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죽은 개를 처리하는 방법
게시물ID : panic_933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수컷수컷
추천 : 18
조회수 : 9286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7/04/30 23:42:04
옵션
  • 창작글
죽은 개를 처리하는 방법


학원 가기 전까지 늘 다니던 싸이트에서 뻘글이나 읽던 중,
문득 내 눈길을 끄는 게시글이 있었다.

<도움 바랍니다. 개가 죽었어요>

이건 또 뭐야? 게시판에 올라온 제목이 의아했다. 여긴 그런 거 올리는 곳이 아닌데? 어떤 관심종자인가, 싶어서 한번 들어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댓글 하나 없다. 무슨 내용인가 해서 읽어보았다.

<제목 그대로입니다. 개가 죽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뭐 이런 병신이 다 있지? 두서도 없이, 대뜸 개가 죽었다니 적어도 뭔가 설명이라도 해놓고 도움을 구하든지 해야 할 것 아닌가. 시간 낭비다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원체 참견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라 한 줄 댓글을 남겼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었단 소리야?> 
그리고 잠시 화장실 다녀온 사이, 그새 답글이 달렸다.
<아뇨, 모르는 개입니다. 그런데 집에서 죽었어요>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생전 본 적도 없는 개가, 너네 집에서 죽었단 소리지?>
댓글을 다시 달았는데, 갑자기 새 창이 뜨더니 채팅방으로 초대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입장하자마자 게시글 쓴 놈이 인사도 없이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정확히는, 죽기 전에 본 적은 있습니다.>
얼마나 절박하길래 채팅까지 걸었을까, 마침 학원 시간도 남았고 해서 심심풀이 삼아 응해주기로 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죽기 전에 본 적이 있다니?>
<그러니까, 완전 모르고 있던 게 아니라 본 적은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동네 떠돌이 개가 죽은 거야? 몇 번 본 적이 있다는 거지?>
<정확히는, 떠돌이 개가 아니라 기르던 집이 있습니다.>
이건 또 도대체 무슨 개소리인가. 남의 집 개가 왜 자기 집에서 죽어? 
<개 주인에게 알리는 게 낫지 않아?>
<곤란합니다. 왜냐면 주인은 내가 자기 개를 죽였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이 병신아.
<음 그러니까 알겠다. 정리하면 남의 집 개가 너네 집에 들어와서 갑자기 죽었는데, 너는 그 개를 어떻게 처리할지 곤란하다 이거지. 주인에게 알리자니 네가 개를 죽인 범인으로 몰릴 것 같아서 싫고>
<바로 맞습니다>

<그럼 차라리 어딘가에 묻어버리고 입 닦는 게 어때?>
<묻는다니요 어떻게 묻는 거지요>
<너네 집, 주택?>
<아뇨, 아파트입니다>

<그럼 근처에 야산 없어? 거기다 땅 파고 묻어. 되도록 깊이. 안 그럼 들개가 와서 파버리니까>
<개가 커서 옮기는 사이 다른 사람들 눈에 보여질 겁니다>
하긴 대형견 같은 경우는 어린아이 사이즈 정도일 테니까.
<그래도 트렁크 같은 게 있잖아. 여행 가는 차림새 하고 트렁크 끌고 나가면 돼>

<곤란합니다. 트렁크에 털이 묻으면 어떻게 합니까.>
따지는 것도 많군. 짜증이 밀려왔다. 그런데 한편으론, 어떤 만화책에서 본 내용이 생각났다. 
<그렇군. 그럼 이 수 밖에 없네>

난 사뭇 진지한 척 타이핑을 시작했다.
<원래 애완동물 사체는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담아서 버리도록 되어 있어>
<그렇습니까>
<거기다 담아서 버려.>
<하지만 그렇게 큰 봉투가 없는데요>
<바보야, 그럼 개를 작게 만들면 되지>
<어떻게요>

관심 종자에게 먹이를 주지 말 것, 그러나 줄 거면 큰 걸로 줄 것. 그게 나의 철칙이다.

<우선 내장을 따로 빼. 그리고  믹서로 갈아서 지하철 화장실 같은 데다 버려>
<쓰레기 봉투에서 버리지 않습니까?>
<내장은 믹서로 가는 게 더 나을거야.>
<그렇군요>
놈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니까 더욱 신이 났다.
<그리고 뼈는 어떻게 할까요?>
<뼈는 고아서 흐물흐물 해질 때까지 삶아. 냄새 안 나게 수육 삶을 때 쓰는 것처럼 생강이랑 파 넣는 거 잊지 말고> 
<그럼 나머지 털이나 피부 같은 건요>
<쓰레기 봉투에 담아서 쓰레기차 오는 시간 맞춰서 내다 버려. 그 정도는 들어갈 거야>
<과연. 그렇군요>
<그리고 쓰고 난 톱이랑 칼 같은 건 되도록 멀리 가서 처리해야 한다? 이상한 오해 살 수도 있고, 피랑 뼈 썰고 나면 어차피 다시 쓰지도 못할 거야>
인터넷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지식을 전문가인 양 쓰고나니 그럴싸 한데?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쉽게 죽은 개를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친 x.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냐. 고작 개를 상대로? 역시 인터넷은 앉은 자리에서 온 세상 미친 것들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다.

<그런데 하나만 묻자>
<예, 얼마든지>

슬슬 학원 갈 시간이어서, 난 별 생각없이 채팅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도대체 개가 어떻게 해서 죽은 거냐?>
<아아 그게 말입니다>

놈도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지나가던 개가 너무 예쁘게 생겨서 몰래 집으로 데려왔는데, 조용히 하라 해도 계속 울기만 하고 해서 홧김에 입을 틀어막았더니 죽어버리지 뭡니까. 심장이 안 좋았다거나 너무 놀랬던 걸까요. 저도 정말 놀랬습니다만.>



예뻐?
틀어막아?
입을?
순간 온 몸의 털이 삐쭉 섰다.

<어이, 너 설마>
<어쨌든 많은 도움 되었습니다. 그럼 이만.>
놈이 채팅창을 나갔다.


다시 게시판으로 돌아가보니, 놈이 썼던 게시글은 이미 지워져 있었다.
놈이 말한 개가 무엇이었는지 상상하느라 그날 학원 수업 내용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