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던
일본놈들의 폐망으로
독립 만세 크게 부르며
우리는 해방 맞이했었고
그 후 한동안 공산당이
남침 전쟁 일으킨 6.25
전쟁 일어나기 전까지는
남쪽 특히 영호남에서는
땅을 많이 가진 지주들
이웃 초근목피로 연명할 때
호의호식하면서 살았던 시절
그 시절 계급 소작농 머슴
그리고 최상위는 지주로 형성
가진 것 없어 그 계급을 뛰어
넘어서는 신분 상승은 전혀
꿈도 못 꾸던 그런 시절
또 못난 지주 자식들로 인하여
소작농 머슴 자식은 큰 멸시를
받던 그것이 가슴에 큰 한으로
그런 그들은 어느 날 무작정
밤 열차로 도시나 서울로 향했고
그들은 온갖 어려움
겪으며 알뜰히 모은 돈
고향 부모님들께 보냈고
자식들이 보내 준 피 같은 돈
얼른 소 사고 땅 사고 집 사고
그렇게 차츰 집안 형편 풀렸고
더러 몇몇은 서울에서
또 대도시에서 고학하며
억척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그래서 성공하며 남다른 출세로
온 동네 자랑스러운 부러운
자식이 되기도 했었는데
그렇게 세대와 시대가 바뀌면서
머슴의 자식이라 놀림 받던 그들
공직으로 출세 또는 큰 회사 근무
또 더러는 6.25 전쟁으로 부모 잃고
전쟁고아라고 온갖 놀림 멸시받던 친구도
눈물 감추고 노력 출세해 보란 듯 고향 찾은
그리고 동네 어른들 찾아다니며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온 동네의 부러움 대상이 된
온갖 차별과 천대로 억울했던
젊은이들 고학으로 공부하고
또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던
한편 평소에 놀고먹어도
전혀 걱정 없던 지주 자녀
몇몇은 점점 가세 기울면서
더러는 그 옛날 제집 머슴
소작농 자식이라고 곳곳을
따라다니며 울리거나 놀렸던
또는 전쟁고아라며 참으로
못되게 굴고 멸시했던 그들에게
창피 무릅쓰고 찾아가 일자리 부탁
어느 유명 목사는 그 시절 자기가
그토록 놀림 받던 머슴의 자식이라며
또 어느 공직자 그 당시 전쟁고아였다고
“ 젊은이의 앞날은 아무도 예측 못 한다 ”
“ 그들 마음 다치지 않게 말조심 행동 조심 ”
그래서 생각 많은 꼰대 주변에 수시로 잔소리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