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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가 내둘러 지는 육이오 전쟁전 북한군의 공작
게시물ID : sisa_5692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kwaio
추천 : 3
조회수 : 119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1/09 14:17:58
  육이오 전쟁전 북한군의 공작에 놀아난 채병덕 총장의 어리석음 때문에 수많은 군사적 실수가 있었다는 것은 잘 알여진 사실이다 . 
다수의 군군을 휴가 보내고 ,  다수의 정방의  수송차량등  군장비를 보수를 이유로 부천으로 이동시키고 , 전방부대의 북한군 남침정보를 무시해 버리고 ,  대규모 군 인사이동을 감행하고, 다수의  전력과  피난민이  한강 이북에 있음에도  서둘러 한강다리를 폭파 시키고  전선이 뚫리자  군에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군대의 축차 투입을 지시하였다 .
 
또한 서울 방어에서 어느곳 보다 중요한  동두천 의정부지역을  담당하는 부대에  탄약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라엄광이는 자를  부관을 임명했는데 이자가  간첩이었다니 지금까지 채병덕이 간첩인 라엄광의 계략에 의해 움직인 것인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더구나 해방후 최대의 간첩이었던 성시백의 자택을 수색하던중 최대의 군사기밀 자료인 부대배치도까지 나온것을 보면 부관인 라엄광뿐만 아니라 군 수뇌부에 상당수의 간첩이 있었음이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북한군의 귀신같은 공작이 있었다.  한강다리를 폭파하기 전에  북한군이 남침해 내려올때   동두천 의정부로 어지는 수많은 교량을 파괴하고 전자에 대한 장애물을 설치하였다면  북괴군이 그렇게 쉽게 서울을 점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리 폭파와 장애물 설치를 했어야 할 의정부 주둔 7사단 공병대장 최정훈 소령은  간첩이었고 위장결혼으로  전방에 있어야 할 공병대 간부들  6.24일  하객으로 서울로 불러들여  동두천 의정부쪽의 어느 다리 하나 폭파하지 못했다.   성문을  북한군에게 완전히  열어준 꼴이었고  이후 최정훈 소장은 끝내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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