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는 조지아와 러시아 사이의 전쟁을 평하는 전문가들의 담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요는 조지아가 미국만 믿고 불곰 같은 러시아에게 선제공격을 가했으나 미국은 매정히도 조지아를 버렸고 러시아는 일방적으로 조지아를 압도했다는 것이다. 멀리 있는 아군이 용일지언정 가까이의 뱀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교훈이다.
멍하니 라디오를 듣고 있던 친구가 문득 내게 말을 걸었다.
“전쟁이랑 사랑이랑 공통점이 뭔지 알아?”
“음, 시작하기는 쉽고 끝내기는 어렵다?”
“교과서같은 대답이잖아. 근데 사실 전쟁이든 사랑이든 시작하기도 어렵다, 너?”
“그럼 뭔데?”
“전쟁이랑 사랑이랑,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다면 말이지. 전쟁은 일단 이길 계산 다 해 두고 선전포고를 하잖아? 싸우려고 선전포고를 하는 게 아니고 이미 이길 계산 끝났으니까 선전포고를 하는 거라고. 조지아 봐봐. 러시아한테 아무 생각 없이 선전포고 한 거 아니거든. 미국이랑 짝짝꿍 해서 이길 계산 다 했으니 러시아한테 개긴거지. 결과적으로는 믿었던 미국이 안 도와줘서 망했지만 그건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고, 이론적으로는 이길 계산이 다 되어있으니 선전포고를 했단 말이지. 사랑도 그런 식이야. 일단 존재감을 심고 호감을 얻고, 감정을 살살 키워서, 이미 이쯤이면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싶은 그 뻔한 타이밍에 어차피 답이 뻔한 고백을 하는 거야. 알아 듣겠어? 고백은 리스크 테이킹을 하는 도박이 아니야. 실은 계산 다 끝난 걸 괜히 드러내서 확인하는 전시행정 같은 거지. 그럴 거면 고백 따위 왜 하는 거냐고? 글쎄. 고백한다는 건 사랑을 시작하겠다는 게 아니라, 사람을 갖는 작업의 마침표 정도. 사랑은 이미 있었고 그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겠습니다, 하는 것. 전쟁으로 치면 그게 바로 선전포고지 뭐야. 그리고 연애라는 건 이미 이길 계산 되어있는 전쟁을 수행하는 것처럼 이미 계산이 다 되어있는 상태에서 해야 해. 연애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일방적인 확인사살인 것이 더 바람직하지. 편안하고. 세련됐고. 무슨 소린지 알겠어? 사랑과 전쟁은 이미 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계산 되어있는 상황에서 행동한다는 게 근본적으로 비슷한 점이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내가 조지아고, 그 애가 러시아였어.”
“…….”
“…….”
“네 미국은 누구였는데?”
“난 내가 미국인 줄 알았지.”
“…….”
“…….”
요 근래 들었던 비유 중 가장 안타까운 비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