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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꼴분들 반박원하시길래 해드림^^
게시물ID : sisa_934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냥불러줘
추천 : 3
조회수 : 964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0/11/14 02:05:13
첫번쨰 이승만 친일파라는 소리를 왜듣지는 알고싶지?
참고로 프랑스는 나치 단순 가담자라도 감옥행 햇음;;


이승만 반민특위 사건 -
반민특위는 1949년 1월 5일 중앙청 205호실에서 업무를 시작, 사흘만인 8일 화신백화점(지금의 지하철 1호선 종각역 밖 '밀레니엄 타워' 자리에 있었음) 사장이었던 박흥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 일제(日帝) 경찰 출신 노덕술을 검거하고 문인 이광수와 최남선 등 총 682명을 조사하고 221명을 기소했으나,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해 조사원들을 체포하는 것을 시작으로 반민특위 활동은 흐지부지되고 결국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결과적으로 1950년 봄까지 반민법을 통해 실형을 선고받은 자들은 곧바로 풀려났고, 사형집행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일제 치하 반 세기동안 뒤틀려버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역사의 엄연한 후퇴다.

그 결과 부당한 방법으로 부와 권력을 독점한 반민족 행위자 및 그 재산을 상속한 후손들은 지금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고,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생활보호대상자로 전락해 하루하루 날품을 팔아 연명해 가고 있는 것이 2003년 2월 삭풍이 부는 '오! 필승 코리아'의 풍경이다.

반민특위가 이처럼 허무하게 해체된 데에는 주지하다시피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미군정(美軍政)의 힘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즉 취약한 정치 기반을 메우고자 친일 경찰과 군, 친일 자본가를 필요로 했기에 그에게 있어 반민특위란 그저 눈엣가시에 지나지 않았고, 반공(反共)을 기치로 삼아야 했던 미군정으로서는 친일 경력을 가진 이들이 입맛에 맞았던 것이다.

일단 새벽이라 하나만 올린다^^ 내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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