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김연성, 모르는 곳에 산다
내가 모르는 곳에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슬퍼질 때
오랜 지병(持病)이 찾아오고
외로움의 본적(本籍)은 짐작할 수 없는 곳이다
혼자 가난해지면
돌아갈 주소(住所)를 찾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별의
푸른 심장을 향해 교신할 주파수는
점점 희미해지고
메니에르증후군으로 자꾸 눕고 싶어지는 날
지랄 같은 생존을 위해
오늘은 어떤 항체를 구해야 하나
최후에 뜯어먹을 한 점 빛의 혈육(血肉)도 없는데
어두워지는 가슴 안의 적소(謫所)이거나
얇은 바람이 후다닥 지나간 공터 위
희끗한 별 하나 돋는 날이면
생의 바깥쪽으로 걸어오는 당신이 기우뚱 보인다
내일 밤 폭설이 내린다
헛디딘 발자국소리 지워지지 않는다
흰 눈을 뒤집어쓰고
눈 속의 풍경이 가장 무거워지는 한낮
별이 녹는다 설맹(雪盲)의 시야 속에
한 마디 전언(傳言)도 남기지 않은
별빛은 더 이상 지상으로 흐르지 않는다
정철훈, 내 쪽으로 당긴다는 말
새벽이 차다
내가 자고 나온 방을 질질 끌고 나온 것 같은
새벽이다
동아줄을 어깨에 감고 무언가를 끌고 있는 느낌
일리야 레삔의 그림에서 배를 끄는 노예들 가운데
내가 끼어 있는 것 같다
실은 아무것도 끌지 않는데
내 쪽으로 끌어당겨지는 무언가가 있다
내 쪽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
인간의 이기심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끌어당긴다는 것은 내 쪽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내 쪽으로 끌어당기는 포옹
내 쪽으로 흡착하는 입맞춤
내 쪽으로 힘껏 끌어당기고 있는 사랑한다는 말
말이 당겨진다는 것
당겨져 어깨에 얹힌다는 것
평생 노예가 되어 끌어당겨도 좋을 사랑한다는 말
동아줄이 자꾸만 짧아지고 있다
정일근, 퇴행성의 별
의사는 내 별의 무릎 통증을 퇴행성이라 진단했다
그것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별의 뼈가 늙기 시작했다는 것
일찍 저무는 저녁 하늘 위에서
내 별은 내 안에서부터
내 밖의 나보다 먼저 아프게 늙어가고 있다
진은영, 우리는 매일매일
흰 셔츠 윗주머니에
버찌를 가득 넣고
우리는 매일 넘어졌지
높이 던진 푸른 토마토
오후 다섯 시의 공중에서 붉게 익어
흘러내린다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우리의 사계절
시큼하게 잘린 네 조각 오렌지
터지는 향기의 파이프 길게 빨며 우리는 매일매일
정진규, 사진
이런 눈물을 본 적이 없다
우는 입술을 처음으로 눈여겨봤다
우는 입술은 흔들림의 본격(本格)이다
실로 첨예하다
흔들림이 슬픔 쪽으로만 깊게 쏠린다
슬픔이 완성되고 있다
내가 내안에 것들을 저런 실물(實物)로 빚는 몸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내 슬픔이 저토록 온몸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하나뿐인 사실의 본격(本格)이라고 적어놓는다
이만큼 자꾸 사실보다 더한 사실로 넘어가려는 감동을
내가 울어서 들어낸다
제자리에 앉힌다 눈물이여
내가 덜어낸 눈물만으로도 벌써 눈물다워 있는 눈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