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이나 윤리에 대해, 시대의 보편적 가치에 따라 상대성을 띄게되는 사회적 합의라고 귀결 된 것 같다.
시대적, 지역적, 문화적 상대성을 띈 도덕에 기반한 상식과, 합리적이성이 다르기에 시대, 지역, 문화가 구분된다.
이 구분들이 서로 반하게 되는 상태를 넘어, 어느 한쪽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경우 곧 분쟁-전쟁으로 이어져왔고 행해지고 있다.
한쪽에선, 이게 당연한데, 상대편에선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 요약하자면 이것이다.
난 이게 내껀데, 넌 이게 니꺼라고 하는. 그런 것이다. 서로가 보편적 가치이며 합리적 판단이라 믿어의심치 않는 신념이 반하는 것.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보자.
친일청산의 반대되는 시각의 차이
민영화에 대한 시각차
국가적 사건을 대하는 자세의 시각차
국민을 위한 나라에 운영의 시각차
그저, 살면서 흔하게 부딪힐 수 있는 입장차이를 벗어나 행위의 근거가 되는 가치관 자체에서 차이를 보이는 지금.
같은 골격, 같은 DNA, 같은 피부색, 같은 장소에 살고 있지만 과연 같은 문화권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죽이고 살리지 않는다는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렇다면, 입장차 시각차이를 가져오는 건 무엇일까?
명확한 심리적 근원에서 태생되는 가치관의 차이, 계급인식이다. 소유욕. 바로그것.
같은 국민, 같은 인간으로서 상생을 기반으로 인식한다면 180도로 틀어지는 인식의 차이는 절대 발생되지 않는다.
그들은, 확고부동한 지위를 이룩해왔으며, 그 지위가 영원히 공고할 줄 알았지만 그들의 언어로 표현되는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며
강한 위기, 즉 생존(여기서 생존이라함은 단순 의식주가 아닌 사회적 지위에서의 생존이다)에의 위기가 각인되었다 라고 보여진다.
당신은 성주(城主)다.
당신을 받들며, 당신을 존경하는 양민들을 어떻게 대하고 이끌 것인가?
당신은 타 성을 함락했다.
그곳의 백성들은 함락되기 이전 성주를 몹시 그리워하며 무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순응하곤 있지만, 언제나 현재 성주인 당신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하며 비난하며 위기를 조성한다.
이런 성안의 백성들을, 당신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아니, 백성으로 대하긴 할 것인가? 복종하고 말잘듣는 착취, 통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상당한 가치관의 저변에서 오는 입장차이를 보여, 전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려고 애를 써도 납득할 수 없을만큼의 차이를 보이는 현재.
이미 우린, 보이지 않는 총탄과 포화속에서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단지, 전쟁에 참전한 우리 스스로가 느끼지않고, 무뎌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전쟁을 하고 있으나, 우린 정의를 이야기한다.
마치, 휘두르는 총칼 앞에서 '어떻게 같은 사람에게 이럴 수 있습니까' 라고 부르짖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쟁에 임하는 병사는, 강건해야 하며 당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며, 실전에서도 기죽지 않도록 자기 스스로를 바로 세워야 한다.
내가 전사하더라도, 나의 가족이 무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평소 만전을 기해야 한다.
전쟁에서 패한다는 건, 전쟁터가 휩쓸고 난 후 사회적 약자인 아녀자와 아이들이 노비가 되고, 인간이 아닌 그저 고깃덩어리에 불과해지는 것.
그것이 전쟁이다.
그래, 그들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총과 대포를 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도, 작금의 상황은 전쟁에 임하는 적군간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누가 옳고 그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살아야만 한다. 이겨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