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말하지만, 역대 정부 중에서 반북 노선을 걸었던 정부는 이승만 정부 밖에 없었습니다.
그 반북 노선이라는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북진 통일론이었습니다.
이것은 북한을 '38도 이북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고,
오로지 소탕의 대상으로 삼은 정책이었죠.
당연히 대화나 평화 운운하는 인물은 '반국가 역적'으로 규정하고 사법 살인을 남발했습니다.
또 이를 악용하여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 같은 취급을 하였죠.
이 기조는 제네바 회담 이후 통일 정책이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로 바뀐 이후에도 유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3조를 아실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이것은 일명 영토조항으로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헌법적 근거가 됩니다.
이 조항은 제헌국회에서 제정되었죠.
그리고 위의 헌법 제 3조와 자주 충돌하는 조항이 있으니,
바로 헌법 제 4조입니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이 조항은 일명 통일 조항으로서 보시다시피 통일을 말하고 있죠.
중요한 것은, 북한을 '토벌'해야 할 대상이 아닌 '통일'해야할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조항으로 인해 헌법 제 3조의 해석이 단순한 전체 영토를 규정하는 조항이 되었습니다.
법학자들 대부분도 헌법 전체의 이념과 정책으로 볼 때에 헌법 제 4조가 우선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북한을 불법 단체로 규정하는 헌법적 근거가 힘을 잃게 된 것이죠.
그럼 이 '大 빨갱이 조항'은 언제 추가 된 것일까요?
대한민국 헌법은 제헌헌법 이래 9번의 개정을 거쳐 현재의 10호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7호 헌법까지 '통일'이라는 단어는 단 한 개도 쓰여져있지 않았습니다.
419혁명 이후에는 반공 기조는 약화되었지만,
통일 정책과 '북한 불승인 원칙'은 장면 내각이 이어 받았습니다.
여기까지 북한은 국가 대 국가의 통일이 아닌, 총선거로서 흡수해야 할 대상이었죠.
'통일'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8호 헌법, 즉 박정희의 유신헌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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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헌법 전문 中
'...5·16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유신 헌법 제35조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추진하기 위한 온 국민의 총의에 의한 국민적 조직체로서
조국통일의 신성한 사명을 가진 국민의 주권적 수임기관이다.
유신헌법 43조
3항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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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 초풍에 경천동지 할 일이었죠.
반드시 토벌해야할 '적'과 평화적 통일을 해야한다니?
박정희는 이에 그치지 않고,
1973년 6.23 선언에서 UN 동시 가입을 주장하며 아예 쐐기를 박아 버립니다.
당시까지 UN이 인정한 합법 정부는 남한 정부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만이 가입할 수 있는 UN에 동시 가입 한다는 것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승만이 무덤을 박차고 나올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가 북한 애호가라서 이러한 정책을 세운 것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사실, 박정희가 이처럼 북한에 꼬리를 친 것은 자신의 안정적인 종신 집권을 위함이었습니다.
즉, 안정적인 분단 유지가 목적이었죠.
실제로 이러한 조치가 영구한 분단으로 가는 것을 우려한 김대중은 박정희의 친북 정책을 반대했습니다.
이쯤되면 누가 빨갱인지 구분이 가지 않기 시작합니다.
당시 미국과 중국의 우호적인 분위기로 세계는 평화의 열기에 매우 들떠있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전쟁 위협으로 재미를 보고 있던 양국 독재자들에게는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평화 = 전쟁 X = 얄짤 없이 닥치고 통일 =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 ㅂㅂ 이렇게 되버리니까요.
그래서 그 둘은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우선 영구한 분단으로 가는
'두 개의 한국, 두 개의 조선'에 대한 합의가 필수적이라는 데에 동의를 했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양국 독재자들은 7.4 남북 선언을 통하여 화해 무드를 조성합니다.
정말 곧 통일 할 것처럼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해댔죠.
그러고는 5개월 후인 12월 27일에,
두 독재자는 각각
대통령이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력을 가지고 종신 집권 할 수 있는 유신헌법과,
국가의 모든 권력을 틀어쥔 국가 주석이 신설 되고, 1인영구지배체제를 확립하는 주체헌법을 동시에 발효합니다.
그러고는 동시에 통일 세력들을 '반국가 이적 단체'로 규정하고 때려 잡기 시작하죠.
그리고 통일은 오로지 정부가 하는 것만이 '빨갱이가 아닌 통일 정책'이 됩니다.
물론 통일할 생각은 개미 눈꼽 만큼도 없습니다.
(날짜까지 정확히 같습니다.
'맞춘 듯이'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맞췄을 가능성이 매우 크죠.
김일성과 박정희가 서로 '내통'해 왔다는 것은 각종 국제 문서의 공개로 밝혀진 사실이니까요.
심지어 10월 유신 계엄령의 의도와 집권 강화 계획을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알리기도 했습니다.
참 사이가 좋았죠.
이는 박정희가 북한을 어떻게 바라 봤고,
또 반공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반공'으로 국민을 통제했던 대통령이,
친북을 천명하는 헌법으로 종신 집권의 길을 닦았으니 말입니다
결국 반공은 그저 권력 강화를 위한 도구일 뿐이고, (너 빨갱이. 니도 빨갱이. 넌 뭐야? 너도 빨갱이!)
적화 통일에 대한 공포는 그것을 위해 조작된 분위기입니다. (서로의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위해 내통해 왔으면서 적화 통일은 무슨...)
이것을 부정한다면, 박정희는 정신병자가 됩니다.
(박정희 : 북한 짜응 다이스키!! 북한 짜응 놀아 달라능!! 뭐? 북한이 좋다고? 이 빨갱이 새X가!!!
- 이렇게 써놓으니 북한의 사랑을 독점하고자 하는 질투심에 눈이 먼 짝사랑남)
이것은 이후 독재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역대 정부 중 최초로 '선평화 후통일'에 입각한 구체적인 통일 단계를 제시했던 전두환 정부와,
UN 남북한 동시 가입을 실현시켜 북한을 '국제 공인 합법 정부'로 인정 받게 한 노태우 정부도 다를 바가 없죠.
그랬으면서 안으로는 반공!멸공!을 외쳐댔으니 누가 보면 정신 병자가 따로 없습니다.
역사를 모르면 그 역사는 반드시 반복됩니다.
반공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고 또 어떤식으로 쓰여져 왔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아야 비극의 반복을 막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