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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제 말좀 들어보십시오
게시물ID : panic_94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지증왕XX
추천 : 16
조회수 : 7405회
댓글수 : 20개
등록시간 : 2010/12/13 19:39:52
길지만 진짜 읽을만합니다.. 진짜 시간가는줄 몰라요;;
5분읽었다고 생각하면 20분째 읽고있는... 몰입도 짱입니다

한번만 읽어보시길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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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힘든게 뭔 지 아니?



"글쎄... 사법고시?"

"틀렸어..."

"그럼.... 대통령?"

"아니야.."

"갑부.."

"것두 아니야.."

잠시 생각하던 영민이 무릎을 탁 쳤다...

"흐흐.. 알았다.. 정답은 자살!!"

"땡!!"

"에엑... 그럼 대체 뭐야?"

기원은 빙글 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대오각성..."

"대오..... 뭐라고?"

"대오각성... 다른 말로 득도 라고도 하지... "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짓는 영민이었다.

"뭐야.... 괜히 열심히 생각했네.."

"득도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야... 어제서야 비로소 결정했어.."

"엥..? 그건 또 뭔 생뚱맞은 소리야?"

"학과 말야... xx대 불교학과로 결정했어..."

"뭐? 미쳤어? 니 성적에 겨우? 대체 왜 그래?"

"오래 생각했어... 내 관심의 대상은 오직 득도 뿐야.."

"너 돌았구나... 잠시 바람 좀 쐬자... 남들은 스카이 못 가서 안달인데...."

"오전에 원서 넣고 오는 길이야.. 네 충고는 고맙지만.. 내 인생은 결정됐어..."

기원의 눈에선 원대한 포부가 넘실 대고 있었다.

"득도하면 뭐하는데? 뭐가 좋은데?"

"알 수 있지..."

"알아..? 뭘?"

"진리.... 이 세상을 관통하는 절대 비밀을 알 수 있어..."

"............."













쌀쌀한 2월의 어느날...

기원이 커다란 짐가방을 맨 채 집을 나서고 있었다..

"끝났어... 멀쩡한 내 자_식 다 베렸어...

거실에선 기원의 모친이 생기없는 얼굴로 중얼 거리고 있었다.

집을 나선 기원은 곧장 기차역으로 향했다.

'죄송해요, 지금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요...'

지난 며칠 간을 가족과 싸웠다. 가족들은 기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기원은 집을 나왔다..

"서울행 하나요.."

표를 건네 받은 기원이 기차에 몸을 실었다.

곧 덜컹 거리며 기차가 출발하자 기원의 눈이 감겼다.


지난 해 여름 홀로 가 보았던 고성 폭포암이 떠 올랐다.

폭포암의 주지 스님은 기세가 장군 같았는데.. 입을 열면 언제나 불호령이었다.

그 날 법문을 들으려 제법 많은 사람들이 폭포암을 찾았다.

기원도 마음속의 큰 의문을 품고 폭포암을 찾은 길이었다.

법당에 사람들이 주욱 둘러 앉았고, 곧 주지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다.

그 날 기원은 법문을 듣는 내내 엄청난 희열을 경험했고, 지적 의문이 다소나마 해소되었다.

스님이 말하신 수십가지 얘기 중에서 특히 마지막 말이 신심을 자극했다.

"사람 몸 나기 힘들고, 불법 만나기 더욱 어렵도다.."

스님의 그 한마디가 기원의 인생 진로를 결정했다.

그 날 이후로 기원은 미친 듯이 불교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성철스님부터 시작해 불교의 불자가 들어간 책은 눈에 불을 키고 읽었다.

하지만 읽을 수록 갈증은 더욱 심해졌고...갈증은 기원이 여기까지 온 원동력이 되었다.










10년 후..


오랜만에 영민은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

여태껏 기반잡느라 눈코 뜰 새 없었지만, 올해 초 부터 다소 안정된 영민이었다.

"어째 니들은 변한게 없냐?? 여전히 개념이 없구만..흐흐"

"학교 졸업하고 처음 나온 놈이 누군데 큰소리야!!"

왁자_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영민이 큰소리로 떠들었다.

"오늘 먹고 죽자!! 야 다들 잔 채워!!"

"크크.. 이리 좋아할 놈이 왜 코빼기도 안 비췄담.."

"알잖냐.. 내 일이 좀 그렇잖아.."

영민이 원샷을 외치자 모두가 단숨에 잔을 비웠다.


어느새 얼큰하게 취한 민수가 영민에게 물었다.

"근데 너 올해 경사 진급 했다며?"

"그래... 까불면 확... 체포해 버린다..."

"크크... 제발 체포해줘.. 감방가면 공짜로 밥 주지.. 알아서 운동 시켜주지... 완전 천국이다 천국.."

"*..."


한시간이나 지났을까

모두가 기분좋게 취해 있는 그 때 누군가 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잠시 둘러 본 뒤 곧장 일행쪽으로 걸어왔는데, 수염이 덥수룩 한 것이 예사 풍모가 아니었다.

"오랜만이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어라... 누구지?"

"어... 너는..."

"아....."

낯익은 그의 얼굴에 친구들이 기억을 더듬었다.

"야.. ㅅㅂ 너 기원이지?"

별안간 영민이 벌떡 일어났다.

"반갑다"

영민이 기원을 꽉 안았다.

"불교과 갔다더니... 그 담부터 감감무소식이야..."

"그렇게 됐어.."

"너.... 완전 도사가 다 됐네..."

영민이 기원을 훑어보자 기원이 씨익 웃었다.

"일단 앉자... 앉아서 얘기하자.."

영민이 기원을 잡아 자리로 끌고갔다.

"먹고 살만 하냐?"

창수가 물었다.

"굶지는 않아, 내 명대로 사는데 지장은 없지."

"세상 참 재밌구나... 니가 스님이 되다니...."

"그래 기원이 너는 판검사가 어울렸는데 말야.."

기원은 빙긋 웃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자 다들 한잔 하자.. 원샷 안하면 수명 10년 단축이다!!"

"오케이!!"

다들 잔을 들고 마실 때 영민이 기원의 귓가에 속삭였다.

"생퀴야.. 반갑다 끝나고 따로 얘기 좀 하자"

"그래"


그렇게 시끄러운 동창회가 두시간이나 더 지속됐다.


지금 시각 새벽 두시 반... 영민과 기원은 근처 빠로 들어왔다.

"너 앞으로 뭐할거야?"

"내일 산에 들어갈거야.."

"산이라........ 넌 좋겠다... 마음만은 편하겠네.."

영민이 부러운 듯 기원을 바라보았다.

"무슨 고민 있나 본데 말해봐..."

"고민은 무슨...."

영민이 슬쩍 말꼬리를 흐렸다.

"괜찮아 말해봐.. 궁금해서 그래..."

기원이 재촉하자 영민이 결국 털어 놓았다.


순경으로 시작해 경장을 거쳐 올해 경사가 된 영민...

입사 5년만에 자신이 근무하는 강력반에서 꽤 중요한 위치까지 자리매김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관할 구역내에 자살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자살자 수가 두자리로 넘어가자 비상이 걸렸다.

영민이 책임지고 수사를 진행 했는데.... 수사하면 할수록 기이한 일들이 밝혀졌다.

자살자는 대학교수부터 막노동꾼까지 다양했고... 그들의 시체는 모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결단코 타살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했고.. 기쁘게 죽었다...


입이 마른 영민이 사이다를 벌컥벌컥 들이키곤 말을 이었다.


그렇게 영민이 필사적으로 수사하던 어느 날 드디어 단서 하나가 잡혔다.

자살자들의 공통점을 찾아 낸 것이다.

그들은 자살 직전에 누군가를 만났고...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가 끝난뒤 그들은 기꺼이 죽음을 받아 들였고, 그 누군가는 사라졌다.


영민은 한 여자를 용의자로 지목했고, 그 여자를 뒤쫓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날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졌다. 당장 수사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제 잡기만 하면 끝난단 말입니다!!"

"상부지시 일세..."

최경감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하자... 분노한 영민이 경찰 본부로 쳐들어갔다.


"그래서?"

기원이 흥미로운 얼굴로 재촉했다.


곧이어 나온 영민의 말은 엄청난 것이었다.


영민이 난동을 피우자... 검은 선글라스의 두사람이 영민을 어딘가로 끌고 갔는데,

그곳에서 영민은 까마득한 경찰 고위간부를 만났다. 헌데 그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그대가 용의자로 지목한 그 여자...... 우리는 통칭 ' 붉은사쿠라' 라고 부른다네"

"붉....은 사쿠라?"

"그래 붉은 사쿠라... 올해가 그녀를 추적한 지 딱 50년 째 되는 해일세..."

"뭐라구요? 50년? 농담하지 말아요... 그녀는 많이 줘봐야 30세라구요"

"우리나라는 50년 이지만... 일본은 200년 일세....."

"............"


"그녀는 놀라운 화술을 지녔다네.....사람들을 논리적으로 설득시켜 자살에 이르게 하지..."

"설...득?"

"그래.. 믿지 못할 걸세..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절대 최면 따위가 아니야.."

"순수한 화술의 힘이지... 절대의 논리로 듣는 사람을 설득시키지.."

그의 안색이 갑자기 침중해졌다.

"그녀를 취조하던 나의 선배... 선배의 선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네.."

"그럴수가..."

"아무리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도... 그 아무리 행복한 사람이라도..... 

그녀의 논리적인 설득 앞에 결국 무너지지..."

"대체 그녀가 무슨 말은 하길래 자살까지 하는 거죠?"


"예전에 그녀를 취조할 때 녹음을 한 적이 있었지..."

"그..그래서요?"

그의 손바닥이 목을 그었다.

"다 죽었어... 녹음 테이프를 듣던 3명이 동시에 자살하자... 테이프를 부숴버렸지.."

"아....."

영민이 충격에 빠진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자살하기 싫으면 당장 손 떼게나.... 그래도 하겠다면... 내 말리진 않겠네.."



영민은 본부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열흘 전 영민에게 일어난 일이다.


"어때?"

영민이 기원에게 물었다.

"대단한데... 아주 흥미로워.."

기원은 눈빛을 빛내며 다가왔다.

"오직 말로만 자살에 이르게 할 수 있다......흠"

기원이 턱을 괸 채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내가 괜한 말 했나보다....크게 신경쓰지마.."

영민이 머쓱해하던 그 순간 기원이 벌떡 일어났다.

"결정했어... 산으로 가는 건 미뤄야지... 나가자... 당장 수사기록 부터 살펴 봐야겠어!!"

기원이 대답도 안 듣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그 날 밤 기원은 영민의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두 사람은 영민이 근무하는 강남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로 들어가자 한켠에 지하창고가 보였는데, 영민이 그리로 들어갔다.

"좋은 아침~~"

영민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두명의 경찰관이 자리서 일어섰다.

"어라... 김경사님 오늘까지 휴가시잖아요?"

"그래서 내가 훌륭한 경찰 아니냐..."

"............. 근데 뒤에 분은 누구.....?"

영민이 기원을 소개했다.

"다들 인사해... 힘들게 스카웃한 사설탐정 이시다..."

"아...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최동훈 경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조한일 순경 입니다..."

기원이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구기원 입니다"


"이 분도 우리가 수사하는 여...자를 알고 있나요?"

최경장이 묻자 영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부 허락도 떨어졌고... 지원도 약속 받았으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브레인이야"


사실 열흘 전만 해도 이들은 얼른 여자를 체포하고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영민이 본부를 다녀 온 후 모든게 뒤바꼈다.

영민이,들었던 것을 설명하자 모두가 콧웃음을 치며 믿지 않았다.

하지만 곧이어 방대한 양의 박스가 본부로부터 도착했는데.. 다들 기겁을 해댔다.

박스 안에는 '붉은사쿠라' 에 대한 정보 문서가 가득 담겨져 있었고,

그것은 50년 동안 누적된 비밀 수사자료였다.

"하고 싶은 사람은 해도 좋네... 물론 빠져도 전혀 불이익은 없어.."

서장의 지시가 내려지자 대부분의 요원이 빠져나갔다.

10명으로 구성된 특별수사팀이 영민을 포함한 세명으로 확 줄었다.

문서를 읽어 본 7명이 겁을 먹고 빠지자... 서장이 셋을 따로 불렀다.

"두 달을 주겠네... 그 안에 해결 못하면 깨끗히 손을 털도록... 자네들도 결혼은 해야할 것 아닌가..."

"노파심에 하는 말이네만, 직접 대면하는 바보는 없을거라고 보네.."

서장은 이들에게 따로 전용 수사실을 만들어 주었고 셋은 거기서 먹고 자고 했다.


"조순경이 탐정님에게 대충 상황을 설명해줘... 최경장은 나랑 잠시 갈 데가 있어"

영민이 최경장과 나가버리자 기원이 물었다.

"자료부터 봅시다.."

"아... 네... 따라오세요"

조순경이 창고 한쪽 구석으로 걸어가자 기원이 따라갔다.

"이놈들 이죠.."

구석에는 이삿짐 박스 같은 곳에 파일과 a4 용지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끔찍하죠?"

조순경이 어깨를 으쓱했다.

"두 달이 아니라 2년을 봐도 다 못 보겠는걸..."

기원이 노란색 파일을 집어 들었다.

"아시다시피 증거가 없어요... 증인도 없고 물증도 없고... "

"살인 방조죄 아닌가요?"

조순경이 고개를 저었다.

"자살자들은 '붉은사쿠라' 가 돌아 간 뒤 정확히 한시간 후에 목숨을 끊었어요...,

그래서 방조죄도 성립이 안돼요..."


"흠... 어디 보자..."

기원이 파일을 넘겼다.


날짜 별로 사건이 기록돼 있었는데... 기원이 펼친것은 20년 전 자료였다.


ㅡ 1986년 1월 3일 서울시 노원구 xx동 xx 빌라 201호 ㅡ

피해자 : 이 용 호 

나 이 : 34세

직 업 : 기자

자살방법 : 커터날로 경독맥 절단


ㅡ 1986년 2월 17일 진주시 문산읍 xx리 1024번지 ㅡ

피해자 : 박 점 순

직 업 : 무 직

나 이 : 65세

자살방법 : 익 사


ㅡ 1986년 3월 9일 울산시 중구 염포동 xx아파트 a동 408호 ㅡ

피해자 : 이 경 주

직 업 : 학 생

나 이 : 18세

자살방법 : 옥상에서 투신



ㅡ 1986년 4월 30일 전라남도 진도군 xx읍 241-8번지 ㅡ

피해자 : 오 명 환

직 업 : 군 인

나 이 : 22세

자살방법 : 감전사



파일을 읽으며 기원이 입을 열었다.

"이거 한 달에 한번씩 사건이 벌어졌군요?"

"맞아요... 정확히 한 달에 한명씩 죽었죠.."

"그런데 하루에도 수십명씩 자살할텐데 어떻게 구별하죠?"

기원이 파일을 덮고 조순경을 바라보았다.

"아주 쉬워요... 보통 자살자들의 시체는 표정이 제한 되거든요.."

"공포스럽다든지... 인상을 쓴다든지... 것도 아니면 무표정인 경우가 99프로예요"

"그런데요?"

"헌데 붉은 사쿠라를 거친 경우는 표정이 확연히 밝아요... 시체가 모두 웃고 있죠"

"혹시...보셨나요?"

기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몇 명 봤죠... 확실히 구분이 됩니다.."




기원이 다시 파일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세시간이 지나자 외출했던 두사람이 돌아왔다.


"이야~ 열심인걸?"

영민이 기원에게 다가왔다.

"밥먹고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탐정나으리.."

"난 자장면..."

기원이 고개도 안 들고 대꾸했다.

"어라.. 너 중이 자장면 먹어도 되냐?"

"자장면이 싫으면 개고기도 좋고...."

"큭... 좋아 좋아.."

영민이 조순경에게 소리쳤다.

"자장 곱빼기 둘!!"

"난 돌솥비빔밥..."

최경장이 말하자 조순경이 무시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중국집이죠? 여기 강남 경찰선데요 자장 곱빼기 3그릇만요!!"


"어...? 이것 봐.. 조순경.. 내 꺼는?"

최경장이 당황해서 말하자 조순경이 싸늘히 대답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같은 것 좀 먹어요... 요새 누가 한 그릇을 배달합니까?"

"뭐야? 난 점심 땐 꼭 돌솥비빔밥을 먹어야 한단 말이야!"

"그럼 시켜드시든가요..."

조순경이 휙 나가버렸다.

"크크... 배달 아주머니 째려보는 거 안보이던? 다수를 좀 따라와.."

최경장이 고개를 홱 돌렸다.

"이거 다수의 횡포 아닙니까?"

"그럼 직접 시키든가..."

"시킵니다, 시켜요!!"

최경장이 소리를 빽 지르고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여기 방금 전화한 강남 경찰선데요 짬뽕 하나 추가해 주세요..."

"............."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이 밝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문서를 뒤지던 기원이 영민을 깨웠다.

"영민아, 일어나봐 물어볼게 있어..."

"아.... 으.. 뭔데?"

영민이 실눈을 떴다.

"공식적으로 50년 동안 한달에 한명씩 죽었어... 맞지?"

"그래..."

살짝 뜬 실눈마저 감아버리는 영민이었다.

"근데 최근 한달 내에 15명이 죽었어..그것도 한 지역에서..맞지?"

"그래..."

"그래서 상부에서 지원을 해준 것이고.... 맞지?"

"그래...."

영민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에게 한가지 방법이 있어..."

"그래.... 응? 뭐..뭐라고?"

영민이 벌떡 일어났다.

"붉은 사쿠라는 정부에게도 중요한 인물이야...."

"그렇지... 근데 그건 왜?"

"내가 생각한 방법은 정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든...."

"뭔데.. 말해봐.."

영민의 입이 바짝 타올랐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바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양복 차림의 사내가 수사실을 방문했다.

"청와대 비서실장 권상호 입니다..."

"오셨군요..."

서류를 보던 기원이 반색했다.

"요청하신 내용에 대해 각하께서 협조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내는 무뚝뚝하게 말하며 봉투를 내밀었다.

"요구하신 자금입니다.... 단 저희는 모르는 돈이죠.."

말을 마친 사내가 수사실을 빠져나갔다.


"와... 진짜로 반응이 왔네... 이거 대박인걸!!"

영민이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헛... 자금이라면 일전에 얘기하신 그거 말입니까?"

최경장과 조순경의 표정에도 놀람이 나타났다.

"그래... 자금을 얻었으니.. 이제 사람을 모아야지..."

기원이 봉투를 열자 수표 열장이 나왔다.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잠..잠깐 이게 얼마야?"

"억...억이 열개면 십..십억?"

수표를 보던 영민이 입을 딱 벌렸다.

"만져나 보자..."

"저두요..."

나머지 두 사람이 달려들자 기원이 수표를 집어 넣었다.

"내 예상으론 이것도 빠듯합니다..... "

"쩝.."

최경장이 입맛을 다시자 영민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뭘 하지?"

기원이 미소를 지었다.

"뭘하긴... 광고해야지.."



5대 메이저 일간지....각종 스포츠 신문사... 전문 광고지까지...

그 날 하루 수사실의 전화기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저명한 문학비평가이자 독설가인 윤성호씨는 그 날도 때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밥을 먹으며 습관처럼 신문을 펼쳤다.

"이런 개쌍노무 생퀴들.."

일면에는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있었다.

"저것들 땜에 소화가 안돼요 소화가..."

다시 한장을 넘기자 자신이 쓴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흐..."

흐뭇하게 웃고는 다시 한장을 넘기려는 찰나... 아래쪽에 이상한 문구가 시선을 잡았다.

"이건 또 뭐야?"

윤성호는 신문을 들어 자세히 읽어 갔다.


- 화술의 달인을 구합니다-


모집인원 : 100 명


일당 : 삼백만원



평소에 자신이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또는 그런 말을 많이 들어보신 분!!!


평소에 자신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하신분!!!


또는 그런 말을 많이 들어보신 분!!!


위에 해당하시는 분들은 아래번호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tel : 02- 783-695x

h.p : 010-2550-912x







"삼백만원?"

광고를 읽은 윤성호의 표정에 의심의 빛이 나타났다.

"이거 사기 아냐? 삼백만원이 얘 이름인 줄 아나보군?"

윤성호의 입에선 예의 그 독설이 쏟아졌지만, 손은 이미 핸드폰 폴더를 열고 있었다.




수사팀이 광고를 넣은 다음 날 새벽부터 전화통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광고보고 전화 했어요, 근데 무슨 일인지 먼저 여쭤봐도 될까요?"

"여보세요? 네... 광고봤습니다.. 300만원 짜리 일이란게 뭐죠?"

"구인광고 낸 데 맞죠? 뭘 하면 됩니까? 당장 갈께요..."

20대 청년을 시작으로 무한 통화 러쉬가 시작되었다.


"네.. 일단 오십시오.. 여기 위치가 어디냐면..........."

처음에 의심을 보이는 사람도 거진 절반가량은 되었지만, 이곳의 위치를 듣고난 후엔 의심을 거두었다.

"아니 무슨 경찰서에서 돈이 남아 돕니까? 이거 엄청 위험한 일 아닙니까?"

"직접 오셔서 들어보시고 결정하셔도 됩니......"

"일단 경찰청에 직접 문의 해 보겠습니다. 문제 없을 시 방문하도록 하죠"

전화를 건 사람들의 말은 논리적이었고, 걔 중에는 극히 신중한 사람도 제법 되었다.

기원을 제외한 세명이 교대로 전화를 받을 동안 기원은 문서에 파묻혀 있었다.


"이상한데..."

기원이 의문의 빛을 띄우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다니, 뭐가?"

영민이 지친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99년도 7월 달에는 자살자가 없어..."

"뭐? 너 그거 벌써 다 본거야?"

"날짜만 대강 훑었지...뭐.."

"혹시 네가 빠트린 거 아냐?"

"그럴리는 없어.."

기원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헛... 이 많은걸...."

그곳에는 기원이 날짜별로 차곡차곡 정리한 파일들이 있었다.

영민이 놀라워하자 기원이 싱긋 웃었다.

"두가지 중 하나야... 99년도 7월달에 붉은 사쿠라가 움직이지 않았거나...."

"그리고?"

"그리고 누군가 죽었지만 단순 자살자로 처리 된 경우..."

"두번째 아냐? 그녀는 50년 전부터 규칙적으로 활동했어. 잘못 처리 된게 아닐까?.."

기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가능성이 높은 건 첫번 째야..."

"어째서지?"

"붉은 사쿠라가 죽인 사람들을 봐... 한가지 걸리는 거 없어?"

"글쎄... 모르겠는데.."

"그들은 모두 정부에게 발견됐어... 모두 발견하기 쉬운 장소에서 자살했고.."

"..........."

"일반적인 자살자들의 통계를 떠 올려봐... 그들은 몇 날 며칠을 방치 될 수도 있어,

또 일부는 가스폭발 같은 걸로 완전히 으깨질 때도 있고 말야.."

"아..."

"하지만 붉은 사쿠라가 접근한 인물은 모두 하루안에 발견이 되지.."

"그들은 얼굴을 상하게 하지 않아... 마치 미소를 보존해야 할 것 처럼..."

"그..그럼"

영민이 큰 단서나 잡은 것 처럼 흥분했다.

"붉은 사쿠라는 소기의 목적을 가지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야.."

"메시지?"

"그래... 자신이 규칙적으로 죽이고 있다고 알려 주고 있는거지.."

"뭣 때문에?"

"난 모르지... 하지만 99년도 7월에 분명 뭔가가 일어났어."

기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김경사님, 교대 좀 해줘요... 갑자기 신호가 오네.."

최경장이 배를 움켜쥐고 소리를 질렀다.

"알았어."

영민이 가버리자 다시 기원이 혼자 남았다.

"분명 뭔가 있었어, 목적을 거스를 만큼의 절실한 뭔가가..."

기원의 으르릉 거리듯 중얼거렸다. 그리곤 벌떡 드러누웠다.

한참을 천장을 보던 기원이 별안간 벌떡 일어났다.

"이봐 김경사, 일본에도 수사팀이 있다고 했지?"

우렁찬 소리에 영민이 어리둥절해졌다.

"그래... 일본은 우리 보다 훨씬 오래 됐지..."

"전화걸어서 물어봐.. 지금 당장!!"

"뭘?"

"1999년도 7월달에 자살자가 발견 됐는지 물어봐.."

"아... 알았어"

영민이 컴퓨터로 뭔가를 두드리는 사이 기원이 밖으로 나가 버렸다.


두시간 쯤 후에 기원이 돌아왔는데, 누군가를 대동한 채 였다.

"누구야?"

기원의 옆에는 40대의 평범한 사내가 서 있었는데, 아주 커다란 시계를 차고 있었다.

"내 히든카드..."

기원이 대답하자 영민이 실실 웃었다.

"일본에 알아보니 니말이 맞았어.. 거기도 99년도 7월달에만 조용했다더군.."

"흠..."





바쁘게 이틀이 지났다.

그 날은 지원자들의 면접이 있는 날이었다.

채비를 하는 기원의 귀에 영민이 속삭였다.

"저 사람 뭐하는 작자야?"

기원이 데려온 40대 남자가 소파에 벌러덩 누워 있었다.

"이름은 김중호... 말했잖아 내 히든카드라고..."

말을 마친 기원이 밖으로 나섰다.

"무슨 히든카드가 저렇게 멍청하게 생겼담... 맘에 안 들어.."

영민이 부리나케 기원을 뒤따랐다.


둘이 도착한 곳은 경찰서 2층에 위치한 강당이었다.

강당안은 족히 수백명의 사람들로 웅성대고 있었다.

그들은 기원과 영민이 들어서자 일제히 입을 다물고 둘을 바라보았다.

"저기 책상을 보고 줄을 서 주십시오.."

기원이 말하자 그들은 또다시 웅성거리며 줄을 서기 시작했다.

"자 첫번째 분..."

기원이 자리에 앉자 제일 선두에 선 자가 다가왔다.

"네..."

"지금부터 제 말에 논리적으로 반박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작합니다.... 당신은 왜 그런식으로 생겨 먹었죠?"

눈앞에 30대 남성이 어이 없는 듯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곧 얼굴에 능글능글 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제 얼굴은 어머니의 x 염색체와 아버지의 y 염색체가 융합된 산물입니다,

저라고 이렇게 태어나고 싶었겠냐마는 면접관님을 보니 부모님에게 큰 절이라도 해야겠군요..."

기원의 입이 씨익 벌어졌다.




선두의 남자가 기원의 옆으로 책상을 가져오자, 줄이 두개로 나뉘었다.

두개의 줄은 세개,네개... 순식간에 불어나서 일곱개째가 되었다.

면접은 두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종료됐다.

고르고 고른 백명을 빼고는 모두가 실격처리 되었다.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그들이었지만, 남은 백명이 워낙 강해서인지 순순히 물러났다.

"김경사, 다음 단계 시작하지... 가서 광고내고 와..."

"어..... 알았다.."

영민이 나가자 기원이 단상위로 올라섰다.

"여러분, 주목해 주십시오.."

백 쌍의 눈이 기원을 향했다.

"3일 후 여러분은 다시 이 자리에 모이게 됩니다... 여기서 한명의 여자를 말로 굴복시키는 것이

여러분의 할 일입니다."

강당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지독한 죽음 옹호론자로서 여러분이 같이 상대해야 밀리지 않을 것입니다"

기원이 그들의 자존심에 불을 당겼다.

"아니 고작 여자 한명 때문에 우리가 모였단 말이요?"

"나 혼자 상대하지..."

"내가 상대할꺼야.."

"다들 가만히 있어... 한마디도 못하게 해 줄테니까.."

백명이 흥분한 망아지 처럼 날뛰었다.

"만약의 경우에 여러분들이 그녀에게 설득되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기원이 큰소리로 외치자 대부분이 노골적으로 비웃어댔다.

"자 봉투를 하나씩 드리겠습니다. 안에는 현금 300만원과 각서 한장이 보이실 겁니다."

"각서?"

"그렇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살했을 시를 대비한 것이니, 지금이라도 신중히 생각해 주십시오"

"자살 좋아하네... 이제 인생 재밌어 지려는 판에..."

백명이 망설임 없이 서명을 끝내자 기원이 모두 회수했다.



그 시각 영민은 신문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고객님, 정말 이렇게 내보내는 게 맞습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당황스런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영민이 소리를 질렀다.

"아 글쎄.. 그렇게 하라니까.. 몇 번을 물어보는 거요.... 철컥"

영민은 곧 다음 신문사로 전화를 걸었다.




그 날 저녁 수사팀 전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정말 그녀가 올까요?"

조순경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자 최경장이 동의했다.

"아니 광고를 볼지 안 볼지도 모르는데 괜한 돈 날린 거 아닐까요?"

짜증이 난 영민이 소리를 빽 질렀다.

"시끄러워, 이미 다 끝났는데 재수없게스리..."


"붉은 사쿠라는 기필코 옵니다...제 시나리오상 그렇게 돼 있거든요..."

기원의 눈에서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헌데 조순경님.. 일전에 제가 말해 논 거 준비 됐나요?"

"아... 그거는 내일 중으로 도착할 겁니다"






긴장과 흥분의 삼일이 지나갔다.

아침일찍 사우나를 다녀온 기원이 말끔한 모습으로 강당에 나타났다.

"어라... 수염...밀었네.."

영민이 눈이 희둥그래져서 물었다.

"중요한 날이잖냐.."

강당안에는 이미 절반 가량이 착석해 있었는데... 다들 상기된 표정이었다.

"슬슬 긴장되는데?"

기원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제 약속시간까지 한시간....."

영민이 중얼 거리며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40분이 지나자 약속한 백명이 모두 도착했다.

변호사, 선생님, 대학생, 주부, 종교인, 기자.....등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다가올 설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 다 됐다... 넌 이제 나가라..."

"그..그래... 조심해라.."

영민이 부리나케 빠져나가자 기원이 준비한 물건을 꺼내들었다.


바로 그 순간 강당의 문이 끼이익 열렸다.

장내는 순간 정적이 찾아왔고, 모두의 시선이 입구로 모아졌다.

그곳에서 한 여자가 걸어 들어왔다.

여자는 붉은 색의 일본식 기모노를 입고 있었는데, 땋은 머리가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눈꼬리가 올라간게, 영락없는 고양이 상이었다.

여자의 뒤를 이어 8살 쯤의 꼬마가 들어왔는데, 피부가 무척 창백해 보였다.

"큭... 왔구나.. 붉은 사쿠라..."

기원의 눈에서 안광이 폭사됐다.

여인이 단상에 오르자 사람들이 발광했다.

"고작 당신 따위가 우리를 상대해? 시간이 아깝다.."

"어이 일본년 같은데 한글은 뗐나?"

"한마디만 해봐.. 아주 박살을 내주지.."

사람들이 격렬하게 쏘아붙였다.


- 여러분 -


여자의 입이 열리고 상냥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원은 황급히 특수제작된 방음기를 귀에다 착용했다.


사람들이 여자를 물어 뜯을 듯이 으르렁 거렸다.


-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바야흐로 전무후무한 백대 일의 대결이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기원은 청력이 완전 차단된 채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들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기원이 재빨리 시선을 돌려 사람들의 상태를 관찰했다.

몇 명이 마구 흥분하여 삿대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제법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시 조용해지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녀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했으며... 때로는 무척 격한 몸짓을 보였다.

'독순술이라도 배워 둘걸...'

기원은 그녀의 입모양을 뚫어져라 노려봤지만... 헛수고였다.

그 때 옆자리에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섰다.

기원이 바라보니 유명 비평가인 윤성호씨였다.

윤성호는 싸늘한 표정으로 여자와 단독 대화를 시작했다.

윤성호가 따지면 여자가 바로 받아쳤다.

둘의 대화가 3분이 넘어서자 장내의 모두가 들썩 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그리고 왜 딴 사람들은 가만 있는 걸까?'

기원이 초조한 낯빛으로 발을 굴렀다.

5분이 더 지나자 윤성호가 후련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 때부터 붉은 사쿠라의 눈빛이 달라졌는데,

말을 하면서 손을 떠는가 하면, 미친듯이 경련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녀의 입모양은 쉴새 없이 움직였고, 짐작컨대 속사포 처럼 말을 쏟아 내는 것 같았다.

'잠깐만 들어볼까...'

기원이 망설이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까전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눈빛은 몽롱해졌고 다리는 천박하게 떨리고 있었다.

"스윽"

기원이 방음기를 떼어 냈다.


- ....고 있는 것이죠 -


- 진짜 존재의 내기에 백만번이 지속 되는 것입니다. -


- 자 요약하겠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


"스윽"

기원이 재빨리 방음기를 착용했다.

가슴이 두근 거렸고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무슨 말일까.... 진짜 존재? 백만번?'

기원이 골똘히 생각에 빠진 사이 오분의 시간이 더 지나갔다.

'응?'

서늘한 기척에 기원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붉은 사쿠라는 보이지 않았고,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봐요!! 다들 잠깐 멈추세요!!"

기원이 방음 장치를 집어 던지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하나 둘 강당을 빠져 나갔다.

"여봐요, 윤성호씨!! 윤성호씨 저 좀 봐 주세요!!"

기원이 재빨리 윤성호의 팔을 움켜 쥐었다.

"왜 그러시죠?"

윤성호가 묘한 표정을 거두지 않은 채 물었다.

"무슨 말을 들었나요? 대체 그녀가 무슨 말을 했길래...."

"같이 안 들으셨나보군요,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윤성호가 슬며시 손을 뿌리치고는 결국 나가버렸다.

"하........."

기원이 멍한 표정으로 출구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영민과 두명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괜찮아? 어떻게 됐어? 여자가 뭐라는지 들었어?"

"당장......"

"응? 뭐라구..?"

"당장 저들에게 경찰을 붙이라구!!"

기원이 소리를 빽 질렀다.







한 시간 뒤 동시에 백명이 목숨을 끊었다.

경찰이 붙은 사람은 혀를 깨물었고, 나머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했다.

영민이 윤성호를 맡았었는데, 완전 포박에 혀에 물린 헝겊도 소용이 없었다.

윤성호는 숨을 들이 마시지 않는 방법으로 질식사를 택했다.

이 엄청난 사건에 수많은 기자와 카메라가 취재를 해갔다.

하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뉴스와 신문은 조용했다. 완전 묻혀 버린 것이다.



쇼크 상태에 빠진 기원이 어디론가 나가버리자, 영민이 수사팀의 해산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그들이 어째서 반박을 못했을까...'

기원은 빗방울이 조금씩 내리는 명동거리에 있었다.

'진짜 존재...? 신을 말하는 걸까.? '

여자의 말이 귓속에서 계속 되풀이 되고 있었다.

'백만번이 뭘 뜻할까..... 백만번...백만번...'

주위엔 젊은 연인들이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문든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나로 인해 100명이 죽었어... 불 지옥에 떨어지겠구나...'

기원이 씁쓸하게 웃었다.

"부스럭"

그 때 뒤에서 누군가 옷자락을 만졌다.

"응?"

기원이 돌아보자 창백한 얼굴의 한 꼬마가 서 있었다.

꼬마의 손에는 비디오 테잎 하나가 케이스 채로 들려 있었다.

"찰칵"

꼬마가 케이스를 열자 테잎과 쪽지 하나가 드러났다.

"스윽"

꼬마는 쪽지만 꺼낸 뒤 기원에게 내밀었다.

"꼬마야, 이거 나한테 주는 거니?"

기원이 몸을 숙여 쪽지를 건네 받았다.

"02- 642-00xx......? 이게 뭐지?"

쪽지에는 전화번호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휘익"

꼬마가 말없이 왔던 곳으로 걸어 가기 시작했다.

"흠...."

기원이 슬쩍 비디오를 봤지만, 첫글자인 ' 노' 자만 확인 할 수 있었다.

묵묵히 쪽지를 보던 기원이 한순간 화들짝 놀랐다.

"아!! 사쿠라....."

붉은 사쿠라가 강당에 들어 올때가 떠올랐다. 그 때 뒤따르던 꼬마의 얼굴도 기억이 났다.

"저 꼬마였구나..."

기원이 황급히 꼬마가 간 방향으로 뛰어갔다.

한참을 뛰던 기원이 일순 멈추었다.

'아니지... 내가 가서 뭘 어쩌겠다고... 가봐야 죽을 뿐이지...'

기원이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럼 이건 사쿠라의 직통 번호겠구나....'

묘한 흥분이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움츠릴 때다...'

기원이 번호를 외우곤 쪽지를 불태웠다.

'많다고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최소 성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필요해...'

기원이 곰곰히 생각했다.

'예수나 석가....? 아니면 공자나 노자...? 그들이라면 상대 할 수 있을까?'

'성철스님이 계셨더라면 어땠을까.... '

기원은 이미 입적하신 성철스님을 떠올렸다.

'성철스님의 경지라면 그녀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아........ 혼란스럽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지...'

기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산으로 가서 수련이나 할까...'






다음 날 영민이 있는 수사팀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네... 강남경찰서 입니다.."

영민의 목소리는 축 쳐저 있었다.

"나다, 영민아.... 나 당분간 산에 가 있기로 했어..."

기원의 목소리가 들리자 영민이 다급히 말했다.

"뭐? 산에 간다고? 그럼 우리는 어떡하고.... "

"백명이나 죽었으니 위에서도 인력지원이 있을거야... 그들과 합류하도록 해..."

"너라도 되니까 버텼지... 나머지 것들이 뭘 알겠냐.."

"큭.... 참 김중호씨는 당분간 거기서 지내도록 해줘.."

영민이 쓰게 웃었다.

"히든카드라더니... 완전 속았다 속았어..."

"그럼 나중에 보자, 내가 연락할께"

"찰칵"

통화가 끊기자 영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려 주십시오.."

그 날 폭포암에서는 때 아닌 설전이 벌어졌다.

"중놈도 아닌기 화두는 무신 화두..."

"제가 말씀 드렸잖습니까... 사정이 있다고..."

노기 가득한 주지스님의 입에서 불호령이 터졌다.

"네 이놈!! 출가도 안한 놈이 화두공부가 가당키나 하더냐!!"

"아니 그런 법도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부처님 생전엔 듣도 보도 못한 말입니다.."

"이런 생퀴가 있나... 한 때 좋게 보았더니... 완전 더러운 놈이구나!!"

"스님게서 저를 박대하시면 이 길로 보왕사로 갈 것입니다."

"뭐라꼬? 보왕사? 그기는 안된다... 광허 그 돌중이 뭘 안다꼬 그까지 가노?"

"광허스님께서는 좋다구나 하고 화두를 내려 줄 겁니다"

기원이 슬쩍 몸을 일으키는 척 했다.

"앉아있그라, 니 맴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기지...끙"

주지스님이 일어나서 종이와 먹을 챙겼다.

"화두는 아무렇게나 받으면 천벌 받는기라....."

기원이 공손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스윽"

스님이 화선지에 글자를 써 내려갔다.

" 無 "

"무........"

기원의 몸이 저절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 '무' 자 화두다... 똑똑한 놈이니까 설명은 안할란다.."

기원이 화선지를 품에 넣고 법당을 빠져 나왔다.

그 길로 곧장 두 시간 동안 산을 탔다.

수풀을 헤집고 도착한 곳은 동굴 앞이었다.

잠시 숨을 고른 기원이 동굴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동굴안에는 타고남은 초와 향들이 굴러 다녔고.. 벽에는 탱화가 걸려 있었다.

'성철스님은 7년간의 용맹정진 끝에 대오각성을 이루셨다... 최소 7년은 잡아야 돼...'

기원이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았다.

'무'자 화두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옛날에 한 제자가 큰스님에게 물었다.

"큰스님, '개' 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며칠이 지나고 제자가 다시 물었다.

"큰스님, 부처님께서는 벌레처럼 한낱 미물도 불성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헌데 어찌 스님께서는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하십니까?"

"없다."



이것이 그 유명한 '무' 자 화두의 일화였다.

어째서 스님이 '없다' 라고 했는지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

밥 먹을때나 용변 볼때도 생각하고, 자기전에도 생각하며 경지에 오르면

꿈속에서도 붙들고 늘어 질 수 있어야 한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그 날 부터 기원의 머릿속은 오직 이 단어로만 채워졌다.

끼니 때가 되면 동굴 근처의 솔잎을 뜯어 먹었다.

잠은 하루에 세시간 이상을 자_지 않았고, 오로지 화두공부에만 전력을 쏟았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가을이 찾아왔다.

'없다, 개한테는 불성이 없다... 하지만 미물에게는 있다.'

'불성이 없다가 아니라 답이 없다는 것인가... 그럼 두번째 물음엔 왜 없다라고 했을까?'

'두번째도 답이 없는가? 그럼 앞의 없다와 뒤의 없다는 같은 것인가...'

'아니지.. 스님한테 직접 물었으니 대답의 대상이 달라...'

'그럼 결론은 둘의 없다가 다른 의미라는 말인데.....'

'내가 완전 헛짚는 건 아닐까?'

'스님은 우연히 없다 라고 내뱉었는데, 때마침 제자가 질문한 시기와 겹친건 아닐까?'

'아니야, 말도 안돼... 다시 생각 해 보자'

'없다 없다 없다 없다...'

기원의 머릿속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지만... 겉으로는 조용히 호흡할 뿐이었다.

점심때가 되자 기원이 가부좌를 풀었다.

'없다 없다 없다 배고프다'

"흐흐..."

기원이 씨익 웃으며 동굴 밖을 나섰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여름옷을 걸친 기원이 몸을 떨며 솔잎을 땄다.

기원의 행색은 매우 지저분했다. 수염이 제멋대로 얼굴을 덮었고 볼살이 빠져 광대가 돌출되었다.

하지만 얼굴은 야위었어도 눈빛은 터질 듯 했다.

솔잎을 씹으며 물끄러미 나무쪽을 바라보던 기원이 깜짝 놀랐다.

'어라? 초록잎이 다 사라졌어...'

단풍이 들면서 초록잎들이 죄다 울긋불긋하게 변해 있었다.

'초록잎은 없고, 왜 다른 것들이 있지?'

충격을 받은 기원이 동굴안으로 들어 가 버렸다.

'없다... 초록잎이 없어... 없다, 없다'

기원은 가부좌를 틀고 하염없이 생각에 빠졌다.

한참을 생각하던 기원이 눈을 떴다.

'아 맞다... 없어진게 아니라 색이 변한 거였어..'

'하하... 이런걸 다 까먹고 말야 ...'



시간은 흘러 흘러 겨울이 다가왔다.

그 날도 '무'자 화두에 매달리던 기원이 벌떡 일어섰다.

"우아아아아!!!"

그리곤 갑자기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뛰쳐 나갔다.

밖은 꽁꽁 얼어 있었고, 차가운 한기가 온 몸으로 침투했다.

'어째서... 어째서 진전이 없는걸까.....'

기원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뇌까렸다.

쭉쭉 뻗어가던 기원이 정체 된 것은 두달 전 부터였다.

하나의 벽이 앞을 가로 막았는데, 도저히 넘을 수가 없었다.

기원의 눈이 멍하니 나무를 향했다.


얼마나 있었을까... 주위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

기원의 멍한 동공이 변화를 보였다.

처음에 약한 파문을 그리는가 싶더니 점점 크게 떨렸다.

떨림은 눈에서 얼굴로, 얼굴에서 온 몸으로 확산되었다.

"없다..."

나무에 잎에 없었다.

초록잎은 변했지만, 사라지진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완전히 없어진 것이다.

있는게 당연했던 잎이... 응당 그자리에 매달려 있어야 할 잎이 없어져 버렸다.

머리속에서 무언가 폭발했고, 곧 어마어마한 희열이 밀려왔다.

예전에 읽은 성철스님의 오도송이 떠올랐다.




황하수 곤룐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해와 들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 도다

문득 한 번 웃고 머리를 돌려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구름 속에 섰네.





다시 2년의 세월이 지났다.

기원이 머물던 산신각을 향해 중 하나가 오르고 있었다.

동굴앞에 도착한 중이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네 이놈!! 죽었는지 살았는지 당장 나와 보그라!!"

우렁찬 목소리의 주인은 폭포암 주지스님이었다.

스님의 호통에 기원이 밖으로 나왔다.

"스님의 울화가 이리도 크니, 열반이 머지 않았군요.."

동굴에서 봉두난발의 거지 하나가 나왔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 스님이 인상을 찌푸렸다.

"니 놈 뱃속 같이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 구나.... 그래 공부는 어찌 됐노?"

"이제 겨우 산에 올랐습니다"

기원의 눈빛은 맑았고, 목소리는 청아했다.

"혼자서 제법 길을 찾았구만.... 역시 광허한테 안 보내길 잘했지.."

스님이 기원을 유심히 살폈다.

"헌데 이까지 무슨일로 오셨습니까? 제 공부는 아직 멀었습니다"

"아 참... 니 지금 내 따라 내려가자!!! 갈 데가 있다."

"싫습니다.."

기원의 거절에 스님이 슬며시 웃었다.

"내 니 맘 다 안데이, 하지만 지금부터는 혼자 공부하면 위험한기라."

"위에서 끌어 댕기는 스승이 있어야 길을 안 헤매제?"

"하지만... 전...."

"잔말 말고 따라오너라...... 으구 냄새야!!"

스님이 기원의 손을 끌고 억지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목욕을 한 기원이 스님앞에 앉았다.

"보현사로 가라구요?"

"그래... 거기 큰스님이신 법진 스님께서 보살펴 줄끼다."

"굳이 그렇게 멀리 갈 필요가 있나요? 성철스님도 혼자서 수행하셨잖아요?"

"주둥아리 몬 다무나.. 니 까짓게 성철스님하고 비교할끼가.."

"잔말말고 내 시키는대로 하그래이, 니 한테는 지금부터가 중요한기라.."

"으...."





다음 날 기원은 보현사로 떠났다.

보현사는 충주 근방에서 가장 큰 절답게 스님의 수도 상당했다.

기원이 보현사 문을 들어서자 한 스님이 물었다.

"보살님, 어찌 오셨습니까?"

"큰 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큰 스님을요?"

스님은 놀라며 말을 이었다.

"큰 스님은 사람을 안 만나신지 꽤 되셨습니다.."

"이걸 전해 주십시오.."

기원이 품속에서 서찰을 꺼냈다.

스님은 합장을 한 뒤 종종 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갔다.


한참을 기다리자 중년의 스님 한 분이 다가왔다.

"그대가 폭포암에서 왔소?"

"네, 그렇습니다."

"따라오시오"

중년스님은 기원을 반기지 않는 눈치였으나, 기원은 신경쓰지 않았다.

둘은 절 깊숙히 위치한 어느 방 앞에 멈추었다.

"큰스님.... 손님 모셔 왔습니다.."

"들어 오시게"

안에서 커렁커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기원이 중년스님께 합장을 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작은 체구의 노승 한명이 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자 노승의 모습은 가죽만 남은 고목나무 같았다.

"앉으시게, 그래 진각스님이 보냈다고?"

"예.. 진각스님이 이리로 보내셨습니다."

기원이 공손히 대답했다.

"내 제자 중에 쓸만한 건 진각과 진수 뿐일세... 

그런 진각이 추천한 사람을 내 어찌 홀대 하겠는가..."

"홀대라뇨... 송구스럽습니다, 큰스님.."

가만히 기원을 보던 노승이 물었다.

"자네 공부는 많이 했는가?"

"아닙니다, 이제 겨우 산 입구에 올랐는걸요.."

"그래? 어디 한 번 보자.."

노승이 기원의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

기원도 노승을 바라보았는데, 둘은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자네.... 지금 무엇이 보이는가?"

"지금 소 머리가 보입니다."

"아직 멀었네, 가서 더 하고 오게나.."

노승이 몸을 돌려 버렸다.

기원이 합장한 뒤 나오자 밖에 여러스님이 서 있었다.

"큰스님이 시주님을 하안거에 합류 시키라고 하셨습니다"

"하안거를요? 전 출가도 아직......"

"원칙상 안되지만 큰스님의 명이라서요..."

기원을 보는 주위의 시선이 따가웠다.

"허...."


그렇게 기원의 하안거가 시작되었다.

하안거란 여러명의 스님이 한방에서 같이 참선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름엔 하안거 겨울엔 

동안거라고 불렀다.

널찍한 방에 십 수명의 스님들이 가부좌를 튼 채 수련중이었는데, 제일 구석에 기원이 자리를 잡았다.

참선하는 스님들은 기원을 불편한 눈으로 바라 보았는데, 그도 그럴것이

기원은 머리도 밀지 않은 속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이었다.

이젠 제법 친해져서 전과 같은 껄끄러움은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기원이 비슷한 나이의 청하 스님과 절 내를 걷고 있던 중 이었다.

앞 쪽에서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비명이 터졌다.

"악.. 왜 그러십니까? 으.. 제발 말로 하십시오.."

둘이 가보자 그 곳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한 50대의 스님이 빗자루로 청년승을 마구 때리고 있는 중이었다.

청년승은 이리저리 피했지만 50대의 스님이 잘도 쫓아갔다.

"청하스님, 무슨 일입니까?"

기원이 옆에 있던 청하스님께 조용히 물었다.

"저기 때리시는 분이 진수스님인데 무척 고약하신 분입니다"

말하는 청하스님이 약간 움츠러 들었다.

"진수스님이라면 큰스님의 제자라던...."

"맞아요, 하도 성격이 고약하고 폭력적이어서 한번씩 사단이 일어나곤 하죠"

잠시 후 진수스님이 빗자루를 던져 버리고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스님 저를 죽일 작정 이십니까?"

"닥쳐라, 이 놈... 중놈이 밥 값을 못하면 두드려 맞아야지.."

진수스님이 정말로 죽일 듯 때리자 주위에서 뜯어 말리기 시작했다.

"그만하십시오, 스님... 저러다 죽겠습니다.."

"이거 안놔? 니들도 두드려 맞고 싶나 보구나.."

"헉.. 아닙니다."

기원이 그 광경을 보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새파란 하늘에서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철썩"

순간 기원의 눈에서 불똥이 터졌다.

달려온 진수스님이 기원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어딜 보고 있느냐... 제대로 봐도 모자랄 판에.. 너도 두드려 주랴?"

"........."

기원이 뺨에 손을 댄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천치같은 놈!! 눈깔이 삐었구나!!"

진수스님이 한 대 더 치려하자 청하스님이 뜯어 말렸다.

"아이고 스님.. 이 분은 저희 손님입니다... 때리시면 안된다구요...

그 뒤로 진수스님이 뭐라고 소리쳤으나 귀원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2년이 지났다.

기원은 수련에 매진한 끝에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기원의 기도가 날로 범상치 않게 되자 큰스님이 다시 호출했다.

"듣자하니 자네의 공부가 깊어졌다더군"

"약간 얻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다시 물어보겠네."

큰스님과 기원이 서로를 직시했다.

"이번엔 무엇이 보이는가?"

"소 꼬리가 보입니다."

"틀렸네, 더 하고 오게나.."

큰스님이 혀를 차며 돌아서자 기원이 망설임없이 일어났다.


다시 3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물을 마시던 기원이 바가지를 떨어뜨렸다.

그리곤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침내 대오각성을 이룬 것이다.

기원이 춤을 추자 스님들이 모여 들었다.

"시주님, 무슨 일입니까?"

기원이 동작을 멈추고 청하스님을 바라보았다.

청하스님의 뒤로 수천 번의 전생이 나타났다.

기원이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 향했다.

그들에게서 윤회의 고리가 보였다. 그들은 수많은 생을 그 고리속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문든 몇 년전에 뺨을 맞은 기억이 났다.

'왜 맞았는지 알겠군'

기원이 걸음을 옮겼다. 다른 스님들이 멍하니 기원을 뒤따랐다.

얼마쯤 가자 앞에서 진수스님이 오고 있었다.

기원이 가까이 가자 진수스님이 합장했다.

"퉷"

기원이 합장하는 진수스님에게 침을 뱉었다.

"헉"

주위에서 헛바람이 터지고 순식간에 소란스러워 졌다.

"퉷"

기원이 한번 더 침을 뱉고 진수스님에게 합장했다.

"나무아미타불.."

진수스님의 얼굴에서 묘한 웃음이 피어 올랐다.

기원은 다시 걸음을 재촉해 큰스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큰스님이 일어나 있었다.

"무엇이 보이는가?"

"늙은 땡중 하나가 보입니다"

"축하하네"

기원이 큰스님에게 절을 올렸다.



삼일 후 기원은 보현사를 나와서 서울로 향했다.

서울역에 도착한 기원이 전화를 걸었다.

"네.. 강남 경찰섭니다."

"김영민씨 부탁합니다."

"네? 김영민씨가 누굽니까?, 그런 사람 없..... 아 혹시 김경감님 말하시는 건가요?"

"네, 김경감 맞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30초가 지나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바꿨습니다"

"김경감님 김중호씨 어디 있나요?"

"네? 아니 김중호씨를 어떻게..... 아 혹시.."

"그래, 나야"

"헉, 기원이구나... 너 대체 어디있었던거야...."

"김중호씨 잘 있지?"

"그..그래 , 근데 넌 친구보다 그 사람을 더 찾냐?"

"일곱시까지 서울역 앞으로 보내줘"

"찰칵"

기원이 전화를 끊은 뒤 재발신을 눌렀다.

"02-642-00xx......"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누군가 수화기를 들었다.






- 반갑습니다 -





기원이 활짝 웃었다.







"사쿠라양..... 당장 이리로 와 주시겠습니까?"

기원은 역 벤치에 앉았다.

기다리는 동안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새삼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 사람의 모든게 보였다.

수천 번의 전생이 보였고, 그 사람의 심성과 업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전생은 대부분이 가축이거나 하찮은 미물이었고, 

사람이 전생이었던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또 그 사람이 쌓은 업을 보면 다음 생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이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사람 몸 나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더욱 어렵더라..'

기원이 한참을 기다리자, 저쪽에서 두명이 뛰어왔다.

"기원아!! 이 자식 하여튼 연락두절엔 선수로구만!!"

영민이 반갑게 기원을 안았다.

"그래 반갑다.."

기원이 영민에게 미소를 보이곤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김중호씨도 오랜만입니다"

기원이 과장된 몸짓으로 악수를 청했다.

김중호가 말없이 악수를 받아 들이자, 영민이 물었다.

"너 왜 저 사람에 대해서 말 안해줬냐? 한참 동안 답답해 죽을 뻔 했다."

"미련한 네 탓이지.."

"뭐라고? 하하.. 그래 내 탓이다 내 탓.. 근데 너 어딘지 모르게 달라 보이는 걸?"

"내가 정상이고 네가 비정상이야.."

"크크... 그러냐? 어쨌든 같이 가자, 니가 없어진 후론 자살자도 사라졌어.."

"그래?"

"응, 한켠에서는 붉은 사쿠라가 죽었다고도 하고..."

"흠... 알았다, 넌 들어가봐. 김중호씨랑 갈 데가 있어"

"어딜?"

"나중에 연락해 줄께"

기원이 매표소로 걸어가자, 김중호가 뒤따랐다.






달리는 기차속에서 기원이 아까의 통화를 떠올렸다.


- 삼일 후 보현사에서 뵙겠습니다 -

" 보현사?"

- 그래요, 그곳에서 저를 맞아 주십시오 -

"알겠소, 사쿠라양.."

"찰칵"



기차는 몇시간 후 충주역에 도착했고, 둘은 내렸다.

둘은 일절의 대화도 없이 묵묵히 걷기만 했다.

한참을 걸어가자 멀리서 보현사가 드러났다.

"응?"

기원이 바라보니 보현사쪽에 '기'가 불안정하게 뒤틀려 있었다.

"설마..."

기원의 걸음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이익"

절에 도착한 기원이 급히 문을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절안에는 많은 수의 스님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그들의 얼굴엔 공포감이 드러나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기원이 재빨리 지나가는 스님 하나를 붙잡았다.

"아.... 시주님이시군요, 지금 큰일났습니다."

"큰일이라뇨?"

"진수스님이 자살하셨습니다."

"........"

기원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기원이 바라 본 진수스님은 경지에 든 인물이었고, 결코 자살 따윌 할 인물이 아니었다.

무언가 섬광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혹시.... 여자 하나가.... 왔었..나요?"

"엇....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스님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아뿔사.. 속았구나....'

기원이 부리나케 큰스님에게로 달려갔다.

큰스님의 방 주위에서 수십명의 스님이 웅성대고 있었다.

"앗... 시주님!!"

청하스님이 기원을 알아챘다.

"드르륵"

기원이 허겁지겁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큰스님...."

법진대사는 말없이 가부좌를 튼 채 염불을 외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시주가 왔구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겁니까?"

법진대사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다 나의 불찰이네... 혼자 만났어야 하는 것을...."

"그녀....를.. 큰스님께서도 만났습니까?"

"나와 진수가 같이 만났네"

"........그녀가 돌아간 지 얼마나 지났죠?"

"두시간 쯤 됐을걸세.."

"아...."

기원이 그제서야 안도했다.

"불행 중 다행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설...득.. 당하지 않으셨군요."

법진대사의 표정이 쓸쓸해졌다.

"한순간에 모든것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네."

"진수가 싸울동안, 난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았지."

"그녀는 한낱 요물일 뿐입니다... 간사한 혓바닥만 놀려 댈 뿐이죠"

"그럴지도 모르지... 자네 이만 나가 주겠나? 생각 좀 해야겠네"

"알겠습니다, 쉬십시오"

기원이 방을 빠져나왔다.

주위의 스님이 기원을 보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시주님...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대체 그 여자는 누구입니까?"

"쉿..."

기원의 손가락이 입술에 닿았다.

"혹시 여자가 남긴 말이 있습니까?"

"내가 들었네"

중년의 만수 스님이 앞으로 나섰다.

"내일 동틀 무렵에 다시 오겠다더군, 그 말 뿐이었어"

"알겠습니다."

기원이 자신이 기거하던 방으로 걸음을 옮기자, 김중호가 조용히 따라갔다.




그날 밤 수련중이던 기원의 방으로 세명이 찾아왔다.

"청하스님 아닙니까? 청도스님이랑 청송스님도 오셨군요."

'청'자 배의 스님 세명이 기원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희는 그 동안 시주님의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러지 마십시오."

기원이 그들을 만류했다.

"저희는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저희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부탁 드리겠습니다"

세 스님의 얼굴에 비장한 기운이 맴돌았다.

"글쎄요..."

기원의 눈이 매섭게 그들을 주시했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청하스님이 재빨리 대답했다.

"소꼬리와 소머리 말입니다..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해도 짐작도 안 갑니다

"소꼬리라......"

기원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건 인사입니다."

"인사?"

"네?"

기원이 덧붙여 설명했다.

"소머리나 소꼬리나 하등 쓸모 없는 것입니다,

돼지머리나 돼지꼬리로도 바꿀 수 있구요..."

"아...."

돌연 청하스님의 표정이 환해졌다.

나머지 둘은 여전히 멀뚱멀뚱한 표정이었다.

"그렇군요..."

청하스님이 가부좌를 튼 채 명상에 들기 시작했다.

"시주님, 조금만 풀어서 설명해 주십시오"

청도스님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대화는 형식적인 것입니다. 사실은 미리 알고 있었죠"

"........"

기원의 표정이 온화해졌다.

"제가 대오각성한 그 때, 큰스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피차 다 알고 있는 판에 무슨 대답인들 상관 있겠습니까?"

그렇게 밤새 기원의 가르침이 내려졌다.



다음 날 새벽 일찍 기원이 방문을 박차고 나섰다.

김중호가 손에 둥글게 말린 신문지를 든 채 기원을 따라왔다.

'미친....'

기원이 어디론가 전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곧 법진대사의 방 앞에 도착한 기원이 문을 홱 열었다.

"........"

방 중앙에 법진스님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괜찮다고 말했잖습니까..."

기원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무엇이 이토록....."

법진스님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결단코...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기원이 눈물을 닦으며 돌아섰다.

"죽여 버리겠습니다"

기원의 눈에서 살기가 쭉쭉 뻗어 나왔다."

곧 스님들이 몰려 들었다.

스님들의 끝에 기모노 여인이 걸어 오고 있었다.

새빨간 핏빛의 옷에서 섬뜩함이 묻어 나왔다.

그녀가 기원에게 다가왔고, 곧 빙긋 웃었다.




-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

" 닥치고 내 말 부터 들어라."


- 경청 하겠습니다 -

" 요사한 혓바닥을 함부로 놀린 죄로 널 죽이겠다."


- 저는 진실만을 말했을 뿐 입니다 -

" 죽는 것이 진실이냐? 네 년 말은 처음부터 틀렸어"


- 그럼 무엇이 진실입니까 -

" 진실은 이미 존재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지니고 있어"


- 혹 진실이 불성을 일컫는 것입니까 -

" 그렇다"


- 그렇다면 스님은 완전 틀렸습니다, 불성이야 말로 

거짓이며 추악한 오물일 뿐입니다 -

"불성은 인간이 지난 최고의 잠재력이다, 너 따위가

함부로 말할 바가 못 되지"


- 불성은 진짜 존재가 내린 썩은 동아줄이요, 헐리기 직전의 난간 입니다 -

" 진짜 존재가 뭐지? 신을 말하는 것인가?"


- 진짜 존재는 진화의 마지막 종착역 입니다 - 

" 무슨 소리야?"


- 인간이 진화를 거듭하여 수천억겁의 세월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

" 생각해 본 적 없다"


- 더이상 진화할 수 없는 포화상태가 되는데, 그것이 진짜 존재 입니다 -

" 크크..혹 네 말이 사실이어도 아득히 먼 미래일 뿐이다"

사쿠라의 입술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 진짜 존재는 이미 수천억년 전에 나타났습니다 -

" 닥치거라, 네 말은 증거도 없는 망상일 뿐이야"


- 스님께서는 대오각성을 하셨나요 -

" 그렇다"


- 그럼 사람들의 전생을 보셨겠군요. 아닙니까? -

" 맞다, 나는 사람들의 전생을 보았다"


- 사람들의 전생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까? -

" 요점을 말하라"


- 그들의 전생을 거슬러 가 보십시오 -

" 거슬러 가라고?"


- 그렇습니다. 수천 수만 번의 전생을 마지막 까지 가 보십시오 -

" 알겠다"

기원의 시선이 주위를 둘러 싼 스님 중 하나를 향했다.

"음.."

스님의 전생을 거스르고 거슬러 올라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유인원을 지나 공룡이 보였고,한참을 더 가자 삼엽충과 갑주어가 나타났다.

기원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박테리아가 보였다. 그 상태에서 다시 수천번을 올라갔다.

'어?'

아득히 멀리서 흰 빛이 보였다. 강렬한 그 빛은 무척 거대했고 동시에 따스했다.

'이것이....'

기원이 마침내 마지막에 도착했고, 그 곳엔 빛이 있었다.

기원이 빛을 바라보자 빛도 기원을 바라보았다.

"......."

사쿠라의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 묻겠습니다, 당신이 본 것은 빛입니다. 맞습니까? -

".....그렇다, 내가 본 것은 빛이다"


- 그 빛이 진짜 존재 입니다 -

" 더 확인해야 봐야겠다"

기원은 김중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잠시후 다른 스님들까지 일일히 쳐다보았다.

- 어떻습니까 -

" 네 말이 맞았다, 모두의 마지막은 빛이더군"

사쿠라가 손뼉을 쳤다.


- 이제 인정하시는 군요 -

" 네 말대로 그 빛이 진짜 존재고 마지막 진화단계라고 가정하자"


- 가정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

" 어쨌든 네 말이 맞다면, 어째서 그들은 다시 퇴보 된 거지?"


- 퇴보가 아닙니다. 그들은 스스로 택한 것입니다 -

" 왜지?"


- 최종 진화한 그들을 맞이한 건 끔찍한 무료 였습니다 -

" 무료?"


- 그들에겐 공기와 물이 필요없었습니다. 가족도 없고 자식도 당연히 없었구요 -

" 그럼 번식은 어떻게 하지?"


- 그들은 더 이상 사망하지 않았습니다. 불사의 몸이 되자 그들의 가치관은

급격히 바뀌었죠 -

" 어떻게?"


- 신체도 사라졌고 욕구도 사라졌습니다. 오로지 사념체만 남은 그들 입니다 -

" 무섭군"


- 그들은 영원이라는 지루한 시간을 두고 여흥거리를 만들어 냅니다 -

" 설마..."


- 그렇습니다. 그들은 내기를 했습니다, 진 존재는 벌칙을 받았죠 -

" 벌칙이 우리란 말이냐?"


- 정답입니다. 벌칙은 백만번의 윤회죠 -

" 아..."

기원의 머리가 순간 충격에 빠졌다.

사쿠라의 입이 쉴 새 없이 열렸다.

- 이제 아시겠습니까 -

" 벌칙이 윤회 백만 번이면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 상대적인 겁니다. 영원에 빗대면 찰나 일 뿐이죠 -

" 그렇구나... 이제 네 목적을 이해했다"


- 그들은 한가지 조건을 걸었죠. 그것은....-

" 그것은 아마도 자살일테지?"


사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 맞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윤회에서 벗어 날 수 있죠 -

" 달콤한 말이군, 요약컨대 자살하면 진짜 존재가 된다 이말이지?"


- 그렇습니다, 무척 이해가 빠르시군요 -

"그리고 우리가 여태껏 속았다 이 말이지?"


- 그렇습니... -

" 닥쳐라, 네 말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야"


- ........... -

" 네 말은 한가지 가정에서 출발하지, 그 빛이 진짜 존재라는 가정 말야...

만약 네 말이 틀렸다면 어쩔거지? 그 빛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어쩔거냐고...

난 네 년보다 석가모니와 성철스님을 더 믿는다"

사쿠라의 표정이 살벌하게 변했다.

- 고타마 싯다르타는 겁쟁이 일 뿐입니다 -

" 함부로 말하지마라"


- 한가지 알려 줄까요? 당신은 대오각성한 것이 아닙니다 -

" 뭐라고?"


- 대오각성은 고금을 통틀어 단 두 번 일어 났을 뿐 입니다 -

" ........"


- 고타마 싯다르타와 성철.... 이 두사람만이 진정한 대오각성을 이루었죠 -

" 계속 말해봐"


- 이유는 간단합니다. 진정한 대오각성을 이루면 바로 그것이 되거든요 -

" 그것?"


- 진짜 존재 말입니다. 오직 두 명만이 산 채로 진짜 존재가 되었죠 -

" 아까는 자살 뿐 이라 그러지 않았나?"


- 자살이 제일 쉬운 방법이고, 대오각성이 제일 어려운 방법입니다.

제가 말했잖습니까, 불성은 썩은 동아줄이라고 -

" 아무나 잡고 올라갈 수 없다는 말이군"


- 그렇습니다. 천운에 천운이 겹쳐야 끊어지지가 않는 것이죠 -

" 하하... 네 말은 틀렸다. 붉은 사쿠라..."


- 무엇이 틀렸습니까? -

" 네 말대로 성철스님이 진짜 존재라고 믿어보자...

스님께서 이런 말을 남기셨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무슨 말인지 알고 있나?"


- .............-

" 이 말의 뜻은 있는 그대로 보란 뜻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 그것이 진실이자 진리란 말이지"


- 착각하고 있군요, 당신이 사랑하는 성철스님을 예로 들겠습니다,

성철스님의 열반송을 떠올려 보십시오 -

"........."

사쿠라의 말에 기원의 안색이 변했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 어떻습니까? 제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의 해석도

정정해 드리겠습니다 -

"............"

사쿠라가 뭐라고 말했으나 기원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쇼크 상태에 빠진 것이다.

- 들으셨습니까? 이제 인정하십시오, 진실을... -

" 그..그럼 도대체 부처님은 왜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은거지?"


- 고타마 싯다르타는 겁쟁이였습니다, 겁쟁이가 자살을 권유 할 수 있을까요?

그는 자살 대신 불성을 택한 것입니다. 한명이라도 더 대오각성 하길 바라며

불교를 퍼트린 것이죠 -

"아..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기원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고, 사쿠라가 박차를 가했다.

- 결국 그는 실패했죠, 왜냐하면 수천년 동안 오직 성철 혼자 알았으니까요 -

" 잠..잠깐 근데 넌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거지?"

기원이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 제 전생을 보십시오 -

" 설마..."

기원이 사쿠라의 뒤를 훑었다.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에겐 전생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신.....이 바로 진짜.... 존재였군"

사쿠라의 표정이 환하게 물들었다.


둘의 결에는 김중호가 수마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닫히려는 눈꺼풀을 핀셋으로 고정시켰다. 다시 한번 혀를 깨문 김중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둘의 설전이 시작되고 삼일 밤낮이 흘러갔다.

때로는 울고, 또 때로는 미친듯이 웃으면서 둘은 공방을 벌였다.

무슨 말인지 전혀 들리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얘기라는 것을 짐작할 순 있었다.

첫 날 구경하던 스님들이 모두 자살했다.

곧 끔찍한 냄새가 진동했지만 이틀이 지나자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둘을 다시 한번 바라보던 김중호가 깜짝 놀랐다. 그리곤 재빨리 시계의 타이머를 눌렀다.

기원이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분이군..."

시계가 3분이 지나자 김중호의 눈빛이 변했다.

"스윽"

손에 들린 신문지를 펼쳤다.

과도 하나가 드러났다.

김중호가 천천히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과도를 심장에 박았다.

두 번, 세번을 연거푸 찌르자 여자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 김중호의 모습을 기원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1년 뒤 강남경찰서로 한 통의 팩스가 도착했다.

팩스를 확인한 조한일 경사는 전화를 든 채 망설이기 시작했다.

'어쩌지, 꼭 말하라 그랬는데... '

잠시 생각하던 조경사는 팩스를 영민의 책상위에 올려 두었다.

'오랜만의 휴가인데, 방해하면 안되지...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말야'

다시 한번 팩스를 힐끔 바라보았다. 오래 전 붉은 사쿠라의 뒤를 따르던

창백한 꼬마가 떠올랐다.




성 명 : 송 영 주

나 이 : 24세

생년월일 : 1999년 7월

신 원 : 실 종





그 시각 김영민 경감은 가족과 함께 영국에 있었다.

2022년 영국 월드컵... 전 세계의 축제인 월드컵을 보러 영민이 온 것은 3일 전이었다.

우연히 결승전 티켓을 얻게되자, 뒤도 안 돌아보고 비행기에 올라탄 그 였다.

"아빠, 저기 붉은 유니폼이 우리 선수들 맞지?"

열살 난 딸이 영민에게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빨간게 우리나라구 하얀게 영국이야"

"와 재밌겠다, 재밌겠다"

딸의 모습을 영민과 아내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 시각 월드컵 상황실....

바짝 긴장한 영국인 피디의 눈이 화면에 집중됐다.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지금 화면은 위성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 되는 그야말로 중요한 화면이었던 것이다.

'한경기 남았다, 이번만 무사히 넘기면 최소 국장자리는 보장 되겠지..'

그의 얼굴에 탐욕의 빛이 넘실 거렸다.

현장에 있는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화면을 전송해 주고 있었다.

그 때 였다. 누군가 상황실 문을 걷어 차고 들어온 것은

"무슨 일이야?"

안에 있던 6명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굿 바이"

눈 앞에 젊은 청년이 품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

"탕.탕.탕.탕탕탕!!!"

순식간에 여섯발의 총성이 울리고 그들이 모두 쓰러졌다.

"흐흐..."

청년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케이스를 열고 테잎을 꺼냈다.

그리곤 화면 출력기에 꽂아 넣었다.

"후아..후아.."

청년의 입에선 거친 호흡이 터졌고, 두 눈은 잔인함으로 물들었다.


"어라..."

그 시각 경기장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대형 모니터의 화면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뭐야?"

"무슨일이지?"

영민을 포함한 수만의 관중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막 경기를 시작하려던 심판과 선수들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 였다.

그 때 화면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화면을 보는 영민의 눈이 공포로 물듦과 동시에 스피커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 여러분 -

한국어, 영어, 중국어가 차례차례 번역되어 울려 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니터에 집중됐다.





-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



















































































1999년 7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

앙골모아 대왕을 부활시키고

그 전후 마르스는 행복해 지리라


-노스트라다무스-










ㅡ the end ㅡ




이 글을 본 사람이 추리한거라네요..
어휴 섬뜩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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