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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붉은 체념
다리가 생겼어
목소리가 사라졌어
사랑을 영영 잃었으니
평생 손끝으로 말해야 해
물거품이나 될 걸 그랬지
배홍배, 그리운 이름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저장된 이름 하나를 지운다
내 사소한 사랑은
그렇게 끝났다
더듬거리며 차에서 내리는 나를
일격에 넘어뜨리는 가로등
일어나지 마라
쓰러진 몸뚱이에서
어둠이 흘러나와
너의 아픔마저 익사할 때
그리하여
이 도시의 휘황한 불빛 안이
너의 무덤 속일 때
싸늘한 묘비로 일어서라
그러나 잊지 마라
묘비명으로 새길 그리운 이름은
서덕준, 추방
눈가에 시 몇 편이 더 흘러내려야
나는 너 하나 추방시킬 수 있을까
오인태, 난감한 사랑
산은 좀체 안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나도 그 산에 갇혀
꼼짝할 수 없었다
그 해 여름 내 사랑은
짙은 안개 속처럼
참 난감해서 더 절절했다
절절 속 끓이며
안으로만 우는 안개처럼
남몰래 많이 울기도 했다
이제야 하는 얘기다
임곤택, 뷰파인더
이런 때를 잘 잡아야 해
비가 그치면서, 해가 질 때
사람과 집들이
수천 개의 유리잔으로 보일 때
그리고 우리 며칠 만에 웃어보는지
붐비지 않아 다행이구나
부딪히다 보면 아무 데서나 멈추게 되거든
구름은 빠르고 으스스 추워지는 때 있지
한 손은 주머니 속에서 축축해지고
다른 손으로는 가방을 꼭 쥔
셔터를 누르기 전에 한 번 더 살펴봐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게 되는 곳까지
세상과
더는 세상이 아닌 곳
구름 걷히면서 해가 질 때
하늘과 지붕은 물웅덩이에 맞닿아 출렁거리고
신호를 기다리는 자동차들 일제히
공중으로 날아오를 찰나
한 프레임 전체가 커다란
공백이거나
아주 작은 공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