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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에 대한 단상 1
게시물ID : phil_105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고맨
추천 : 0
조회수 : 944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1/13 21:48:28
우리는 요즘 주옥같은 갑질의 향연을 목도하고 있다. 과연 갑질의 시대다.
남양유업 본사직원이 나이 많은 대리점주에게 막말을 퍼부은 내용이 공개되면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갑질들을 돌아보기 시작했고,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갑질들에 놀라게 되었다.
일명 밀어내기 같은 불공정행위와 이러한 불공정행위가 버젓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시스템,
이를 이용해 갑질하는 갑의 횡포는 비단 남양유업 만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긴 이는 우리가 모르던 이야기가 아니다. 평소 주변에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이고 우리 자신이 직접 당했던 이야기였다.
다만 이제는 두 눈 질끈 감고 일부러 모른척 하던 현실들을 하나 둘씩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좋아져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이젠 정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한 발짝만 더 가면, 그나마 남은 국가시스템의 껍데기마저 붕괴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왜 갑질이 일어날까? 왜 갑질을 참아왔던 걸까? 그리고 무엇이 바뀌었기에 이 갑질들이 요즘 들어 공론화 되고 있을까?

우선 기억나는 대로 몇 가지 갑질들을 떠올려 보자.
 
1. 대한항공 승무원에 대한 포스코 상무의 갑질
: 컵라면이 덜 익었다며 승무원의 뺨을 때린 그 상무는 논란이 거세지자 보직해임 되었다고 하는데,
겨우 보직해임이라니... 지금쯤이면 제자리로 돌아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또 갑질을 해대고 있을거 같다.
그래, 이 양반은 운이 좋았다. 땅콩항공 부사장도 보직해임으로 무마하려 했지만, 국민은 더 이상 보직해임 정도에 속지 않았다.
 
2. 압구정현대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입주민들의 갑질
: 인격적 모욕에 시달린 경비원이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분신자살한 후,
입주민 측은 모든 경비원을 해고하려다 여론이 악화되자 다시 채용했다고 한다.
아파트의 이름, 솔직히 말해 아파트 값을 위해서는 사람 목숨도 똥값이 되는 시대다.
 
3. 승마협회에 대한 정윤회의 갑질
: 정윤회씨의 딸이 아시안게임 출전권이 달린 시합에서 2위를 하자(1등만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수 있다)
정윤회씨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과 맞서고자 분연히 일어났다.
시합 다음 날 바로 경찰이 찾아와 승부조작이 있었다며 수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투입되었던 문체부 직원들은 눈치없이 정윤회와 상대측 둘 다 잘못했다고 보고 했다가
대통령수첩(전 유신공주수첩)에 '나쁜사람'이라 적힌 후 짤렸다.
언뜻 법 위에 계신 분들의 사소한 분쟁정도로 보였던 이 사건은 이후 청와대 문건유출사건으로 확대되며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한 쪽이 갑질을 시전했지만, 상대도 어였한 갑이었기에 복잡한 네트워크와 계산을 거쳐
정윤회와 박지만의 불꽃튀는 권력암투로까지 비화되었던 것이다.
갑질에 당할 갑은 없다. 갑질은 역시 을에게 해야 제맛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갑질이 얼마나 비열한 짓인지 알 수 있다. 내가 힘이 있으니, 네가 을이니 찍어 눌러도 된다? 역겹다.)
 
4. 대한항공 승무원에 대한 땅콩항공 부사장의 갑질
: 청와대 문건유출사건으로 정신없던 우리에게 오아시스 같은 사건이 하나 빵 터졌으니...
땅콩을 봉지째 가져왔다는 이유로 사주의 딸이었던 부사장이 승무원과 사무장을 무릎꿇리고,
결국 비행기까지 회항시켜 사무장을 내려놓고 갔단다. 이후 벌어진 땅콩항공의 증거인멸 시도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사건의 주인공인 부사장은 구속되었지만, 사건의 향방은 아직 두고 봐야 한다.
어제는 땅콩항공이 승무원에게 교수직을 제안하며 증언을 번복하도록 회유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5. 수습사원에 대한 위메프의 갑질
: 수습사원에게 직원시켜줄테니 직원과 똑같은 실적을 내라고 시켜놓고서는 기한이 끝나자 전원 해고시켰다고 하는데,
가입자들의 탈퇴러쉬를 넘어 소비자들이 일부러 가입했다가 탈퇴할 정도로 여론이 들끓자, 이들을 전원 입사시켰다고 한다.
그럼 뭐해? 소비자의 마음은 이미 떠났는데... 이젠 이승기나 이서진의 할아버지가 와도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6. 인턴직원에 대한 이상봉 디자이너의 갑질
: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 견습들을 부려먹은 사건인데, 이는 이상봉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패션업계 전반의 문제였다.
스타가 되라. 스타가 되면 떼돈을 벌 거다. 그리너 너의 젊음, 너의 현재를 바쳐라.
너의 열정과 재능을 불꽃처럼 불태우고 소진해라. 살아남으면 돈버는거고, 아님 꺼지는 거고...
영화나 음반처럼 스타마케팅, 스타시스템이 구축된 곳에서는 모두가 불나방 신세일 뿐이다. 죽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불의 마력에 끌려 뛰어든다.
그래서일까? 별로 달라질게 없어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
 
7. 주차요원에 대한 백화점 모녀의 갑질
: 모녀는 알바생이 차에 대고 주먹을 휘둘렀고, 이를 훈계하기 위해 무릎을 꿇렸다고 한다.
어미는 자신이 7백만원이나 썼는데, 일개 주차요원에게 망신을 당해야 하냐며 부들부들 떨다 병원에 실려감으로써
진정한 갑질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내추럴 본 갑이 아니라면 갑이 될 자격이 없다. 갑질을 할 수 없다.
갑질이 갑질인 줄 안다면 어떻게 갑질을 할 수 있겠는가?
아니에요~ 얼마나 억울하면 부들부들 떨다 병원에 실려갔겠냐고? 헐~
아직도 똥오줌 못가리는 사람들이... 여기는 몰라도 이 사회엔 음... 너무... 많다.
 
세상 참 갑갑하다.
백화점 모녀처럼 갑질의 정수를 보여주면서도 그게 갑질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다. 갑들은 정말로 순수하게 자신이 내추럴 본 갑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신념에 한 치의 불신도 반성도 없다.
난 7백만원 쓴 고객님, 넌 주차요원, 그럼 니가 나에게 공손해야지... 이게 무슨 갑질이야 당연한 거지~!
내가 갑인데, 을에게 무슨 짓을 하던 무슨 상관인가? 내가 갑이니 갑질 안 당하게 을이 알아서 조심하고 살아야지 말야~
 
설국열차에서 총리 역을 맡았던 틸다 스윈튼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애초부터 앞쪽칸, 니들은 꼬리칸. 그럼 니들 자리를 지켜~!"
원작에서는 총리가 꼬리칸 출신으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총리가 된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런 그가 애초부터 자신은 앞쪽칸이라고, 니들은 뒤쪽칸이니까 뒤쪽칸으로 꺼지라고 씨부렁댄다. 헐~
영화는 왜 이다지도 현실과 똑같단 말인가?
 
여기서 갑질의 정의를 살펴보자.
갑질이란 갑을관계에 있어 강자인 갑이 약자인 을에게 행하는 모든 부당행위를 의미한다.
갑이라서 나쁘다는게 아니라, 갑이 갑이랍시고 을에게 해선 안 될 짓을 할 때, 그 잘못된 행위를 부르는 말이다.
이제 우린 미생 같은 드라마를 보며 이 갑질을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통해 볼 정도가 되었다. (이거 좋은거야? 나쁜거야?)
우리는 장그레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장그레의 고난은 현실에 비하면 세발의 피다.
어떻게 보면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모인 회사이기에, 그나마 수준이 있고 스마트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더 고깝지만...
희망고문이나 열정페이는 이제 애교가 되었다. 갑질을 이야기 하지만 변하는 건 없다. 을은 영원히 을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우리만의 이름까지 붙여주고 있다.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초식남, 초식녀 등등
하지만 이를 바꿀 힘이 우리에게 있을까?
소위 왕따문제가 나타났을 때부터,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부터 을로서 살아가기를 강요받고 있다는 것을.
청소년기부터 갑질을 고스란히, 얌전히 받아들이길 배우며... 고개 숙이고 사는 방법을 배우며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갑질의 늪에서 해어나오기란 쉽지 않다.
단순히 갑질을 비난하고 벌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갑질은 갑이 갑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갑과 을의 관계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헤겔이었나? 그는 갑이 갑이 될 수 있는 이유를 갑이 아닌 을에서 찾는다.
왕이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백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 것인데,
백성이 없었으면 왕도 왕이 될 수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백성이 왕을 원했기에, 왕을 필요로 했기에 왕이 왕으로 추대될 수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왕은 자신을 다스리는 자로 여기게 되고, 백성은 자신을 지배받는 자로 여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누가 왕을 세웠는지, 왜 왕을 필요로 했는지 잊어버림으로써
왕은 당연히 백성을 다스리는 자가 되고 백성은 당연히 왕을 섬겨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억하지 않는자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베르그송은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이유를 기억에서 찾지 않던가?
 
물론 기억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갑과 을은 갑을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갑과 을이 되기 때문이다.
사무엘서에는 왕이 세워지던 시절의 이야기가 보다 자세하게 나와있다.
어느 날 백성들이 제사장 겸 사사였던 사무엘에게 몰려가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사무엘이여 옆 나라 블레셋은 왕을 세워 나날이 강력해지는데 우린 뭐요?
당신이야 괜찮지만 당신 아들들은 탐욕스럽고 무능한데, 당신이 죽고 나면 누굴 의지하란 거요?
우리에게도 왕을 주시오. 왕이 될 자를 골라 왕으로 선포하시오. 그에게 권력을 넘기시오.
그러면 우리가 맘 놓고 살 수 있을 것 같소.
그러자 사무엘이 답했다.
그래 내 당신들에게 왕을 세워줄 수는 있소. 하지만 당신들에겐 하나님이 계시잖소? 하나님이 계신데 또 왕이 필요하오?
지금은 당신들이 왕을 요구하니 왕을 세워주겠소.
하지만 당신들이 세운 왕은
당신들의 아들들을 데려가 자기 병사로 삼고,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말을 돌보게 하고, 자기 무기를 만들게 하고
당신들의 딸들을 데려가 자기 음식과 항료를 만들게 하고,
당신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 중에서 제일 좋은 것들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주고,
당신들의 곡식과 포도원 수입의 십분의 일을 가져가 자기 신하와 관리들에게 주고,
당신들의 노비와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가져가 자기 일을 시킬것이며,
당신들의 양떼에서 십분의 일을 가져갈 것이니... 당신들은 이제 왕의 노예가 될 것이오.
그때가서 하나님께 울부짖어 봤자 소용없을 것이요. 당신들이 스스로 원해서 된 일이니...
 
권력의 중심이 제사장에서 왕으로 넘어가던 시기...
이 예언은 힘을 잃어가던 늙은 제사장의 중얼거림처럼 보였지만,
그래서 당시 백성들도 뻥카처럼 여기고 흘려들었지만, 이 말은 곧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이후 백성들의 역사를 보면 참 좋~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헤겔로 돌아가보자.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오래전이라 가물가물... 대충 이런 뜻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주인이 주인된 것은 주인이 되기를 택했기 때문이고, 노예가 노예된 것은 노예가 되기를 택했기 때문이다'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노예가 필요하고, 노예가 되기 위해서는 주인이 필요하다'
갑은 원래부터 갑이었던 것이 아니다. (그래 갑이 언제부터 갑이었다고 갑질이야~)
갑은 갑이 되기를 결단했기에 갑이 된 것이고, 을은 을이 되기를 인정했기에 을이 된 것이다. (응? 이건 뭥미?)
이는 갑이 갑이기에 갑인 거고, 을은 을이기에 을이라는 의미임과 동시에,
갑을 갑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을이고, 을을 을로 만들어주는 것은 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을이 갑을 갑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이상, 갑도 갑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오~ 그럼 갑에겐 을이 소중하겠군. 갑이 을을 잘 대해주겠군.
하지만 이런 생각은 경기도 오산이다. 을의 인정이 필요하다고 해서 갑에게 을이 소중한 것은 아니다.
갑이 갑 되기 위해서는 우선 을이 필요하다. 을이 갑을 갑으로 인정해주지 않는한 갑은 갑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에게 있어 을의 인정이 자율적인지 타율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을이 스스로 갑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갑이 을에게 갑을 인정하도록 강요해 인정을 받으면 그만인 것이다.
사실 어떤 을이 갑을 인정하고 싶어서 인정하나?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을이 되기를 인정할 뿐이다.
 
해겔의 생각에는 함정이 숨어있다.
노무현 정부 홍보수석이었고, 현 노무현 시민학교장이기도 한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백화점 모녀 사건을 두고 날린 트윗은 이러한 생각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조 교수는 백화점 모녀에게 당한 주차요원에게
"하루 일당 못 받을 각오로 당당히 부당함에 맞설 패기도 없는 젊음.
가난할수록 비굴하지 말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 좋겠다."라고  꾸짖어 주셨다는데,
(참고로 이분, 이런 저런 블로그들을 보니 동학농민혁명을 촉발시킨 고부군수 조병갑의 증손녀 되신단다.)
한 마디로 '넌 을이기를 선택했으니 을인거야. 이 찌질아~'라고 말한 것과 다를게 없다. (이거 두 번 죽이신거 맞죠? 맞고요~)
난 갑이니까 이렇게 갑인 거고, 넌 을이니까 그렇게 을인 거야. 부러우면 갑이 되덩가~. 이게 이 사고의 위험성이다.
 
이러한 위험성은 그의 제자였던 마르크스에 의해 까발려진다.
"흑인은 원래부터 흑인이 아니었다. 흑인(노예)은 이 사회를 통해 흑인(노예)이 된다."
한 마디로 내추럴 본 갑이란 없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듯이, 갑으로 태어난 갑은 없다.
갑으로 태어났으니까, 갑이 되기를 결단했으니까 갑이 되는 게 아니란 거다. 갑은 이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에 불과하다.
 
마르크스는 헤겔과 정반대의 입장에서 문제에 접근한다.
을은 을을 을이게끔 만드는 이 사회의 시스템 때문에 을이 된다. 그래 맞다. 갑이 갑인 것은 을이 갑을 갑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을이 정말로 이를 원해서가 아니라, 갑이 시스템을 통해 을을 협박하고 억누르기 때문이다.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갑을 갑으로 인정하는 것뿐이란 의미임과 동시에 이 망할 놈의 시스템부터 고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을에게 '당당히 부당함에 맞설 패기도 없는 젊음'이라고,
'가난할수록 비굴하지 말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질타하면... 어쩌라고?
누군 갑질에 맞설 패기가 없어서, 천성이 갑질에 당하는 걸 좋아하는 변태마조라서 갑질에 당하는 줄 아나?
갑질에 맞서고 싶지만, 갑질에 맞서면 꾹꾹 짓눌러 버리는 이 사회의 시스템 때문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데...
이길 수 없는 적에게 맞서는 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 아니던가?
 
옛 문헌에 '분할해서 통치하라'는 말이 있다. (손자병법은 아닌 듯 한데... 뭐 더라?)
강대국이 약소국을 대할 때, 약소국들이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게 서로 떼어놓고, 떼어놓은 상태에서 하나씩 잡아먹으라는 것이다.
너 혼자 살아. 너 혼자 풀어. 너 혼자 해결해~ 넌 혼자 그것도 못하니?
그러면서도 이 사회의 갑들은 서로 똘똘 뭉쳐 서로의 뒤를 받쳐 준다. 그리고 을이 뭉치지 못하게끔 이리 저리 훼방을 놓는다.
난 아직도 강호동이 1박2일에서 외치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나만 아니면 돼~!"
그래 21세기에도 너만 아니면 되는 거구나...
 
물론 을을 다루는 방법은 다양하다.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어제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있었다.
"모든 손님이 왕은 아니다. 당하기만 하던 을 당당해졌다."
냄새가 나서 봤더니... 역시나 어이가 없다.
내용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커피숍에서 직원에게 상냥하게 말하면 가격을 깍아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단다.
그런데... 그걸로 을이 당당해지나? 커피숍에서 갑질을 해봤자 얼마나 한다고?
그건 갑질이 아니라 진상짓일 뿐이다. 속으로 '병신새끼' 한 번 되뇌이고 잊어버리면 그만인 일이다.
솔직히 손님만 진상인가? 직원도 진상일때 많다. 이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다.
그런데...
땅콩회항에 대한 관심을 백화점 모녀로 옮기면서, 갑과 을의 관계를 이상하게 꼬기 시작했다.
사주와 사원의 관계에서 직원과 손님의 관계로 옮겨지면서
갑질의 근원인 진정한 갑들, 권력, 금력이 어마어마하신 분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돈 몇 백원에 직원과 손님간에 화기애애한 말이 오가는 사회가 부각되었다. 마치 그러면 갑질이 해결되는 것처럼 그려졌다.
갑질의 본질은 땅콩회항처럼 약자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강자의 횡포지, 진상고객들의 싸가지 없는 행동이 아니다.
그런데도 갑은 쏙 빠지고... 니들끼리 돈 몇 푼에 주세요 마세요 하면서 알콩달콩 살면 을이 당당해진단다.
물론 이런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당장 우리 앞에 놓인 거악들이 있는데, 이런 섬세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게 문제의 본질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 언론들... 역시 맏형 조선일보 답게 아주 자연스럽게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켜 버리고 있다.
이런 식의 여론 몰이가 여기저기서 슬금슬금 진행되면, 얼마 있다가 언론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릴 거고... 이게 현실이다.
 
갑질하는 것들을 보면 지독한 개인주의, 이기주의, 보신주의에 쪄들어 있다.
이들도 뭉치긴 뭉치지만 결국 자기 자신에게 유익할 때 뭉친다.
그러니 건수가 있을 때마다 일진회나 하나회 같은 파당을 만들지 않는가?
이들은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면서도 그 내면에는 사회가 어떻게 되든 나만 잘났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바로 이런 생각들이 나라를 팔아먹었고, 지금도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
이완용이 내추럴 본 매국노라서 나라를 팔아먹었나?
꼴을 보아하니 나라가 망할 것 같아, 차라리 망할 거면 숟가락 하나 얹겠다고 한 짓 아니던가?
FTA도 꼴을 보아하니 미국을 거스를 수 없을 것 같아, 될 수 있는대로 자기들 유리한대로 챙길거 챙기면서 한 거 아닌가?
자기 혼자 뭘 할 수 있겠냐며, 자기 자신만 챙기는 것들... 이들의 이기주의가 갑질을 만들어내고, 사회를 병들게 하고 나라를 말아먹지 않던가?
함께 잘 살자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짓밟으면서, 그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으면서,
그저 자기 자신, 자기 가족, 자기 가문의 보신에 올인하고 있지 않은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결해야 한다.
을이 스스로 갑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위의 정윤회 사건처럼 갑이 되어야 갑과 싸울 수 있다.
물론 한 개인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연대를 해야 한다. 함께 똘똘(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니면 설설이라도 뭉쳐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사회의 답답함을 목도하게 된다.
주변에 보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들 참 많다. 법없이 살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개인이다. 시스템 앞에서는 한 없이 미약해질 수밖에 없는 개인들이다.
그런 개인들이 개인으로서 자기 자신만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면 된다고, 거기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거악의 회유가 들어오면 상당수가 눈 한번 질끈 감고 배신한다.
땅콩항공에 회유되었다는 그 승무원도 이런 케이스 아닐까?
악한 놈이라서 악을 저지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은 그저 혼자 살아가다 순간의 유혹에 넘어갈 뿐이다.
 
우리 사회엔 착한 사람들이 참 많다. 하지만 이들은 오직 개인의 선만을 생각하고 있다.
이기적인 갑들이 우리 위에 군림하는데, 이들은 착하게 살기만 바랄 뿐이다.
그보다 좀 나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기적인 갑을 위해 자기 한 몸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내어 놓는다.
우리 모두를 위해 함께 모여 행동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혼자 선하려고만 한다.

그게 잘못인가?
아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한가?
그것 또한 아니다.

사회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시대에, 우리는 아직도 삼국지에 빠져 살아간다. 개인의 승리와 영달에만 주목하고 있다.
혼자 살아가길 고민하는 한, 이 사회는 정글에 머물뿐이다.
힘들어서 나만 생각한다고? 그럼 영원히 너 혼자 살아갈 것이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
'그래, 너 혼자 살아라~. 나약한 개인으로 살아라~. 영원히 옴짝달싹 못한 채 우리에게 잡혀 살아라~.'
.
.
.
처음에 제시한 문제들을 다 못다루었는데, 못 다룬 문제들은 다음에 이어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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