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글 올렸었는데 많은 분들이 같은 생각을 공감해주시고 그래서 조금은 위로가 된 것 같아요.
사실 오늘부터 시험기간이라 정신없는데 ㅋㅋㅋㅋㅋ 아침부터 버스에서 자서 내리는 거 놓치고 막 ㅋㅋㅋㅋㅋㅋㅋ 다행히 시험지 채우는데는 문제 없었는데
만약 시험감독으로 조교가 아니라 교수님이 오셨으면... 오마이갓하느님부처님예수알라성모님께 기도할 뻔 ㅠㅠ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갈아탄 버스에서 시상이 잠시 떠올라서.. 그리고 어제 밤에 잠 못 자고 한 편 쓴 것도 있어서 두 편만 올려 볼려구요.
오랜만에 쓰는 시라 조금 어색하긴 한데 잘 읽어주셨으면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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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군
160이 조금 넘는 왜소한 체격을 가진 나는, 내 체중의 절반이 넘는 무거운 군장과
장구류와 기관총을 짊어 매고 행군을 했던 때가 있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 없이 이어진 길. 비탈진 경사를 끙끙거리며 올라가고,
속도에 못 이겨 내리막길을 걷다가 발을 삐끗거리기도 하고,
앞사람과 거리가 멀어지기라도 하면 조마조마해져서
다리에 온갖 힘을 주고 걷지만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고 발바닥에 잡힌 물집은 쓰라리고.
포기하고 자리에 드러눕고 싶었던 매 순간들이 내 생의 고비였다.
그래도 처음엔 맨날 낙오병이 되던 내가 이젠 멈추지 못해 안간힘이라도 쓴다.
한 걸음 더, 딱 한 걸음만 더.
이렇게 걷는 일도 언젠가는 끝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멈출 수가 없다.
40km의 돌자갈밭에 내 인생이 잘게 부서져 깔려 있기 때문이다.
2013.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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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에게
-죽은 딸에게 보내는 편지-
순이야 아가야
우리 이쁜 강아지야
네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오래구나
이제 곧 네가 좋아하던 가을이 지나고
춥고 배고픈 겨울이 오는구나
너 잠든 그 땅이 어미 품마냥 고요하고 따뜻하면 좋으련만
빨갛게 노랗게 물든 단풍잎 이불삼아 폭 덮고 자라
순이야 아가야
엄마는 지난 몇 년 동안
숨이 쉬어지니까 살았구나
혀 없이 밥을 넘겼고
눈꺼풀 없이 잠을 청했구나
꿈 속에서라도 우리 딸 하얀 볼 한 번 만져보고 싶어
손을 씻고 또 씻는다
순이야 아가야
네가 늦잠자던 침대며 책상이며 모아놓은 앨범이며
네 물건 어느 하나 태워버린 것 없이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네 몸은 이미 허공에 있고 느낄 수 없지만
어미 마음 속에서 꼬부랑 할머니 될 때까지 살고 있을 테야
순이야 아가야
우리 이쁜 내 강아지......
생전 괴로웠던 것들 다 내려놓았으니
지금 너 사는 그 곳은 천국이 아닐 수 없겠구나
먼 훗날 어미 몸 다 쭈그러들어서 그 곳 올라갔을 때
미역국 하나 끓여주려무나
순이야 아가야
우리 이쁜 내 딸, 잘 자라. 안녕.
안녕.
2013.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