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으로 안정을 찾기 위해 교보문고에 왔다.
하지만 역효과였다.
글쓰기/인문학 코너에서 읽고 싶은 제목의 책을 끝없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앞,뒤,양 옆으로 사방이 책장이다.
그 책장에 꽂힌 책들이 내게 속삭이며 압박을 준다.
"어서 나를 골라. 글 잘 쓰고 싶잖아. 다 알아. 다 너한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내용이라고."
"나야 나, 지식e. 교양 좋아하잖아. 나를 읽으면 더욱 더 교양이 풍부한 사람이 될 수 있어. 화성탐사로봇 '오퍼튜니티'의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지 않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몰라? 날 봐.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라고. 시간도 얼마 안 걸려. 하루면 읽는대."
시간이 없다는 변명도 댈 수가 없다. 그나마 댈 수 있는 변명으로는
'톨스토이도 '글쓰기 교본'같은 책을 읽지는 않았을거야. ...그런데 난 톨스토이가 아니잖아.',
'아직 집에 사놓고 읽지도 않은 책들이 많아. 그것부터 읽고.' 같은 납득할 수 없는 나약한 변명뿐.
괴로운 마음에 고개를 돌리면 그쪽은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코너.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이 나를 더욱 압박한다.
"음? 거기 청년, 자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들어는 봤을테고, 그런데 읽어는 봤나?"
다시 고개를 돌리니 베스트셀러 코너.
"총,균,쇠...20세기의 책이 아직도 서울대 도서관 대출 1위를 차지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나?"
더 이상 버틸수가 없어 서둘러 서점 안의 커피숍으로 피신했다. 도망치는 와중에 '자본론'이 눈에 띈다.
"거기! 20대에 마르크스주의에 빠져보지 않는 사람은 바보라는데! 다 안 읽어도 돼! 서문이라도 읽어봐!"
따뜻한 고구마라떼 한 잔을 마시며 서점쪽을 바라보니 아까처럼
괴롭지가 않다. 속삭임이 사라졌다. 마음이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