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논리에 인생을 저당잡힌 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삶이 나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내 눈에 비치던 모든 세상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난 더 이상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게 되었고 홀로 생각에 잠기기만 하는 날들이 점차 많아졌다. 처음엔 모든 것이 역겨웠고 세상 온갖 것들이 허위와 가식 속임수들로 가득찬 듯 느껴졌으며 심지어는 먹고 마시는 것 또한 싫었다. 하물며 예전처럼 생각없이 한심한 농담을 떠들어대며 웃고 즐기는 것은 상상할 수 조차 없게 되었는데.. 이러한 변화가 너무나도 괴로워 때때로 내가 갖고있는 고민들을 토로하면 사람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말한다. "넌 너무 생각이 많아, 생각을 줄여봐", "웃어봐, 그럼 행복해질거야", "네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해야해", "넌 너무 비관적이야, 긍정적인 부분만 보려고 노력해봐" 하지만 이런 말들은 나를 더욱 더 우울감에 잠기게하고 나의 상황을 계속해서 악화시키기만 할 따름이다.. 사람들이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할 때 나는 내가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가고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저 매사에 죄책감이들고 자기혐오만이 더 커져갈뿐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본다 애초에 그냥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둡고 음침한 경험들을 하지 않았더라면 밝은 것들만 보고 단순한 것들만 좋아했더라면 주위 사람들과 무리없이 어울리고 하하호호 재밌게 웃으며 떠들며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혹자는 아는게 힘이고 모르는게 약이라지만 알면 알수록 나는 힘이 없다는 것만을 더 뼈저리게 느낀다. 현실은 너무나 거대하고 난 이 현실 앞에서 무릎꿇을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차 더 분명해진다.
내 마음 속에 간직한 검은 고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교해지고 예리해져 쉽게 떼어낼 수도 없이 내 마음을 마구 쑤셔댄다. 견딜 수가 없어 주위 사람들에게 토로해보지만 그들도 딱히 이렇다할 답을 내놓진 못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저 생각없이 남들이 닦아놓은 길을 묵묵히 따라가는 이유가 이래서였을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혼자 남겨져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른채 방황만 하는 그런 느낌이 자주 든다. 혼자 있는게 너무나 두렵다. 새벽에 나홀로 앉아있노라면 내가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 자주 든다. 그럴때마다 내 손을 보면 내 손이 내 손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얼굴이 내 얼굴이 아닌 것같다. 나의 모든 것이 낯설다. 내가 내가 아닌건 무슨 느낌이었을까 나는 무슨 의미일까 이유없이 울고 싶을 때가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울음은 잦아진다 처칠은 지금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면 그 경험을 계속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지만, 나는 이 우울한 시기가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치던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맘 뿐이다. 내 마음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어느날 뿅하고 사라진 것만 같은 느낌.. 더 이상 사람들과 가볍게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같은 그런 느낌이다.
어느 한순간 죽음이 찾아와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면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라는 물음을 가슴 속에 품게된 것이 첫번째 전환점이었다. 봉사활동을 떠났던 친구가 미처 피지 못한 청춘을 간직한 채 한줌의 재가 되었을 때. 그 친구의 영정사진을 보며 느낀 슬픔은 사실 나에 대한 슬픔이었으리라. 친구의 죽음은 결국 나 또한 언제든지 죽음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고 나의 삶 자체가 예고없이 한순간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기에 그때부터 왜 인간은 죽어야만 하는 것이며 삶의 이유는 무엇이고 인간은 과연 무엇을 추구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라는 고민을 시작했다. 죽음에 대한 내적 저항과 삶에 대한 환멸.. 그리고 다시금 죽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기나긴 여행의 시작점이 그렇게 쓰여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속 많은 사람들은 정말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그리 깊게 하지 않는다. 그네들의 삶은 대게 거짓과 허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거나 못 한다거나 하는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여러 대상들에 대해서 그저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 좋아한다. 물론 나 또한 그렇다. 이를테면 다양한 사물이나 대상들.. 심지어는 땅과 사람, 짐승과 같은 존재들에 대한 것까지도. 다시 말하자면 나의 것, 나의 소유라는 것으로 말하며 사람들은 그 무언가를 단지 나 혼자만의 것으로 정의내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들은 많은 것들에 대해서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점차 더 많아질 수록 자신은 더더욱 행복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낮고 저급한, 소위 말하는 사적 권리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것들은 다른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 사람들이 인생에서 바라는 것은 숭고한 삶의 경험이 아니라 단지 많은 것을 나의 것이라 단정짓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땅따먹기 놀이를 하는 것과 같아서, 아이들이 놀이가 끝나고 집에가면 그 놀이는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마냥 우리도 언젠가 죽음을 마주하게되는 순간 우리가 그토록 목숨걸었던 사적 권리들이 결국엔 보잘겂없는 하나의 놀이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내가 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하자면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사랑할 줄 모르고 살아갈 능력조차 없어보인다. 그들이 하는 행위란 그저 하루 하루 삶을 연명해가며 삶의 만족을 위한 인생이 아닌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을 채우기 위한, 허영을 위한 것들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현명한 방법으로 재산을 불릴 수 있는가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본의 논리에 타협하고 영합하며 돈이라는 한가지 통로만을 열심히 쫓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평범한 대다수 사람들의 인생으로 바라본다. 특별한 재주가 있지도 않고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는 것도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은 그저 그 출구없는 통로를 끝없이 달리며 앞날이 뻔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들은 기껏 잘되봐야 조금 더 잘 사는 서민이될 뿐이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나는 어디로 가고있는가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흥에 겨워 하하호호 행복한 얼굴로 떠들어대지만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심드렁해졌다. 그들은 어째서 마냥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것일까하는 물음이 생긴다. 그리고 나는 왜 저들처럼 단순해지고 행복해질 순 없는 걸까 하는 불만이 고개를 든다. 하지만 행복한 돼지로 살 바엔 우울한 소크라테스로 사는 것이 나으리라 자위하며 돌아선다.
사실 어릴적부터 나는 재산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다. 내게 백만평의 부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서 아무 것도 보태주거나 빼앗아갈 순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건데, 부의 소유는 나에게 많은 가능성을 보태준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통해 나는 또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그 세계에서 또다른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가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 사회 안에서 부는 모든 것의 근본이 되며 원칙이 되고 법이된다. 돈으로인해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구구절절히 경험하게되면서 돈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대한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돈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더 커져만갔다.
어쨌든. 지금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간답게 산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안정되고, 평화롭고 편하게 잘 사는것? 당신이 평생을 한 곳에 안주하며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편하게 산다고한다면 말년에 이르러 지나온 삶을 되짚어 볼 때 무엇이 생각나겠는가? 당시에 기쁨이라 느꼈던 것 모든 것들이 이제 우리의 눈앞에서 녹아내려 부질없는 것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만 행복을 찾을 때, 행복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을 포기한 채 삶을 살아왔을 때 그러한 삶은 어린 시절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현재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기쁨들은 더욱 부질없고 의혹투성이의 것으로 바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좋았던 것은 점차 줄어만 갈 것이고 우리 삶은 지루한 나날들의 연속으로 계속될 것이다. 생명 없는 직무와 돈에 대한 걱정들로 한 해가 지나가고 그 다음 해가 지나가며 그렇게 10년, 20년 항상 똑같았던 삶을 반복하면서 인생은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삶으로 전락하고만다. 이러한 삶은 사회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산을 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일정한 속도로 산을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삶이란 것이 내 발 아래에서 점차 멀어져만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미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인생이라는게 그렇게 덧없고 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 우리들이 살아오면서 추구하는 것은 죄다 거짓이고 사기에 불과하다. 이것들이 우리의 눈을 가려 삶과 죽음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