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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아이들. 건축학도를 꿈꾸던 영창이의 이야기입니다
게시물ID : sewol_389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홍조띈곧휴
추천 : 13
조회수 : 51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1/15 00:13:44
건축학도 꿈꾸던 영창에게

친구이자 애인 같은 우리 아들에게.

사랑하는 영창아. 보고 싶네. 너를 떠나보낸 지 벌써 300일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엄마의 시간은 지난해 4월16일에 멈춰 있구나.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네가 수학여행 가지 않으면 안 되냐고 했었지. 그래도 엄마는 학교생활에서 마지막 여행이라며 보냈는데…. 지금은 괜히 보냈다며 후회를 하고 있어.

너는 막상 수학여행 가기 전날에 기뻐서 잠도 못 자고 인터넷으로 제주에서 묵을 숙소 보면서 너무 좋다고 흐뭇해했는데…. 기억해? 네가 수학여행 가기 전에 엄마가 목욕도 시켜주고 손발톱과 수염도 깎아준 거. 그때가 생각나 가슴이 너무 아프다.

영창아, 엄마한테 항상 뽀뽀해주던 아들이 그립고 그립다. 늘 착했고 형편이 어려워도 불만 없이 혼자 헤쳐나가려고 애썼던 듬직한 아들이었는데. 너를 이렇게 떠나보내게 해서 미안해.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도 들리지 않지만 항상 엄마 곁에 영창이가 있다고 믿고 있어.

영창아, 너무 가족들 걱정은 하지 마. 세상은 돌고 돈다고 하잖아. 언젠가는 우리 가족 다 만날 수 있을 거야. 엄마가 갈 때까지 아프지 말고 잘 지내고 있어. 엄마는 평생 잊지 않을 거야. 우린 운명이었잖아.

우리 아들을 사랑하는 엄마가.

김영창군은

단원고 2학년 8반 김영창(17)군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전남 진도에서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엄마, 아빠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시간은 계속 흘러 세월호가 침몰한 지 16일이 지났다. 5월2일 아침, 기다리다 못한 엄마와 아빠는 다시 팽목항으로 향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사과를 놔뒀다. 그리고 아들에게 빨리 나와달라고 말했다. 영창이는 과일 중에 사과를 제일 좋아했다. 사과를 놔두면 영창이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사과가 먹고 싶었을까. 그날 오후 영창이는 희생자 가운데 227번째로 엄마, 아빠의 곁에 돌아왔다.

휴대전화나 가방 등 다른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영창이의 주머니에 든 학생증을 보고 아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창이는 손톱이 망가져 있었다. 엄마, 아빠는 “마지막까지 무엇을 그렇게 긁었을까” 하며 울었다.

영창이는 엄마와 단짝처럼 지냈다. 엄마가 장을 보러 가도, 영화관에 가도 늘 따라다녔다. 엄마, 아빠가 힘들까봐 속 썩이지 않고 말도 잘 들었다. 중학교 1학년인 여동생과는 가끔 티격태격했지만, 늘 져주던 오빠였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싶어했던 영창이는 지금 경기도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잠들어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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