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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사회적 관계에서 추론해 내지 못하면 기성세대는 이를 이용할 뿐이다.
‘상황은 좋지 않지만 열심히 일해라.’라는 어처구니없는 강요는 정규직이 되기 위해 인턴으로 몇 개월을 버티고,
다음은 수습사원으로 몇 개월을 버티고, 다음은 비정규직으로 몇 년을 버텨야 하는 끔찍한 과정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누구도 이것을 ‘문제’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다. 절망적인 상황을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현실에 만족하는 행복한 젊은이’조차 등장할 수 없다.
‘나는 할 만큼 했다, 하지만 사회가 이 모양인데 더 이상 뭘 하겠어? 이제 내 행복, 나 스스로 찾겠어!’라는
‘행복한 젊은이들’이 일본에 존재하는 이유는 그나마 자신을 사회적 관계 내의 ‘피해자’로서 볼 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 나라의 결정적 차이다.
그나마 일본은 한국에 비하면 유토피아였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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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일본은 그래도 아르바이트든 뭐든 일하면
생존할만큼은 주기 때문이죠.
한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