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꼭 갖고 싶었던 차가 있었다. 머스탱, 어떻게 해서든 더 나이가 먹기 전에 꼭 타보고 싶은 차였다. 특히 흰색 머스탱은 내게 있어서는 일종의 로망이었다.
얼마 전 인터넷에 중고 머스탱을 급 처분하는 광고를 보고, 차량정비소를 운영하는 친구를 대동하고 가서 그 차를 구입하게 되었다. 크게 사고난 것도 없었고, 성능에도 문제가 없었다. 계약도 말끔하게 잘 이루어졌으며 꽤나 적당한 가격에 차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애초에 너무 싸게 나온 차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적당한 가격에, 적당하게 구입한 머스탱이었다. 중개업체도 없이 1:1로 구매하게 되었지만, 법적인 문제도 전혀 있지 않아 꽤나 홀가분하게 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내 첫 신차이자 꽤 오랜시간을 나와 함께 한 아반떼를 보내줘야 했지만, 그딴 감상 따위는 내게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머스탱을 팔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얼마 전이었다.
강원도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혼자 차를 끌고 동해로 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동해바다도 볼 겸, 그간 회사 때문에 만나지 못한 친구도 만날 겸 하여,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신나게 달렸다. 휴게소에 들려 잠시 쉬기라도 하면 사람들의 눈길이 쏠려서 약간 우쭐하기도 하며 즐거웠다. 뭐... 지나가는 사람들이 "오빠 저거 비싼차야?" 하는데 "아니 나도 사려면 살 수 있어." 라고 말 할때면 약간 찬물을 끼얹은 듯 들뜬 기분이 가라앉기도 했지만 녀석이 그랜져 xg를 타는 것을 보며 다시 피식 하고 웃게 되기도 했다. 딱 봐도 20대 중 후반인데 그랜져 xg라니. 아빠차 끌고 나왔냐?
차에 기대어 화보라도 찍는 것 처럼 담배 한 대 가볍게 빨아주고, 다시 차에 탄다. 차 문을 열면 노면에 빔을 쏴 생기는 파란색 달리는 말이 반겨준다. 볼 때 마다 새로웠다.
휴게소를 지나 카메라를 주의하며 신나게 밟았다. 뭐 기름은 바닥에 뿌리고 있었지만, 어떠랴? 이런 맛에 타는 차였다.
횡성의 터널 입구를 지나다가 헛것을 보았다. 터널 입구에서 하얀 옷의 누군가가 서성이고 있는게 보였다. 섬뜩 했지만, 뭐... 밤에 운전하다보면 트럭에서 떨어진 온갖 잡동사니들이 사람의 착각을 만들어낸다. 별거 아니리라.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속도에 취한다.
터널에는 카메라가 없으니 더 신나게 달렸다. 그 날 따라 아무리 새벽이라고는 하지만 차가 거의 보이지 않아 정말 무턱대고 달릴 수 있었다.
다음 터널에 도달했을 때, 난 또 다시 터널 입구에서... 이번에는 서성이지 않고 똑바로 서서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를 보았다.
금방 지나친 것이었지만, 분명 아까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서성거리는 폼이 아닌 똑바로 서서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것을 보고는 약간 겁에 질려 살며서 눈동자만 돌려 룸미러를 바라보았다. 이런 전개라면 뒤에 누군가 앉아있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창에 다다를 때 까지 그 찝찝한 기분이 느껴져 도저히 기분을 즐길 수 없었다.
그 이후로는 계속 안전운전을 했던 것 같다.
그 즈음 네비게이션에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진부터널이 앞에 있음을 알렸다. 터널 앞에는 내가 보았던 그 하얀 누군가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생각하고 터널 안에 들어가니 그 예의 섬뜩함이 느껴졌다.
심장에 누군가 손을 밀어넣어 천천히 조여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손, 발에 피가 서서히 말라가며 목이 뻣뻣해졌다. 본래 운전 할 때에는 한 손은 스티어링 휠에 올려두고 남은 한 손은 아무렇게나 걸쳐둔 뒤 최대한 편하게 가는 운전습관이 있지만, 이 때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전부 휠에 올려두고 주변은 바라보지도 못한 체 앞만 바라보며 달려야 했다.
다행히, 동해에 도착 할 때 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해에 도착하여 새벽에 자고 있는 친구의 집을 찾아가 들어갔고, 토요일에는 꽤나 즐겁게 놀았다. 바다보며 회도 먹고, 강릉 카페 거리도 가서 헌팅도 하고 뭐 나름 즐거웠다.
거기서 알게 된 여자애들에게 무서운 얘기랍시고 내가 오면서 겪은 일을 거짓말 좀 보태가며 이야기 했다. 사실은 룸미러 뒤에 검은 그림자가 뒷 좌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는게 보였다든가 뭐 그런 얘기 말이다. 반응도 꽤 좋았고 여러모로 즐거웠던 것 같다.
일요일 오후에 다시 집에 돌아가려는데 친구가 그 귀신 얘기가 생각 났는지 낄낄 거리며 농담을 했다.
당시에 피곤했기 때문에 느낀 기분이라 생각하여 그냥 피식 웃으며 넘어갔다.
돌아오는 길... 터널을 지날 때 마다 다시 그 느낌을 받아야 했다. 이번에는 동해고속도로에 올라서는 그 순간부터 뒷목이 뻣뻣해지고 도저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라디오를 켜면 이상한 잡음만 들려왔고, 노래를 켜면 usb가 뻑이 난 것인지, 오디오가 망가진 것인지 노래가 계속 저 혼자 넘어가 버렸다. 그 때 느낀 것은 귀신 보다는, 오디오에 대해서는 그다지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오디오가 문제인가? 하는 걱정이었다.
그래도 전에 비해서 꽤 이른 시간에 나온터라 이번에는 해도 밝았고, 지나는 차도 많아서 처음 보다는 꽤나 수월했다. 그리고 원주시를 지난 이후로는 차가 막혀서 뒤의 귀신 같은 것은 머릿속에서 휙 달아나 버렸다.
집에 도착하여 블랙박스의 메모리카드를 꺼내 확인했다.
고속도로에서 갓길 주행하던 차량이나, 담배꽁초를 무단 투기하는 차량들을 몇 번 보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편집하여 신고할 목적이었다. 그때, 갑자기 생각이 나 터널 영상들을 확인했다.
터널 입구를 지날 때... 분명 바람에 흔들리는 것 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는 하얀 옷을 입고, 머리가 까만 여자가 보였다. 이 근처에 민가도 안보이는데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차에서 내린 현 시점에서는 이걸 SNS에 올리면 꽤 반응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 째 터널에서도 같은게 보였다. 역시 잘못 본 것이 아닌지 이번에는 똑바로 서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길고 새카만 머리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최소한 할머니는 아니리라. 한 번에 터널 앞에 서 있는 미친여자를 두 번이나 볼 수 있을리 만무하니 이건 분명 귀신이었다.
반응이 어떨까? 조작이라는 댓글이 많을 것 같았다. 하지만 뭐, 진짜인데? 아예 전체 영상을 전부 올려볼까도 생각했지만, 과속 했으니 그건 올리지 않는게 좋을 것 같았다.
그 이후로는 귀신이 블랙박스에 잡히지 않았다.
이게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 역시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뜩... 실내 카메라는 어떨지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실내 카메라를 돌려보았다.
터널을 지나고... 겁에 질린 것 같은 내 얼굴이 보였다. '하하! 완전 멍청해 보이잖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계속 보았지만... 별 다른 변화는 없는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갑자기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두 번 째 귀신을 목격한 이후의 영상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카메라의 사각 근처에 내 왼쪽 어깨가 있는 시트 부근에서 뭔가가 천천히 올라오는게 보였다.
손이었다.
그건 분명 손이었다.
하얀 손이 천천히 시트를 훑고 올라와 내 어깨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몇 차례의 터널을 지나는 영상들에서 전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다만 처음에는 내 왼쪽 어깨로만 올라오던 하얗고 가는 나뭇가지 같은 손이 그 이후로는 오른쪽 어깨로도 올라왔다. 더 무서운 점은 손이 전부 왼손이었다. 세번째 터널을 지날 때에는 양 어깨 뿐 아니라 머리 그리고 허리 부근에도 그 손들이 천천히 시트를 쓰다듬 듯 기어나오다가 어느 순간에는 마치 달팽이 눈 처럼 삭 사라졌다.
그리고 몇 번을 거듭한 끝에, 그 손들이 터널이 끝나는 지점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쯤 되자 SNS고 나발이고 갑자기 겁이 덜컥 올라왔다.
갑자기 혹시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난 휴대전화를 들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초여름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지하주차장의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실행하고 그것을 눈 삼아 내 차로 다가갔다.
그리고 카메라로 내 차의 뒤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낮고 좁은 머스탱의 뒷 좌석 시트에는 내 맨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왼 손을 물어뜯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다만 머리카락 때문에 실제로 그러한지는 알 수 없었다.
길에서 커다란 육식짐승이라도 본 것 처럼 몸이 덜컥 멈추었다. 그것은 오른쪽 팔이 없었다. 그저 왼 팔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인지했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큰일 일 것 같아 바로 몸을 돌려 달아났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려니 놈이 나타날 것 같아 그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탈 때 까지 기다려야 했다. 얼마 간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으니 아저씨 한 분이 같이 타게 되었다.
"괜찮아요?"
내가 식은땀을 잔뜩 흘리고 있어서일까? 사람 좋아보이는 아저씨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아, 예... 좀 속이 좋지 않아서."
그렇게 둘러댄 후 가만히 있으니 아저씨는 금방 내려버리고, 나머지 층수는 나 혼자 올라가야 했다. 엘리베이터의 거울에 뭔가 비칠 것 같아 계속 바닥반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우리집 현관으로 달려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카드키를 갖다댄 후 집으로 들어왔다.
혼자 사는게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차라리 예전 여자친구와 싸움났던 그 때, 여친 말대로 같이 살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몰아쉬며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봐봐야 더 무서울게 분명할텐데 내부 카메라로 찍힌 영상을 다시 확인했다.
아니 영상이 아니라 소리를 확인했다.
스피커의 음량을 최대로 올리고 천천히 손이 올라오는 부분부터 소리를 들었다.
-이... 차가 아닌가? 어... 아닌가? 나 아픈데. 이 차가 아닌가?"
분명 나는 아무말도 하고 있지 않았는데 화면에서는 그 소리가 들렸다. 다만 이 차가 아닌가 하는 말과 아프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섬뜩한 까드득 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저런 소리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터널에 들어갈 때에도 손의 개수가 늘어날 뿐 말이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스마트폰을 켜서 아까 찍은 영상을 재생시켜 보았다.
딱히 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영상을 컴퓨터로 옮겨 소리를 증폭시켜 보았다.
작지만 뭔가 소리가 들렸다.
-나 아픈데... 여기가 아닌가? 나 아닌가?-
약간 바뀌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예의 까드득 거리는 소리는 여전했다. 손톱을 물어뜯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괴기하고 끔찍한 소리였다. 영상의 마지막... 그러니까 녀석이 머리를 들 즈음해서는 말이 좀 바뀐 것 같았다.
-너인가? 아닌거 같은데... 너인가?-
내가 뭘 잘못했지? 난 완전 무사고라고... 심지어 주차중에 어디 긁어본 적도 없다. 이런 상황을 맞이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나 아니야. 나 아니라고."
말했지만, 녀석이 듣고 있을까? 아... 녀석은 차에 있을테니까 내 말을 듣고있지는 못하리라.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게 그저 차에 있는게 아니라 진짜 날 따라다니는 것이라면 어쩌지?
그런 몹쓸 호기심과 공포가 뒤섞여 난 결국 멍청한 선택을 하고 말았다.
스마트폰의 전면 카메라를 실행하고, 천천히 내 뒤를 비춰보았다.
"아... 아아...."
나도 모르게 이상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내 뒤에 뭔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길고 까만 머리카락... 마치 방금 물 속에 있던 것을 꺼낸 것 처럼 끈적하고 미끌거리는 것 같은 해초류 같아 보였다. 그리고 아까 영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머리카락에서 흐르는 핏물 같은 것도 보였다.
그것은 천천히 몸을 숙이며 내 카메라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반쯤 박살나서 허물어진 머리와 얼굴... 그것의 눈은 왼쪽 밖에 없었지만, 핏발 선 흰자와 풀어진 동공은 무저갱이라도 되는 것 처럼 나를 빨아들일 것 같았다. 그것이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천천히 내 머리 옆에 자신의 머리를 나란히 하고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입에서는 검정색 끈적한 핏물들이 주르륵 흘러 내 어깨로 흘러내렸다. 다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당신이 맞나? 여기 우리 집 아닌데? 여기가 아닌가?-
그것의 말에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대답하면 더 문제가 커질지도 모르는데, 나는 결국 입을 열고야 말았다.
"여기는 당신집이 아니에요."
숨을 다시 삼켰다. 과호흡이라도 온 것인지 숨이 가쁘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리고 난 당신이 찾는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는 고장난 목각인형처럼 머리를 뚝 꺾으며 스마트폰에 비친 내가 아닌 실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닌가? 당신이 아닌가?-
괴상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녀는 나를 끌어안듯 자신의 하얀 왼 손을 들어 내 오른편 어깨 위에 있는 자신의 머리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가락을 씹었다. 손톱이 아니라 손가락을 말이다.
그러자 살이 너덜거리는 손가락 안의 뼈가 치아에 갈리는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까드득... 까드득...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계속 그렇게 자신의 손가락 뼈를 이빨로 갉아대며 나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거의 움직임이 없는 것 같았지만 눈알은 빠르게 움직였다.
-아... 아니네... 당신이 아니네... 아쉽네.-
그녀는 팔을 풀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팔이랑, 눈알 이쁜데... 아쉽네... 당신이 아니네.-
그녀는 그렇게 다시 말했다.
그리고 마치 어둠에 녹아들어가 듯 방의 구석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아마 내 차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냥 나는 재수없게 걸린 것이겠지. 하지만 도저히 머스탱을 탈 용기가 들지 않았다. 카메라로 확인해 보았지만 그 앙상한 손이 나타나 눈알을 뽑을 것 같아 도저히 차에 탈 수 없었다.
지금은 지하주차장에서 먼지를 맞고 있는 내 머스탱은 이번주에 다른 사람에게 팔려간다. 몇 몇이 와서 구경하고 꽤나 깨끗하다고 감탄하였고, 나 역시도 빨리 넘기고 싶어 시세보다 약간 싼 가격에 내 놓았다. 유지비와 몇 번 타 보았더니 이제 다시 세단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유도 곁들였고, 필요하다면 같이 차를 끌고가 어디서든 정비소에서 차량을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조항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