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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신도시
게시물ID : lovestory_937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허담
추천 : 1
조회수 : 89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11/02 08: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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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른 장작같은 얼굴로 승강장 앞에 서서 발디딜 틈 없는 전철 안쪽을 바라본다. 내가 한발자국 내딛으니 문앞에 있는 한 여자가 가방끈을 꼭 쥔 손을 가슴앞에 모으고 왠지 평소보다 더 긴장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럴 필요 없지만 왠지 좀 미안하다. 그렇다고 이 차를 타지 않을 이유도 없다. 다음 차를 기다리면 다음 여자가 긴장하겠지. 

 과거는 그립고도 부끄럽다. 돌아가고 싶다가도 돌아가고싶지 않다. 이정도 살았으면 이제 허물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제 일산같은 나이다. 신도시라 불렸었고 이제는 그럴 수 없지만 입에만 붙어 남아있다. 내 모든 기관이 40년을 버텼다. 갈라진 곳을 메우고 수도 배관에서 녹물이 나오며 엘리베이터도 교체시기가 지나 장기수선 충당금을 만지작거린다. 근데 나는 이제 괜찮다. 40년간 제 기능을 다 했고 후회도 미련도 없다. 

 슥슥 거리는 걸음으로 거실에 나와 아침뉴스를 튼다. 잠을 깨는 하나의 의식이다. 저번 주말부터 뉴스를 보면 슬픔과 화남이 진자운동을 한다. 그들은 말도 안되는 사고로 인해 젊은 육체를 잃음으로써 앞으로 일인칭으로 닥칠 사랑과 기쁨과 슬픔과 좌절과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모두 잃었다. 

 세월이 가는것에 하소연 않는다. 세월은 누구나 가니까. 하지만 그들에겐 세월이 가지 않았다는게 문제다. 

 재난 상황에 아이를 먼저 구하는 이유는 우주의 먼지같은 삶이라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인류애이다. 

 젊은 죽음이 더 안타까운건 누구나 가야하는 세월이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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