 팬으로서 그 의견들에 90% 공감하구요. 그래서 이 리뷰에서는 제게는 다른 10%의 감상만 이야기하려구요.

예전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절룩거리네를 참 좋아했더랬습니다. 자조적인 가사인데 묘하게 신파라기보다 신기하게 담담함이 느껴지는 노래였거든요.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라는 가사는 아직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가사중 하나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미생 원작을 좋아했던 이유도 완생 아닌 미생인 우리네의 삶을 담담하게 토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미생 원작에 나오는 오 차장이야말로 제일 판타지적인 인물이라고 저는 보거든요. 드라마의 오 차장은 장그래에게 너 때문에 이 프로젝트 하는 거야 하는 오그라드는 멘트를 날릴 정도로 정이 넘치는 인물이 되어버렸지만, 원작의 오 차장은 업무에 있어서는 정말 오버함이 없이 일을 직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오 차장이 자신의 회사로 장그래를 불러들이는 일도 원작과 드라마에서의 의미가 많이 틀려요. 원작에서의 오차장은 본인이 미생인 것도 직시하는 인물의 느낌이었고, 장그래를 회사로 부를 때 조차 담담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오 차장은 본인도 미생이면서 허세를 떠는 것 같은 인물이 되어버렸거든요. 

하지만 사실 처음 드라마를 접할 때부터 원작만을 온전히 보여줄거라는 생각은 포기했었습니다. 그래서 원작에 없는 새롭게 첨가되는 부분들은 그냥 다른 해석으로 생각하며 즐겁게 봤습니다. 무거운 현실을 못 이기고 환타지로 도망친 마지막회는, 영원히 완생을 이룰 수 없기에 우리 삶 속에서 판타지를 찾으며, 못 이룰 완생의 환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모습으로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인디애나존스 30분에서 보인 장그래의 허세는 마치 한껏 틀어올린 장그래의 바뀐 헤어스타일마냥 어색했지만, 그 또한 우리 속 어딘가에 아직도 살아숨쉬고 있을 허세의 흔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런 허세조차 없으면 하루하루 더 답답해질 것만 같은 우리 삶의 모습들이니까요.

바둑은 기타의 게임들과는 다르게 두 플레이어가 판을 끝내기로 합의해야만 계가로 들어가고, 집을 세서 승부를 정합니다. 한쪽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판 전체를 메꾸지 않는한 끝이 없습니다 (인터넷 바둑을 두다보면 그래서 난감할 때가 많죠). 미생인 우리 삶도 어느 순간 그렇게 합의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합의하고, 이 정도면 괜찮은 판이었다고 위로하면서, 다시 다음 판을 시작하는 거죠. 바둑판 위의 내 바둑알이 미생인지 완생인지 평가하는 것조차도 그렇게 주관적입니다. 다른 돌이 절대 들어와서 집을 내지 못하도록 좁게 집 내고 살지 않는한, 상대의 합의가 필요한 거죠. 그 집이 내 집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래서 마지막에 장그래와 오차장의 본 아이덴티티 같은 액션도 허세도, 웃으며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고생한 장그래를 19화 동안, 원작으로 치면 145수 내내 사투를 벌인 장그래의 모습을 봤기에, 마지막에 그 정도 넓게 차지한 집은 장그래의 집으로 인정해줄 그런 상대를 어디선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숨을 참았던 원작과 달리 드라마에서는 턱 하고 숨을 놓아버린 것 같지만 다시 잘 숨을 가다듬고 다음 시즌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음 시즌은 액션 활극이 아니라 우리 삶의 다른 측면을 다시 담담하게 조명해주는 그런 미생 시즌2가 되기를 바랍니다 (원작이든 드라마든요).

결론은, 아직도 미생은 제 마음 속에 올해의 드라마로 남아 있습니다. 드라마를 몇 개 보지도 않았지만, 이 정도까지 제 마음에 접근해온 드라마가 없었거든요.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더 해보면서, 이제 드라마 미생에 안녕을 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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