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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플러터샤이 인 라스페가수스 -4-
게시물ID : pony_935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베타초콜릿
추천 : 4
조회수 : 61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11/29 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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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 http://blog.naver.com/dbghd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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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같이 돈 벌어볼래요?"

유니콘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플러터샤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뜬금없은 제안에 그녀는 당황했다. 그녀가 원하는건 200비츠 뿐이었다. 돈만 다시 준다면 이곳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영영 볼 일 없는 포니에 불과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같이 해보죠. 돈은 확실히 벌 수 있어요. 어때요?"

유니콘은 담배를 끄며 말했다.

수상해도 너무 수상했다. 아무런 인연도 없는 포니가 돈을 벌게 해준다고 제안하면 경계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갑자기 돈을 벌 기회가 있다하면 사기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200비츠를 다시 돌려주기 싫어 돌려 말하는 것 일지도 몰랐다.

플러터샤이는 대답하지 않고 우물쭈물했다.

"일단 얘기만 들어보실래요? 제 얘기를 듣는다면 솔깃하실텐데."

"아뇨, 전 시간도 없고 해서..."

"얘기만 들으시면 200비츠는 돌려드릴게요. 저랑 같이 하던 안하던."

"정말요?"

플러터샤이가 놀라며 물었다. 돈을 돌려주기 싫어 돌려말한 것 같진 않았다.

"그럼요."

유니콘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돈만 돌려받을 수 있다면야 상관없었다. 설령 유니콘이 무슨 제안을 하던간에 거절하고 돈만 돌려받으면 됐다. 그녀에겐 밑져야 본전이었다.

"좋아요. 한번 들어볼게요. 일이란게 뭔데요?"

유니콘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여기서 할 얘긴 아니에요. 일단은 저희 집으로 오시죠."

유니콘은 플러터샤이에게 눈짓을 주고는 카지노 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플러터샤이는 그녀를 따라가 옆에서 마주걸었다.

"집이요? 여기서 사시나요?"

카지노 출구로 나가며 플러터샤이가 말했다.

"여기서 사는건 맞지만 여기 출신은 아니에요. 여기 머무를 동안만 사는 집이에요."

보통 라스 페가수스에 오는 포니들은 대부분이 관광객들이다. 당연한거지만 관광객들은 호텔에서 방을 잡고 생활한다. 플러터샤이는 옆에 있는 포니가 관광객이 아니란 사실에 조금 놀랐다. 한껏 꾸민 외모나 분위기로 보면 그녀는 거주민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플러터샤이는 유니콘을 따라갈지 망설였다. 이렇게 쉽게 모르는 포니의 집을 따라 나서도 괜찮은걸까? 혹시라도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커져갔다.

그래도 이 유니콘이라면 괜찮을지도 몰랐다. 어제 그녀에게 게임을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했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도 혼자 앉아있던 그녀를 보며 아는척 해주기도 했다. 차가운 태도에 비해 의외로 착한 포니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방금 전 그녀가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심한 일은 당하진 않을거다.

어쩌면 이 포니가 정말 돈을 벌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근거없는 기대감도 자라났다. 그녀는 이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한계였다. 이성은 기대하지 말라고 하지만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그녀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녀의 다리는 걸어가면서 통증이 더 심해졌다. 다리를 절어서 속도도 느려졌다. 하지만 유니콘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유니콘을 따라갔다.

"우선 서로 소개부터 하죠. 전 칠하트에요."

둘은 호텔가를 나와 라스 페가수스의 거리를 걸었다. 플러터샤이는 혹시라도 방금 전 그녀가 일을 당했던 그곳에 가는건 아닌가 했지만 다행히 방향이 달랐다. 포니들이 많은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까 그곳보단 번잡한 도로였다.

"전 플러터샤이에요. 포니빌에서 왔어요."

"멀리서 오셨네요."

칠하트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 이상 묻지 않는것으로 보아 포니빌을 가본 적은 없는 듯 했다.

"저... 집은 여기서 머나요?"

플러터샤이가 숨이 찬 채로 말했다. 부디 칠하트의 집이 여기서 멀지 않기를 바랬다. 언제 눈이 감겨 바닥에 쓰러져 버릴지 몰랐다. 칠하트가 쓰러진 그녀를 챙겨 줄 정도로 친절해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제 집이에요."

주택가로 들어선 칠하트가 한 집에서 우뚝 멈췄다. 벽돌로 지은 도시식 복층 주택이었다. 혼자 살기엔 꽤 큰 집이었다. 칠하트는 문을 따서 열었다.

"들어오세요."

플러터샤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집 안엔 불이 꺼져있는 것으로 보아 혼자 사는 듯 했다. 불을 키자 거실의 모습이 보였다. 집은 깔끔하다 못해 텅 빈 느낌이었다. 넓은 공간엔 조그만 탁자와 서랍이 다였다. 벽지라던가 장식이라던가 방을 꾸미기위해 그 어떤 노력도 들지 않았다. 좁은 공간을 동물들을 위해 어떻게든 활용했던 그녀의 방과는 전혀 달랐다.마치 공간을 낭비하는듯한 느낌이었다.

칠하트는 탁자 앞의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어떤 일인가요?"

그녀는 의자에 앉자마자 물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칠하트의 제안인지 뭔지만 빨리 듣고 돈만 받고 갈 생각이었다. 칠하트는 서랍에서 담배갑을 꺼내더니 한개피를 입으로 물었다. 그녀는 성냥에 불을 붙혀 담배에 갖다댔다.

"급할거 있나요? 우선 씻는게 어때요? 지금 꼴이 많이 아니신데."

칠하트가 담배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플러터샤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날아오는 담배연기를 맡지 않으려 발굽을 흔들었다. 담배 핀지 얼마나 됐다고 또... 겉모습은 모델같은데 순 꼴초야.

그래도 씻자는 말은 싫지 않았다. 앞쪽에 있는 서랍 거울에서 비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겉모습 만이라도 플러터샤이로 되돌리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얘기를 끝내고 돈을 받는다고 해도 새벽 기차 시간까진 결국 카지노에서 지내야 했다. 이곳에서 시간을 더 보내도 나쁠것 없어 보였다.

"욕실은 저쪽이에요."

플러터샤이는 칠하트의 발굽이 가르키는 곳으로 갔다. 복도를 지나가며 그녀는 집을 두리번 거렸다. 집이 허전하단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기 출신이 아니라는 그녀의 말을 떠올리면 이사한지 얼마 안된걸지도 몰랐다.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을 틀자 물줄기가 그녀의 몸을 덮었다. 신음이 목에서 튀어나왔다. 상처 부위가 물에 맞자 통증이 온몸을 찢고 나오는것 같았다. 다리에는 물과 함께 핏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이 찔끔 튀어나올 정도의 고통이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겪었던 일이 실감이 났다. 만약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면 일어날 일을 상상하니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이쯤되면 오히려 이 정도 상처는 다행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따듯한 물을 얼굴에 맞으니 마음이 진정됐다. 지금은 복잡한 문제는 생각하지 말자고 결론내렸다. 은행의 빚문제도, 오두막도, 동물도, 핑키 파이에게 빌린 돈에 대한 생각도 잠시 접어뒀다. 잠깐만 이라도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샤워를 다 마친 플러터샤이는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거실로 나왔다. 거실로 나오자 향긋한 향이 코를 간질였다. 냄새를 따라가는 개 마냥 플러터샤이는 코를 킁킁 거린채 거실로 걸어갔다.

책상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와 쿠키가 담겨진 접시가 놓여있었다. 플러터샤이는 책상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듯 칠하트 맞은편에 앉아 차려진 식사를 내려다봤다. 잘못하면 침까지 흐를 지경이었다.

수첩에 무언가를 적던 칠하트가 수첩을 덮고는 그녀를 보았다.

"아까보다 훨씬 낫네요. 드세요."

플러터샤이가 침을 꿀꺽 넘겼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배가 고픈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는 하루였으니.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음식을 눈 앞에 두고나서자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서둘러 쿠키를 집어 먹었다. 바싹 마른 입안은 커피를 조금씩 홀짝이며 적셨다. 배속에 커피와 쿠키가 아닌 피와 살이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두 발굽으로 음식들을 입안에 쑤셔넣어 볼이 빵빵해진채로 쿠키를 씹었다. 쿠키를 먹는 것 뿐인데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녀는 쿠키를 어느정도 먹고 나서야 앞을 보았다. 너무 정신없이 먹은 나머지 칠하트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 칠하트는 쿠키를 작은 조각으로 잘라 입안에 넣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속도를 줄였다. 칠하트의 우아한 모습과는 다르게 핑키 파이나 다른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것같아 부끄러워졌다. 생각해보니 인사도 못했다.

"저... 감사합니다."

그녀는 쿠키가 아직 입안에 잔뜩 남은 채로 말했다. 칠하트는 커피를 홀짝였다.

"맘껏 드세요. 많이 있으니까."

어느정도 배를 채운 플러터샤이도 먹는 속도를 늦췄다. 칠하트는 그녀가 먹기를 기다려 준건지 말없이 커피를 조금씩 마셨다. 어쩌면 정말 좋은 포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칠하트가 커피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어제는 제게 덜컥 큰 돈을 주시더니 오늘은 갑자기 돈이 급해진 이유가 뭐죠?"

그녀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플러터샤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같이 하잔 일 얘긴 언제 하는거지.

"그건..."

그녀는 대답하길 망설였다. 어제 처음 본 포니에게 그녀의 사정을 말해도 되는걸까. 말해줘봤자 그녀의 이미지만 나빠질 뿐이었다. 자기관리 못하는 한심한 페가수스라고 속으로 욕할게 분명했다. 애써 만난 좋은 포니에게 나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사정이 있어서..."

그녀가 얼버무렸다.

"어떤 사정이요? 말해줄 수 있어요?"

칠하트가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눈을 피했다. 마치 무슨 일인지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사실 그녀는 모든걸 털어놓고 싶었다. 해결 해주길 원해서가 아니었다. 하루 아침에 닥친 재앙을 누구라도 좋으니 알아줬으면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동물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파우나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가까운 관계에 있는 포니들에겐 그녀의 고민을 말하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또 다른 고민이었다. 단순한 고민도 아니었고 오히려 가까운 관계였기에 더 말할 수 없었다.

눈 앞의 포니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어떤 반응을 보여줘도 상관없었다. 그녀의 어리석은 행동에 화를 내도 좋았다. 그저 들어줄 누군가만 있으면 됐다.

"알겠어요..."

그녀가 힘없이 말했다.

그녀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아무래도 어제 처음 만난 상대였으니 처음부터 얘기를 해야될거 같았다.

"저는 원래 동물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아직 어린 동물들이나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동물들을 보호하죠."

그녀가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꾸밈없이 말했다. 그녀가 은행 대출에 손을 대기 시작한 이유, 그리고 무책임하게 떠넘긴 사실도 왜곡하거나 합리화하지 않았다. 그녀는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려했다.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참아내지 못하고 터져나올것 같았다. 이야기의 시점이 오늘로 넘어가자 그녀는 잠시 멈췄다. 눈물이 나오지 않게 눈에 힘을 잔뜩 주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집을 빼앗기고 동물들이 겪은 일을 설명할 때는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저 때문이에요. 저 때문에 가여운 엔젤이 그렇게 된거라고요."

그녀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한참동안이나 엔젤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이야기는 진행되지 못하고 자신의 원망과 자책만이 반복되었다. 그녀는 발굽으로 눈물을 닦고나서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에 이곳에 왔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멍청한 생각이었어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이야기는 결국 그녀의 후회와 막막한 상황으로 끝이 났다. 그녀도 얘기를 하면서 자신의 상황이 정리된 느낌이었다. 다만 그 결론이 답이 없다는 것이었으므로 안하니만 못했다.

그녀는 식은 커피로 목을 축였다. 그녀는 곁눈질로 칠하트를 흘끗 봤다. 칠하트는 그녀의 이야기 동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위로를 하거나 공감을 하거나 답답해 하거나 놀라거나 하지도 않았다. 일관된 표정으로 그녀를 보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안듣고 있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런 반응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의 착각인지는 몰라도 미소를 짓고있는것 처럼 보였다. 이름처럼 냉정한 포니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의 얘기를 끝까지 할 때 까지 기다려준것 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고마웠다.

칠하트는 턱을 괴었다.

"우리 얘기가 잘 통하겠는데요?"

"그게 무슨..."

플러터샤이가 주춤거렸다.

"일 얘기요."

화제는 본론으로 넘어갔다. 플러터샤이는 그녀가 어떤 제안을 할 지 궁금했다. 대체 그녀는 무엇 때문에 그런 제안을 했던걸까. 막상 얘기를 꺼내자면서 그녀의 사정을 물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처음엔 사기꾼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유없는 친절은 세상에 없으니까. 하지만 이미 빈털털이에 빚쟁이가 되버린 그녀에게 사기를 칠 이유는 없어보였다. 정말 자기하고 일하길 원하는건가? 대체 아무것도 없는 그녀와 무슨 일을?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칠하트가 빨리 입을 열길 바랬다.

칠하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플러터샤이는 경악했다. 마지막 담배를 핀 지 1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담배를 굉장히 자주 피시네요..."

플러터샤이는 코를 찡그려 막을 준비를 했다. 칠하트은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에 불을 붙혔다. 칠하트의 입과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차단하려 코로 막았다. 담배를 피는 포니를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애초에 그녀의 주변 포니들은 담배를 입에도 대지도 않았으니.

"담배는 왜 피는거죠? 몸에도 나쁜데."

그녀가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칠하트는 피식 웃었다.

"힘들 때 담배를 피면 조금은 덜어준다고 해서 피게 됐는데... 이젠 힘들지 않아도 피게 됐네요."

플러터샤이는 순간적으로 칠하트의 씁쓸한 미소를 본것 같았다. 그녀의 말이 예전에는 힘든 일이 있었다는 의미로 들렸다.

"아무튼... 사실 전 당신같은 포니를 찾고 있었어요."

칠하트가 새어버린 이야기를 바로잡았다.

"저 같은 포니요...?"

"그래요. 절박한 포니. 돈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는 포니. 가장 중요한 건 유니콘이 아닌 포니."

의미심장한 그녀의 말에 플러터샤이는 긴장했다. 그녀는 잠자코 들었다.

"플러터샤이의 얘기로 더욱 확신했어요. 당신이 이 일에 적격이란걸."

뜸을 들이는 칠하트가 답답했다. 그래서 그 일이란게 대체 뭔데.

"저랑 한번 카지노에서 마법을 부려보자고요."

칠하트의 다 핀 담배가 공중에 떠다니더니 재떨이에 떨어져 비벼지고 있었다. 플러터샤이는 말문이 막혔다. 칠하트의 진지한 표정은 전혀 농담을 하는것 같진 않았다.

"마법이라니요?"

비유적인 의미의 마법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애초에 카지노에서 유니콘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있었다.

"물론 진짜 마법이죠. 유니콘의 마법."

플러터샤이는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며 의문을 표했다.

"유니콘은 마법을 못쓰는건 아닌가요?"

설마 이 사실을 칠하트는 모르고 있을리는 없었다. 플러터샤이보다 카지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거라 확신했다.

"마법을 쓰는건 제가 아니에요. 플러터샤이지."

"저요?"

그녀의 눈이 놀라 커졌다.

"제가 플러터샤이에게 마법을 걸어주고 카지노에 들어가면 돼요. 페가수스는 검사를 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카지노에서 마법을 활용해서 돈을 따면 돼요."

플러터샤이는 헛웃음이 나왔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지금 저랑 같이 사기를 치자는건가요?"

그녀는 기껏해야 칠하트가 플러터샤이의 돈이 목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럴듯한 얘기로 그녀를 상대로 사기를 쳐서 돈을 뜯어 낼 속셈을 가진 줄 알았다. 어차피 무슨 사기를 쳐도 그녀는 가진게 한푼 없으니 얘기만 듣고 200비츠만 챙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칠하트의 얘기는 예상의 범주를 넘어섰다. 그녀는 플러터샤이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는게 아니었다. 플러터샤이와 사기를 치려는 것이다. 황당함을 넘어서 화가 났다. 

"저는 못해요, 그런 짓."

그녀는 정색하며 말했다. 카지노에서 돈을 따는건 정당했다. 자신의 돈을 걸고 그 만큼 위험부담을 안고 돈을 버는 것이다. 하지만 사기는 달랐다. 그건 정말 남의 돈을 빼앗는 짓이다.

"제가 아무리 돈이 귀해도 사기는 안칠거라고요."

그녀가 목소리를 높혔다.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사기라니. 그녀의 인생은 끝장났지만 범죄의 길에 들어서면 그건 정말 그녀 자신을 팔아먹는 짓이었다. 동물들이 그걸 납득하기나 해줄까? 핑키 파이도 사기를 번 돈을 순순히 받아줄까?

"돈을 벌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면서요."

흥분한 그녀의 반응과는 다르게 칠하트의 반응은 여유로웠다.

"전 제 자신을 팔아먹는 짓 안해요. 절대로."

그녀가 확고하게 말했다. 이딴 얘기에 대꾸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칠하트에게 조금이라도 기대를 느꼈던 자신에 환멸을 느꼈다.

"지금 그런거 따질 때가 아닌거 같은데요. 이미 많은걸 팔아 먹었잖아요."

칠하트가 소리없이 웃으며 말했다. 플러터샤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은행의 신용도 팔아먹고 집도 팔아 먹고 동물도 팔아먹고 친구의 믿음까지도 팔아먹었잖아요. 게다가 모든 사실을 숨기기까지 하고. 자기 자신만큼은 팔아먹지 않는다는거에요?"

플러터샤이의 숨이 턱하고 막혔다. 칠하트의 말이 온몸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감은 눈을 억지로 뜨게 해 현실을 보게 하는것 같았다. 칠하트가 그녀의 상황을 듣고는 적격이라고 말한 이유를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녀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사기를 치기 위한 파트너로 빚더미에 쌓여 인생 종점을 달리는 포니보다 어울리는게 있을까. 아까 전 카지노에서 처참한 몰골로 돈을 구걸하는 포니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토록 찾던 포니가 굴러들어왔다 생각했을까.

"그...그건 제 상황이에요. 당신이 알 바 아니라고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칠하트를 노려보았다.

"그렇죠. 제 알바 아니죠. 전 협박하는게 아니에요. 전 그저 동업을 하자 제안하는 거에요. 엄청난 돈을 벌고 빚도 전부 갚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거죠."

들을 가치도 없는 얘기였다. 지금 당장 일어나 돈을 챙기고 나가는게 이로웠다. 어차피 칠하트에게 약점을 잡힌것도 아니다. 그녀는 그저 들은대로만 그대로 떠들어대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플러터샤이는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얘기에 틀린 점은 없었다. 오히려 사실 그대로만 말한 것이기에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녀는 유일하게 플러터샤이의 현실을 아는 포니였다. 그리고 유일하게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안한 포니였다. 정말 사기라도 치지 않는 이상 그녀가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불가능했다.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휘말려들면 안돼. 아무리 그래도 사기는 아니었다. 애초에 방법도 말도 안된다. 페가수스에게 마법을 걸어서 카지노에서 사기를 치다니.

"카지노가 그걸 모를까요. 아무리 그래도 마법을 쓰면 금방 들킨다고요."

"아직 자세한 방법도 말 안해드렸는데."

궤변이다. 플러터샤이는 강하게 부정했다. 그런 방법이 있을리가 없었다.

"사실 전 이미 예전에 한 적이 있어요."

칠하트가 말했다.

플러터샤이는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유니콘이라면 한번 쯤은 카지노에서 이런 생각을 하죠. 카지노에서 마법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돈을 전부 쓸어 담을텐데. 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포니는 없죠. 마법이 금지된 카지노에서 대놓고 쓰면 들킬게 뻔하니까. 하지만 전 가능해요. 아니, 저만 가능해요."

플러터샤이는 자신도 모르게 칠하트의 말에 경청했다.

"다른 포니들이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오라 때문이죠. 유니콘이 마법을 쓸 때 보이는 것 말이에요. 알죠?"

플러터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니콘은 마법을 발현할 때 뿔에서 빛이 난다. 그 색은 유니콘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밝은 빛을 띄기 때문에 금새 눈에 보이곤 한다. 아무리 옅은 색이여도 뿔 주위에 보이는 색을 보면 누구라도 마법을 쓴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마법의 대상이 되는 물체에도 그 오라가 감싸져 있다. 유니콘이 마법으로 책을 들어올린다면 뿔은 물론이고 책도 빛나게 된다. 아무리 카지노가 조명이 밝아도 바보가 아닌 이상 페가수스에게 마법을 걸어 두어도 오라 때문에 눈에 뻔히 보일 것이다. 플러터샤이도 칠하트의 계획이 황당하단 생각은 거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걸 감추는 방법이라도 있다는 건가요?"

플러터샤이가 물었다.

"감출 필요도 없어요. 눈치 못챘어요?"

칠하트의 뜬금없는 질문에 그녀는 의문을 표했다.

"뭐가요...?"

"전 아까부터 마법을 여러번 썼는데 혹시 제 오라가 무슨 색인지 기억하세요?"

칠하트는 펜으로 수첩에 무언갈 적을 때도, 담배를 필 때도, 차를 마실 때도 마법을 쓰고 있었다. 분명 그랬던건 기억나는데 오라가 무슨 색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의식하지 않아서였나? 아니 애초에 본 기억도 없는것 같았다.

"......"

플러터샤이가 생각에 잠겨 기억을 더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 못하는게 당연하죠."

칠하트가 웃으며 마법으로 컵을 들어올렸다. 플러터샤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흰 뿔은 물론이고 컵의 손잡이도 있어야 할 오라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컵이 저절로 공중 부양하듯 칠하트의 입술로 옮겨지는것 같았다. 플러터샤이는 멍하니 그녀의 뿔을 바라봤다. 눈뜨고 코 베인듯한 기분이었다. 왜 이제껏 이걸 몰랐던거지.

"제 오라는 투명해요. 어두운 곳에선 빛나긴 하지만 밝은 곳에선 전혀 눈치채지 못하죠."

칠하트가 탁자에 컵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뿔은 방금 전 까지 빛나고 있었을텐데 아무런 변화도 없는것 처럼 보였다.

"어떻게 그런..."

오라가 투명한 유니콘은 본 적도 없었다. 대부분의 포니들은 마법을 쓰고 있다는걸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칠하트라면 눈 앞에서 웃는 얼굴로 탁자 밑에서 마법으로 무슨 짓을 해도 전혀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전 이게 제 특별한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특별한 재능이기는 했다.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재능이었다.

"이제 아셨죠? 제가 플러터샤이에게 마법을 걸어줘도 들킬 걱정은 없어요. 보이질 않으니 마법인지도 모르겠죠."

칠하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가 직접 경험해보니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칠하트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가 있는데... 사실 오라를 들키지 않고 마법을 쓴다해도 문제가 있어요. 보통 포니들 생각은 마법을 쓴다면 몰래 염동력으로 카드를 옮기거나 하는 사기를 생각하곤 하는데... 생각보다 카지노가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한 두번이야 속일 순 있겠지만 그런 짓 하면 금방 들통이 나죠. 딜러들 눈썰미도 날카롭고 카지노를 배회하며 감시하는 직원들도 상당히 많거든요. 애초에 그런 종류의 사기는 증거가 남아요. 현장에서 잡아버리면 발목을 잡힐 수 있다고요. 하지만 우리가 쓰는 마법은 전혀 다른 종류에요. 절대로 들킬 염려도 없고 증거도 없고 애초에 존재조차 모르는 마법이죠. 왜냐면... 제가 개발했기 때문이죠."

"그, 그게 무슨 마법인데요?"

"보여주는게 빠르겠죠?"

칠하트가 기다렸다는듯 서랍에서 마법으로 무언가를 꺼냈다. 케이스에 담긴 카드 한 세트였다. 그녀는 카드를 케이스에서 꺼내더니 능숙하게 셔플하기 시작했다. 플러터샤이는 영문을 몰랐지만 그저 지켜봤다. 갑자기 마술을 보여주려고 카드를 꺼낸건 아니겠지.

칠하트는 카드 두장을 뒷면이 보이게 나란히 책상위로 올려두었다.

"분명 뒷면으로 올려두었어요. 보이시죠?"

"네... 보이긴 하는데."

보이긴 하는데 어쩌라는거지. 플러터샤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제가 플러터샤이에게 카지노에서 쓰게 될 마법을 직접 걸어드릴게요."

칠하트는 뿔이 플러터샤이에게 향하도록 고개를 숙였다. 지금 마법을 쓰는 중인가? 뿔이 빛나지도 않아 구분도 안됐다.그녀는 눈이 가려워 발굽으로 눈을 비볐다.

"자, 됐어요."

그녀는 자신의 몸을 둘러보았다. 어디 달라진 곳이 있나 확인했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애초에 오라도 안보여 어느 곳에 마법을 썼는지도 몰랐다. 이제와서 장난이었다고 하진 않겠지.

"아무것도 못느끼겠는데요."

"탁자를 보세요."

칠하트가 밑을 가리켰다. 플러터샤이는 탁자를 보았다. 탁자위에는 카드 두장이 앞면으로 보였다. 하트 K와 클로버 3이었다. 어느 틈엔가 칠하트가 뒤집어 놓은것 같았다.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요."

"카드 두 장이 뭔지 알겠어요?"

"그야 당연히 알죠. 앞면으로 뒤집었잖아요. 하트 K랑 클로버 3이요."

플러터샤이가 답답해 하며 말했다. 마법을 보여준다면서 자꾸 쓸모없는 질문만 던지는것 같았다. 칠하트는 오히려 그녀의 그런 반응을 즐기는지 쿡쿡 웃었다.

"전 카드를 뒤집은 적 없어요. 카드는 계속 뒷면이에요."

"네? 그럴리가..."

카드는 분명 앞면이었다. 카드에 그려진 문양과 숫자를 그녀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탁자 위의 카드를 집어 뒤집었다. 그녀는 숨을 헉하고 삼켰다. 카드의 뒷면 무늬는 보이지 않고 앞뒤가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한 장의 카드를 뒤집어 보았다. 역시나 똑같았다. 그녀는 몇번이고 카드를 뒤집어 보았지만 어느 면에서나 카드의 문양과 숫자가 보였다.

"이제 다시 마법을 풀어볼게요."

그녀가 뿔을 다시 갖다대며 말했다. 눈이 따가워지는 감각에 질끈 감았다.

그녀가 다시 눈을 뜨자 그녀가 들고 있는 카드의 뒷면이 보였다. 그녀는 그제서야 마법의 정체를 눈치채고 칠하트를 보았다.

"이제 아시겠죠? 제 마법을 카드의 뒷면을 투시하는거에요."

칠하트가 말했다.

자신만만했던 칠하트의 태도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만 된다면 이건 엄청난 능력이었다. 플러터샤이의 시선은 카드와 칠하트로 왕복했다. 그녀의 심장이 쿵쾅 뛰기 시작했다. 사기는 쳐선 안된다는 양심의 마지막 외침도 멀어져갔다. 머리속에선 이 능력으로 활용될 무궁무진한 가능성만 보였다. 

칠하트는 마법으로 카드들을 모아 다시 케이스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다시 제안할게요. 저는 플러터샤이와 같이 일하고 싶어요.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칠하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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