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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역할을 포기한 한국 사회
게시물ID : movie_384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eginAnew
추천 : 2
조회수 : 73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12/28 22:10:00

  가정과 사회, 국가는 개인을 지켜줘야 하는 울타리다. 보호와 양육이 잘 되는 사회는 훌륭한 사회이고, 그렇지 못한 사회는 황량한 사회이다. 안타깝게도 영화 '파수꾼'의 기태, 동윤, 희준이가 살고 있는 무대는 분단과 기형적 구조로 점철되어 있는 한국 사회이다. 근대의 영국식 학제는 유럽본토에서는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서열구조로 고착화되었다. 이런 서열구조에 '중독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서열 개념을 내면화하는 '학습'을 시킨다. 황량한 11월 전 국가적으로 개최되는 '수능 시험'은 바로 그 최절정판이다. 학교와 가정은 아이들에게 공부하도록 교육만 하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에 대해선 함구한다. 비극이 자라나기에 '너무도 비옥한 토양'이다.


  이 세 명의 친구들은 그러한 삭막한 교육 공간에서도 자기들만의 우정을 싹틔우며 서로의 삶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친구들 간에도 보이지 않는 권력 관계가 있다. 특히 희준이는 독단적인 기질을 갖고 있는 기태에게 다소 불만을 품고 있다. 결국 이들의 아슬아슬한 우정의 관계는 낯선 사랑이 찾아오면서 깨지고 만다. 우정과 사랑은 잘못 작동하는 사회를 견딜 수 있는 힘이고, 역동적인 생명력을 발생시키는 관계이다. 그 중에서 자기 짝과 함께하려는 본능은 '친구 맺기'보다 더 강력한 내재적 힘이다. 희준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보경'이가 기태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깨닫고 난 후 환골탈태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즉, 같이 다니던 친구 무리와 소원해지고 자기 내면으로 몰두하기 시작하는 사춘기를 겪는 것이다. 그러나 기태는 그러한 희준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투박한 폭력으로 예전의 우정을 되찾으려 한다. 기태는 우정의 중요성을 알지만 어떻게 우정을 맺는지는 잊어버렸다. '짱' 따위의 서열에 매달려 본래의 순수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 교육의 서열구조가 기태의 내면에 '일진', '짱'등의 개념으로 다시 태어나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사회, 학교, 가정은 그에게 남의 위에 올라가 성공하라고만 했지 남들과 잘 사는 법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기태의 불행은 그에게 무관심했던 아버지의 잘못이고, 입시 경쟁만을 강요한 학교의 잘못이고, 그러한 교육제도를 유지해온 사회의 책임인 것이다. 동윤은 그것을 알고 있다. 기태의 아버지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물었을 때 동윤이는 오히려 되묻는 것이다. '아버님은 저에게 하고 싶은 말 없으세요?' 순수했던 한 아이가 어떻게 그 지경까지 치달았는지에 대해 동윤이는 사회와, 학교와, 가정에 되묻는 것이다. 기태의 죽음은 순수했던 생명의 죽음이 아닌 사회의 병폐를 닮아버린 병자의 죽음이었다. 그래서 동윤이는 기태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고 그저 방 안에서 슬픔에 흐느껴 살아 온 것이다.


  기태가 희준이처럼 눈치가 빨랐다면, 혹은 동윤이처럼 통찰력이 있었다면 희준이와의 우정의 균열을 웃어 넘기고 자신에게 관심을 표한 '문제의 그녀' 보경이와 사랑을 했을 것이며 자신에게 끝까지 남아주려 했던 동윤이와도 친구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비극을 뚫고 나갈 '내재적 힘'이 부족했으며 그 공허함을 '최고'가 됨으로써 극복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한다. 결국 그는 '최고'에 몰두한 나머지 우정과 사랑을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문제는 그가 동윤이에게 가시돋친 말을 듣기 전까지 자신의 현실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교육이 가르치는 바대로 '최고'가 되면 모든게 해결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도 절박한 목소리로 '내가 어떻게 하면 되?'라고 되묻는 것이다. 기태는 마지막 우정이 파괴된 이상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극적으로 깨닫는다. 


  동윤이는 기태와 놀던 한적한 기찻길에 앉아 기태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본다. 기태는 야구공을 들고 '언젠가 만루홈런을 치는 타자'가 될 것이라 호언장담하고 있다. 동윤이는 그의 말을 웃어 넘긴다. 기태가 우월감에 찬 목소리로 묻는다. '누가 최고야?'  '내가 최고지?'  '내가 최고지?' ... 동윤이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다. 그 '최고'에 대한 집착이 기태를 죽게 만들었다. '최고'는 있을 수 없다. 사회가 주입한 허구적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태가 죽기 훨씬 전부터 동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윤은 이제야 기태에 대해 완전히 깨닫는다. 그 홀로 겪었을 모순과 고뇌, 방황을. 순수한 우정을 원했음에도 동시에 남보다 위에 있고자 했던, 한국식 교육의 모순을 내면화했던 한 소년을. 그래서 동윤이는 슬픈 눈물과 함께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그래 네가 최고다 친구야' 라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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