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발언에 대해 법조계는 의외라는 반응 속에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최고 통치자가개폐논란을 직접 정리, 혼란을 최소화시켰다”며 환영했다. 국보법 개정론에 서 있던 법무부와 검찰, 국보법 존치론에 무게를 실었던 대법원은 당혹해 했다.
월권 논란까지 빚어가며 국보법 폐지에 반대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등 사법기관은 다소 허탈해 하는 모습이다. 국보법 독소조항을 합헌결정하고,국회가 이를 존중할 것을 주문한 헌재는 “입장은 충분히 밝힌 바 있다”며 코멘트 하지 않았다. 헌재 관계자는 “오로지 결정문으로 말할 뿐이며, 그 이후 새로운 상황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대법원도 현재 “표명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나, 일선 판사들은 대통령의발언이 적절치 않다고 문제를 삼기도 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국보법을 법리적으로만 따질 게 아니다’고 한 발언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는 대통령이 할 얘기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이 소신대로 하겠다는 것이니 법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것 같다”면서“현 체제의 최대 수혜자인 대통령이 이 체제를 유지해온 법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법무부와 검찰은 대통령 발언이 국가인권위의 폐지권고와 달리 행정적 구속력을 지니는 만큼 입장 표명은 자제하면서 발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고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장관 말씀을 들어봐야 하겠지만, 장관이 대통령과 다른 입장을 건의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여운을 남겼다.
김승규 장관은 지난달 취임 기자회견에서 “모든 나라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을 방어하는 법적 시스템을 갖고 있다”며 완곡하게 국보법 폐지에 반대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법도 시대 변화에 따라야겠지만, 국보법을 폐지하고 형법으로 대체하는 일은 개별사건 처리과정에서 문제점이없는지를 충분히 검토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며 신중론을 폈다.
그러나 민변 등은 “국보법을 일부 개정해도 인권유린, 평화통일 노력에걸림돌이 되는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며 대통령의 폐지 발언을 크게 반겼다. 김선수 변호사는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감각이 있다면 국보법 폐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며, 따라서 대통령의 입장은 너무나 당연하다”며 “반발이 없지 않겠지만 이는 결단의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