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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너의 눈
네 시선이 닿은 곳은 지금 허공이다
길을 걷다 깊은 생각에 잠겨 집 앞을 지나쳐 가버리듯
나를 바라보다가, 나를 꿰뚫고, 나를 지나쳐서
내 너머를 너는 본다
한 뼘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어도
너의 시선은 항상 지나치게 멀다
그래서 나는
내 앞의 너를 보고 있으면서도
내 뒤를 느끼느라 하염이 없다
뒷자리에 남기고 떠나온 세월이
달빛을 받은 배꽃처럼
하얗게 발광하고 있다
내가 들어 있는 너의 눈에
나는 걸어 들어간다
그 안에서 다시 태어나 보리라
꽃 피고 꽃 지는 시끄러운 소리들을
더 이상 듣지 않고 숨어 살아보리라
조용미, 헛되이 나는
헛되이 나는 너의 얼굴을 보러 수많은 생을 헤매었다
거듭 태어나 너를 사랑하는 일은 괴로웠다
위미리 동백 보러 가 아픈 몸 그러안고서도
큰엉해안이나 말미오름에서도
빙하기 순록과 황곰 뼈의 화석이 나온 빌레못동굴 앞에까지 와서도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저 멀구슬나무나 담팔수, 먼나무가
당신과 아무 상관없다고 확신할 수 없는 이 생이다
너에게 너무 가까이도 멀리도 가지 않으려고
헛되이 나는, 이 먼 곳까지 왔다
유희경, 텅 빈 액자
눈 덮인 지붕과
궁핍의 나무를 떼어낸다
서러운 그림이다
그림은 그의 것이다
그가 직접 걸어둔 것이다
등 너머 실팍한 마음이
이제야 먼지처럼 날린다
거실 옆 부엌에는
그릇을 깨먹은 여자가 있다
잔소리하듯 하얀
그릇됨의 속살
떼어낸 자리가 환하다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없어진 나날보다
있었던 나날이 더 슬프다
엄기원, 풀꽃
이름
참 좋다
언제나 싱싱하고
언제나 아름다운
널
풀처럼 수수해 좋고
꽃처럼 화사해 좋고
이원진, 추억
추억이란
지나기 전엔 돌덩이
지나고 나면 금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