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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 나를 잡아, 나를 놔
사는 게 별거겠니
추억하며 잊어 가는 일
죽고 싶다가 살고 싶은 일
감정의 시소를 타며 하늘 보는 일
사는 데 가장 큰 고통은 욕망이야
나를 안아 줘
안전벨트처럼 안아 줘
불안한 술잔처럼 기울지 않게
돈 걱정과 죽음에 짓눌리지 않게
나를 잡아, 나를 놔
자, 우리 일하고 깨치며 가야지
네 입과 내 입에 사랑의 떡을 처넣고
입 깊숙이 슬픔 들끓게 내버려 두고
쌀과 물을 사람들과 나누고
오늘은 다르게 살기 위한 시도잖니
이 도시만큼 괜찮은 무덤도 없을 거야
너만큼 편안한 수갑도 없을 거야
네 안에 있으니 따뜻해졌어
날 조이지 마 나한테 매달리지 마
그렇다고 날 떠나면 되겠니
나를 잡아, 나를 놔
나를 잡아
이제니, 파노라마 무한하게
그날은 몹시도 눈이 내렸는데
내려앉는 눈송이를 볼 수 없는 높은 침상이었는데
침상 저 너머에서 알 수 없는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밤이었는데
죽기 직전 사람은 자신의 전 생애를 한눈에 다 본다고 하는데
그것은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속도로
무한에서 무한으로 가는 움직임이라고 하는데
그때 보이지 않는 창 너머로 보았던 것은
언젠가 나를 위해 울어주었던 얼굴이었는데
걷고 묻고 달리고 울고 웃던
검은 옷을 입은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있지도 않은 없는 사람을 떠올리며
없지도 않은 있는 사람을 지울 때
한 치의 여백도 없이 채우고 싶다고
더없이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고
위에서 아래로 과거에서 미래로
아득히 흘러가던 그 풍경은 다 무엇이었을까
흙은 또 이토록 낮은 곳에 있어
무언가 돌아가기에 참으로 좋은 것인데
나선미, 시인의 시
나는 너를 적었는데
사람들이 시라고 부르더라
너더러 시래
나는 시인이래
나는 그게, 그렇게 아프다
안상학, 오래된 엽서
오래된 어제 나는 섬으로 걸어 들어간 적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엽서를 썼다. 걸어 들어갈 수 없는
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뭍으로 걸어나간 우체부를 생각했다
바다가 보이는 종려나무 그늘에 앉아
술에 취해 걸어오는 청춘의 파도를 수없이 만나고
헤어졌다, 그러나 단 한 번 헤어진 그 사람처럼 아프지 않았다
섬 둘레로 저녁노을이 불을 놓으면
담배를 피우며 돌아오는 통통배의 만선깃발, 문득
돌아오지 않는 그 사람이 걸어간 곳의 날씨를 걱정했다
아주 오래된 그 때 나는 섬 한 바퀴 걸었다. 바다로
걸어가는 것과 걸어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다 잠든 아침
또 한 척의 배가 떠나는 길을 따라 그곳을 걸어나왔다
아주 오래된 오늘
오래된 책 속에서
그 때 뭍으로 걸어갔던 그 엽서를 다시 만났다
울고 있다. 오래된 어제 그 섬에서 눈물도 함께 보냈던가
기억 저 편 묻혀 있던 섬이 떠오른다. 아직 혼자다
나를 불러,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던 그 섬
다시 나를 부르고 있다. 아직도 어깨를 겯고 싶어하는 사랑도 함께
김왕노, 너를 꽃이라 부르고 열흘을 울었다
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 화무십일홍이란 말 앞에서 울었다
너를 그 무엇이라 부르면 그 무엇이 된다기에
너를 꽃이라 불렀다. 십장생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중에 학이거나 사슴으로 불러야 했는데
나 화무십일홍이란 말을 몰라 너를 꽃이라 불렀기에 울었다
나 십장생을 몰라 목소리를 가다듬었으나 꽃이라 불렀기에 울었다
단명의 꽃으로 불렀기에 내 단명할 사랑을 예감해 울었다
사랑이라면 가볍더라도 구름 정도로 오래 흘러가야 했는데
세상에나 겨우 십 일이라니 십 일 동안 꽃일 너를 사랑해야 하다니
그 십 일을 위해 너를 꽃이라 불렀기에 너는 내게 와 꽃이 되었나니
꽃에 취하다 보니 꽃그늘을 보지 못했나니 너를 꽃이라 부르고
핏빛 꽃잎 같은 입술로 울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에메랄드, 진주, 비취, 사파이어, 마노
자수정, 남옥, 사금석, 혈석, 카넬리안, 공작석, 오팔 장미석
루비도 있는데 너를 두고 때 되면 시드는 꽃이라 부르고 울었다
지는 꽃보다 더 흐느끼고 이별의 사람보다 더 깊고 깊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