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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사랑한다는 말
한 점 바람 되어서나
할 수 있는 말
그때에서나 할 수 있는 말
그대는 죽어 나무 된다 하였지
나는 바람 된다 하였네
그대 젖은 잎들 조심스레 닦아주며
그때에서나 할 수 있는 말
사랑한다는 말
그 말
내 죽어 한 점 바람 되어서나
할 수 있는 말
이승훈, 너를 본 순간
너를 본 순간
물고기가 뛰고, 장미가 피고
너를 본 순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를 본 순간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갑자기 걸레였고
갑자기 하아얀 대낮이었다
너를 본 순간
나는 술을 마셨고 나는 깊은 밤에 토했다
뼈저린 외로움 같은 것
너를 본 순간
나를 찾아온 건
하아얀 피 쏟아지는 태양, 어려운 아름다움
아무도 밟지 않은 고요한 공기
피로의 물거품을 뚫고 솟아오르던
빛으로 가득한 빵
너를 본 순간
나는 거대한 녹색의 방에 뒹굴고
태양의 가시에 찔리고 침묵의 혀에 싸였다
너를 본 순간
허나 너는 이미 거기 없었다
김이듬, 이제 불이 필요하지 않은 시각
나는 겨울 저수지 냉정하고
신중한 빙판 검게 얼어붙은 심연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로 나를 지쳐줘
한복판으로 달려와 꽝꽝 두드리다가
끌로 송곳으로 큰 구멍을 뚫어봐
생각보다 수심이 깊지 않을 거야
미끼도 없는 낚싯대를 덥석 물고
퍼드덕거리며 솟아오르는 저 물고기 좀 봐
결빙을 풀고 나 너를 안을게
정경순, 꽃밭에서
눈물겹다, 그대가 죽었던 자리
고요와 그리움과 외로움
본시 열어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추억을 꺼내 보고 싶게 저물었네
오랫동안 무덤처럼 버려두었던
공복의 빈자리를
먼 인척 같은 허공 한자락을 잡아당겨
꽃씨를 심네
빈 것의 명줄을 허공으로 이어 놓고
기다리네, 추억의 닫힌 문을 열어 놓고
그립고 외로운 것들의 어둠
문 열고 들어와
환하게 등불을 밝혀놓으리
주인자, 그럴 수 있을까
너를 내 머릿속에서 밀어내고도
지나가는 바람을 무심히 안을 수 있을까
너를 내 가슴 가장자리로 밀어내고도
내리는 달빛에 무심하게 젖을 수 있을까
켜켜이 쌓아 놓았던 사랑을
먼지로 만들어 허공으로 보낼 수 있을까
이제 우리가 무심한 눈빛을 스치던
행인1과 행인2로 살아갈 수 있을까
정말 우리, 그럴 수 있을까
정말 우리,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