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실을 접했을 때, 사람들이 그 사실에 대해 인식을 하는 과정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자의적인 현상입니다. 따라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며, 모든 개인은 자신의 관점에 따라 사실을 재해석하여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심리학 등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가끔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한가지 사실을 놓고 너무나 다르게 받아들이는 현상"은 매번 사람들을 당황시키기 마련입니다.
바로 이런 현상으로 인해 사회속의 여론은 집단적인 대립을 하게 되며 소위 말하는 국론분열도 벌어지고 의견대립도 심화되고 하는 것이겠지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관점중에, 정부나 관공서가 하는 일에 대해 거의 무조건적으로 찬성을 하고 협조를 해야 한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그런 관점을 가진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좀 드신 어르신들이며, 이런 견해에는 항상, 시위나 반정부적인 견해 표명등은 매우 부정적인 일이며,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비용을 만드는 소모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따라다닙니다. 결국 주변의 젊은 층에게, 네 앞가림이나 잘하고 사회적인 일들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 같은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라는 권고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젊은 계층은 그런 시각에 대해, 어떻게 눈앞에 벌어지는 부정한 일들에 대해 입을 다물 수 있느냐,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이런 일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당신은 이런 부조리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거냐는 반론을 하게 됩니다.
그런 경우, 십중팔구, 아니 거의 모든 경우에 진지하게 얘기를 해 나가다 보면, 가장 밑바닥에서 이런 입장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이며, 다른 하나는 거대한 사회적 움직임 앞에 선 개인의 무력감입니다.
즉,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다수에 관련된 일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실수도 하고 부정도 저지르고 하게 되지만, 그래도 그게 어느 선 이상으로 나빠지지는 않는 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사람이니까, 또 배운 사람이고, 사람들의 신망을 얻어 공공 조직의 장으로 임명되는 사람들이니까, 최소한도로 기본적인 도덕은 갖추고 일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오점도 사실 알고보면 피치못해 벌인 일들이지 결코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고, 누구나 저 위치에 가면 저지를 수 있는 실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구관이 명관, 그 나물에 그 밥, 뭐 이런 식이 되는거죠. 그러나 이런 관점을 가진 분들도 결코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잘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알면서도, 그 문제점들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다른 것 뿐이라는 거죠.
또 하나는, 일제시대와 해방, 그 이후의 혼란과 전쟁, 혁명과 구테타등을 겪어온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나 혼자 뭘 어쩔 수 있겠는가 하는 무력감도 깔려 있습니다. 일제 이전 동학혁명때도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섰던 사람들은 다 죽고 패가망신 했습니다. 일제때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 역시 다 패가망신하고 그 후손들은 사회보장정책에 의한 도움도 제대로 못받고 심지어 국적도 없이 떠돌고 있습니다. 전쟁때 역시 의기에 차 나라를 구하러 나선 용사들은 모두 저세상으로 갔고, 뒤로 숨고 피하며 눈치빠르게 행동하던 사람들은 오히려 한몫잡고 떵떵거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419에 나섰던 학생들은 총이나 안 맞았으면 다행인 상황이고, 유신에 대항하던 젊은이들은 모두 어디 한군데 못쓰게 되거나 해서 망가진 역사가 있습니다. 광주역시 그랬고, 많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다보니, 정의는 초등학교 도덕책에나 나오는 일이지, 한 개인이 자신의 뜻을 펴기 위해 나서는 것은 무모할 뿐더러 주변의 인물들에게 민폐나 끼치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 경험을 통해 뼛속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이런 인식을 가졌다고 가정하고 어떤 관점으로 사회적인 현상들을 바라보게 될 지 상상을 한번 해 보시길 권합니다.
불의를 지적하고 반정부의 기치를 드는 행위는 자신을 망치는 일일 뿐더러 사회를 소란스럽게 하고 또 한번 불행한 일들을 양산하는 무지한 행위가 될 뿐입니다. 정부가 어지간한 잘못을 하더라도 협조하고 비굴하지만 함께 살아나가는 길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한 행동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당연한 판단이 됩니다.
이런 것들도 모르는 채, 분위기에 휩쓸려 이명박을 욕하고 정부의 거대 토목공사를 반대하는 행동은 그야말로 철부지같은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한번 이러한 관점을 가지게 되면, 사람의 두뇌라는 것이 작동하는 메카니즘에 따라 머리속에 하나의 짜임새 좋은 프레임이 구성되게 되며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축적될 수록 자신만의 관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게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의 다수의 구성원들 머릿속에서 세월을 통하여 발생한 일들입니다.
그렇게 구성된 사고방식은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절대 깨지지 않게 됩니다. 세상의 종말을 믿고 기도하던 사람들이 예언된 종말의 날에 종말이 오지 않자, 자신들의 믿음이 틀렸다고 마음을 고쳐먹기 보다는 자신들의 기도로 세상을 구원했다는 식의 합리화를 시도하는 것이 대표적인 인지부조화의 메카니즘이듯이,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정부가 어떤 잘못을 하고, 그 잘못으로 인해 어떤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일이라는 자세에서 한 걸음도 이탈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 주변에서 이런 일들을 많이들 목격하셨을 것입니다. 모든 사회에서는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소중한 진실을 알려줍니다. 비록 다수가 이런 방식으로 문제점을 외면하고 현실을 합리화 하면서 살아가지만 언제나 진실과 정의를 생각하는 소수가 있었고, 그 소수가 역사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입니다. 소극적이며, 현실안주적이고 자신과 주변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삶의 태도는 언제나 다수의 것이었고, 진취적이며 비판적이고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였습니다.
그래도 이 사회는 그런 소수의 희생과 열정으로 인해 변화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어떤 사고방식을 택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하는 문제는 자신만이 선택할 일입니다. 자신의 인생이며, 온전히 자신의 책임하에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