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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sisa_93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난향
추천 : 6
조회수 : 282회
댓글수 : 20개
등록시간 : 2004/09/06 18:43:08
한민족을 우습게 보지마라...
조선조때, 기술직을 천시했다고?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고고한 정신세계의
완성을 목표로 매진하는 지배층이 있었던가?
세계사를 보라.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지배층은 경제적 이익을
독차지 했고, 독점했다. 즉, 돈으로 피지배 계층의 숨통을 쥐었다, 놓았다
하면서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조선의 선비나 사대부는 부를
점유하는 것 자체를 천한 것으로 여기고(의식적, 의도적으로 그렇게 제도화 하므
로써) 지배계층으로 하여금 백성의 생활에 악영향을 끼치지 못하게끔 시스템을
짜놓고, 부의 축적, 기술분야는 중인계층으로 한정해서 사회적 안정을 꾀했
다.
조선왕조가 이전 왕조와 대조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민족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조선왕조는 그 존속기간 내내 역사적 가치가
폄하되었고, 쪽바리들의 의도적, 계획적 조작으로 많은 부분 훼손되었다..
하다못해, 놋그릇, 세수대, 기타 금속제품은 남아있질 않은 현실에서, 무엇으로
우리 조상의 삶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왜와의 관계에 있어서 지금 그것들은 "과거의 일은 자신들과는 상관없다, 우린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공존해야 할 것이다."라는 달콤한 말로 과거를 묻으려
한다. 과연 그럴까... 역사를 보자..
임란이후, 조선 정부는 왜에게 보상과 책임을 물었다. 도쿠가와 왈,
지금의 일본은 조선침략의 일본과 다르다, 그에 대한 책임있는 정권이 없다,
우리는 조선과 새로운 관계를 원한다.." 이따위 말로 대충 넘어가려했고,
조선으로서도 국내정세와 통상의 필요성으로 인해, 유야무야 허락하게 되므로써,
정리되지 않은 역사가 약 300여년 뒤, 이땅에 더러운 쪽발을 들이밀게 되었다.
우리민족의 역사상 가장 가혹한 수탈의 뒤끝에, 원숭이들은 또 혓바닥을 나불
거린다. "유감스러운 과거는 잊고, 동반자로서 새로운 세기로 전진하자."
무엇이 유감인지는 모르겠다, 우리 생각대로 우리를 침략한 일이 유감인지,
완전히 집어삼키지 못한 일이 유감이라는 건지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조선을 침략하고 식민지화한 왜인과 지금의 왜인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들은 그렇게 쉽게 말하고 피하려 한다. 그건 또 과연 그럴까...
왜가 이땅을 밟으려 한 큰 시도는 세번으로 본다, 나는.
첫번째는, 여말, 왜구로 시작해서 정규군 형태로 발전한 시기. 유래없는
대규모 도발이라, 왜구가 몇 번 재미를 보자 이에 교묘히 위장해서 조직적인
침략을 해왔던 사건.. 영웅 이성계에 의해 지리산 자락에 뼈를 묻어 한줌
거름으로 "전멸"하고, 박위와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한 때까지의 시기(이성계
를 감히 영웅이라 하는 이유는 추후 기회가 되면 정리하도록 하죠. 모든 전투에
서 장군이 직접 선두에 서서, 말이 죽으면 갈아타면서 지휘를 하는 장군이
흔하진 않습니다..)
두번째, 임란의 도발. 새로운 무기와 수십년간의 싸움으로 다져온 전술전략
으로 대규모 유린을 자행한 시기. 꽤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본인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원균이 수장한 조선수군 1만이다.. 백명씩 나눠도
백대의 전선을 무장할 수 있는 병력...이 병력이 손실되지 않았다면, 임란의
끝은 "임진의 역"으로, 도쿄나 오사카에서 마감됐을 것을 장담한다..
세번째, 안타깝지만 경술국치... 이시기가 피눈물 나는 것은, 문화유산, 생활
유산, 각종 지적문화재, 전통기술, 공동체양식, 정치경제 시스템, 역사자료 등
등 너무나도 깊고, 방대하고, 철저히 파괴됐다는 것에 있다.
함께 토론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시간관계상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우리가
왜놈을 착각하지 말아야 할 이유로 가름 하겠습니다.
집에서 기르던 개새0한테 발 뒤꿈치를 물렸다면 기분 더럽죠... 아버지를
물었던 개새0가 나는 물지 않으리라는 장담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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