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가기 전까지 늘 다니던 싸이트에서 뻘글이나 읽던 중, 문득 내 눈길을 끄는 게시글이 있었다.
<도움 바랍니다. 개가 죽었어요>
이건 또 뭐야? 게시판에 올라온 제목이 의아했다. 여긴 그런 거 올리는 곳이 아닌데? 어떤 관심종자인가, 싶어서 한번 들어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댓글 하나 없다. 무슨 내용인가 해서 읽어보았다.
<제목 그대로입니다. 개가 죽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뭐 이런 병신이 다 있지? 두서도 없이, 대뜸 개가 죽었다니 적어도 뭔가 설명이라도 해놓고 도움을 구하든지 해야 할 것 아닌가. 시간 낭비다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원체 참견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라 한 줄 댓글을 남겼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었단 소리야?> 그리고 잠시 화장실 다녀온 사이, 그새 답글이 달렸다. <아뇨, 모르는 개입니다. 그런데 집에서 죽었어요>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생전 본 적도 없는 개가, 너네 집에서 죽었단 소리지?> 댓글을 다시 달았는데, 갑자기 새 창이 뜨더니 채팅방으로 초대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입장하자마자 게시글 쓴 놈이 인사도 없이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정확히는, 죽기 전에 본 적은 있습니다.> 얼마나 절박하길래 채팅까지 걸었을까, 마침 학원 시간도 남았고 해서 심심풀이 삼아 응해주기로 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죽기 전에 본 적이 있다니?> <그러니까, 완전 모르고 있던 게 아니라 본 적은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동네 떠돌이 개가 죽은 거야? 몇 번 본 적이 있다는 거지?> <정확히는, 떠돌이 개가 아니라 기르던 집이 있습니다.> 이건 또 도대체 무슨 개소리인가. 남의 집 개가 왜 자기 집에서 죽어? <개 주인에게 알리는 게 낫지 않아?> <곤란합니다. 왜냐면 주인은 내가 자기 개를 죽였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이 병신아. <음 그러니까 알겠다. 정리하면 남의 집 개가 너네 집에 들어와서 갑자기 죽었는데, 너는 그 개를 어떻게 처리할지 곤란하다 이거지. 주인에게 알리자니 네가 개를 죽인 범인으로 몰릴 것 같아서 싫고> <바로 맞습니다>
<그럼 차라리 어딘가에 묻어버리고 입 닦는 게 어때?> <묻는다니요 어떻게 묻는 거지요> <너네 집, 주택?> <아뇨, 아파트입니다>
<그럼 근처에 야산 없어? 거기다 땅 파고 묻어. 되도록 깊이. 안 그럼 들개가 와서 파버리니까> <개가 커서 옮기는 사이 다른 사람들 눈에 보여질 겁니다> 하긴 대형견 같은 경우는 어린아이 사이즈 정도일 테니까. <그래도 트렁크 같은 게 있잖아. 여행 가는 차림새 하고 트렁크 끌고 나가면 돼>
<곤란합니다. 트렁크에 털이 묻으면 어떻게 합니까.> 따지는 것도 많군. 짜증이 밀려왔다. 그런데 한편으론, 어떤 만화책에서 본 내용이 생각났다. <그렇군. 그럼 이 수 밖에 없네>
난 사뭇 진지한 척 타이핑을 시작했다. <원래 애완동물 사체는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담아서 버리도록 되어 있어> <그렇습니까> <거기다 담아서 버려.> <하지만 그렇게 큰 봉투가 없는데요> <바보야, 그럼 개를 작게 만들면 되지> <어떻게요>
관심 종자에게 먹이를 주지 말 것, 그러나 줄 거면 큰 걸로 줄 것. 그게 나의 철칙이다.
<우선 내장을 따로 빼. 그리고 믹서로 갈아서 지하철 화장실 같은 데다 버려> <쓰레기 봉투에서 버리지 않습니까?> <내장은 믹서로 가는 게 더 나을거야.> <그렇군요> 놈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니까 더욱 신이 났다. <그리고 뼈는 어떻게 할까요?> <뼈는 고아서 흐물흐물 해질 때까지 삶아. 냄새 안 나게 수육 삶을 때 쓰는 것처럼 생강이랑 파 넣는 거 잊지 말고> <그럼 나머지 털이나 피부 같은 건요> <쓰레기 봉투에 담아서 쓰레기차 오는 시간 맞춰서 내다 버려. 그 정도는 들어갈 거야> <과연. 그렇군요> <그리고 쓰고 난 톱이랑 칼 같은 건 되도록 멀리 가서 처리해야 한다? 이상한 오해 살 수도 있고, 피랑 뼈 썰고 나면 어차피 다시 쓰지도 못할 거야> 인터넷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지식을 전문가인 양 쓰고나니 그럴싸 한데?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쉽게 죽은 개를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친 x.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냐. 고작 개를 상대로? 역시 인터넷은 앉은 자리에서 온 세상 미친 것들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다.
<그런데 하나만 묻자> <예, 얼마든지>
슬슬 학원 갈 시간이어서, 난 별 생각없이 채팅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도대체 개가 어떻게 해서 죽은 거냐?> <아아 그게 말입니다>
놈도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지나가던 개가 너무 예쁘게 생겨서 몰래 집으로 데려왔는데, 조용히 하라 해도 계속 울기만 하고 해서 홧김에 입을 틀어막았더니 죽어버리지 뭡니까. 심장이 안 좋았다거나 너무 놀랬던 걸까요. 저도 정말 놀랬습니다만.>
예뻐? 틀어막아? 입을? 순간 온 몸의 털이 삐쭉 섰다.
<어이, 너 설마> <어쨌든 많은 도움 되었습니다. 그럼 이만.> 놈이 채팅창을 나갔다.
다시 게시판으로 돌아가보니, 놈이 썼던 게시글은 이미 지워져 있었다. 놈이 말한 개가 무엇이었는지 상상하느라 그날 학원 수업 내용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