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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BGM有) 봄은 오고 있는가?
게시물ID : readers_94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나비야
추천 : 3
조회수 : 23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10/23 04:36:35

     



봄은 오고 있는가?

오늘의 유머 - 오나비야

정신차리자. 계속 되뇌이며 온몸에 전류 흘려보내듯 명령하려해도 금세 힘이 빠진다.

시야는 제 멋대로 흐려져가,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걷고 있는데 내 두 발 앞에 다른 사람의 발이 보인다.

피할 생각도 못하고 그 사람과 부딪히게 된 바람에.

 

“죄송합니다.”

 

흐릿했던 두 눈의 초점이 다시 맞춰지게 됐다.

 

<괜찮아요.>

 

라고 말해야하는데 말할 힘조차 없어 푹 숙인 고개가 더 숙여졌다.

분명 나를 이상한 듯 쳐다봤을 것 같아 조금 부끄럽다.

숙인 채 땅바닥을 보니 회색빛깔의 땅바닥이 주황빛깔로 물들어있었다.

가로등 불이 켜진 것 같다, 최대한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봤다.

하늘은 쥐색빛깔로 물들어있었다.

그리고 난 그것을 빠져들 듯 쳐다봤다.

...

그러다 어깨와 팔에 쓸림이 느껴져 다시 앞을 보니

퇴근하느라 택시를 잡는 사람, 버스를 타는 사람들과 인근 카페와 편의점으로 들어서는 사람, 걷고 뛰는 사람들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이 북적북적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다시 한번 정신을 차려보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나아지질 않는다.

앞을 보면 내 시야는 백색소음화면을 내보내고 있는 TV를 보는 듯 하다.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그냥 꿈이였으면 좋겠다.

어딘가 누워 다시 꿈도 못 꾸는 단잠에 빠지고 싶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잠에서 깨어난 뒤 당장 엄마에게 달려가서

 

<엄마 나 진짜 이상한 꿈꿨어, 대박. 완전 영화야.>

 

전부 말하고 싶다.

 

<너 또 개꿈꿨구나? 원래 꿈은 반대니까 오늘은 좋은 일 있을꺼야. 엄마 좀 있다가 복권사러 나가봐야겠네.>

 

엄마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잠시동안이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며 집에 들어가고 싶단 욕구가 솟구친다.

지금은 많이 늦은 시간이기에 평소 같으면 집에 있었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

내게 집은 너무, 멀고 춥고 무섭다.

...

하지만 어떻게든 집에는 들어가는 방향으로 생각해봐야 될 것 같다.

날씨가 밤이 되니 일교차가 심해져 이제 그렇게 많이 밖에 있진 못 할 것 같으니까.

참... 눈이라도 내리지 않아 다행인 날씨다.

늦은 시간이라도 택시를 타고 가면 될테니 조금만 더 이 좋지 못한 상황에 대해

더 생각해보고 현명한 판단을 내린 후에 들어가야겠다.

오늘 벌어진 그 일을 집에 들어가선 뭐라고 말해야할 지, 아니면 그냥 입다물고 있어야할 지...

지금 쯤 엄마와 아빠에게서 전화가 많이 왔을 것 같다.

제일 친한 친구라고 믿었던 민희의 사촌오빠라는 놈과 오늘, 그 일이 있고나선 핸드폰을 꺼버렸다.

민희 그 년에게 지금 당장 카톡으로 욕 한바가지를 날리고 싶지만 그 놈이 혹시라도

민희하고 같이 있을까 걱정돼 보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난 멍하니 꺼져있는 핸드폰의 액정을 바라보며 다시 걷는다.

액정화면에는 내 얼굴이 비춰지고 있다.

 

“헉.”

 

그 때 액정화면에 갑자기 한 남자의 얼굴이 내 얼굴 뒤에 나타났다.

그 얼굴을 얼핏 본 순간 민희의 사촌오빠가 생각나서, 소스라치게 놀라 경련 비슷한 몸짓까지 해버렸다.

그대로 난 굳어버렸다. 그런데 그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 갈 길을 간다.

엄청나게 웃긴 몸짓을 선보여버렸는데. 그럼에도 웃지 않고 그 남자는 제 갈 길을 가버렸다.

뭔가 차갑고 싸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난 굳어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보니, 내가 서있는 곳이 어느 이름 모를 다리인 걸 알게 됐다.

그 다리에서 왼쪽을 쳐다보면 도로가 있는데, 도로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리 오지마.>

 

하고 말하는 것 같이 난간을 하나 박아놓았다. 도로엔 많은 차들이 지나간다. 승용차, 버스, 택시.

나는 난간을 가만히 바라본다, 쉽게 넘을 수 있을 법한 높이다.

버스가 지나간다. 버스에 탄 한 어른이 다리 위에 홀로 서있는 나를 쳐다본다.

<슝->

내 마음을 읽으려 드는 것 같은 눈빛.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오른쪽 다리 난간에 기대어 다리 밑을 쳐다본다.

강물이 흐르고 있다. 검은빛으로 일렁이고 있다. 가만히 바라본다.

핑글핑글, 조금 어지럽다. 다리 난간에 내 이마를 박는다.

가만히 생각한다. 아직 앞 날 창창한 어린 내가 벌써.

 

<죽어버릴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무슨 죄라도 지은 것 처럼.

생각할 수록 점점 이상하다. 난 죄같은 건 짓지 않았다. 죄라면 내가 아니라 그 놈이 지은거다.

죽어야마땅한 사람은 그 놈인데, 왜 내가 죽으려하는거지?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지금까지 남부럽지 않았던 행복을 그 놈과의 첫 만남 후 모두 잃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순 없었는지, 이런 일을 방지할 순 없었는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생각을 계속 되새김질하게 된다.

...

차가 쌩쌩 지나간다.

검고 깊은 강이 졸졸 흐른다.

...

또 다른 돌이킬 수 없는 생각을 해버릴 것 같다는 예감에 다리 난간에 박고 있던 내 머리를 쳐들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달린다.

 

...

...

...

 

그냥 이렇게 달리다 증발 되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이 든다.

 

...

...

...

 

“헉, 헉, 헉.”

 

얼마나 달린걸까. 평소에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 체력이 별로여서 많이 달리진 못한 것 같지만.

눈을 꼭 감고 뛰었던 것처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달려온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일단 저 다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다리를 벗어나면 나오는 횡단보도가 보인다. 얼마나 긴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하게 무단횡단을 한 것 같다.

그 횡단보도를 지나면 보이는 지구대를 지나고 우체국을 지나고, 무단횡단을 한번 더 했다.

 

“하하”

 

웃음이 터졌다. 지금 이 상황에도 웃음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렇게 횡단보도를 또 지나 지금은 어느 공원으로 들어가는 계단 앞이다.

망설임 없이 공원으로 들어가는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터벅, 터벅.>

계단을 천천히 오르다보니, 예전에 보았던 영화 여우계단이 떠오른다.

이 계단이 영화 속 그 여우계단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우야, 여우야 내 소원을 들어줘.>

 

"하루 전으로 시간을 돌려줘.“

 

개미목소리로 말했다.

계단을 거의 다 올랐을 때, 계단 끝에 마치 나 주우라는 듯이 놓여져있는 라이터 하나를 발견했다.

줍고 켜보니 불이 켜졌다. 화력이 조금 약한 것 같지만 추운 날씨에 불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가만히 켜놓고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앗! 뜨”

 

라이터의 부싯돌이 뜨거워져서 순간 정신을 차렸다. 라이터가 있으니 뭔가에 불을 붙여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문득 담배가 생각난다. 아빠가 피우시는 담배.

어렸을 땐 연기가 구름 같다고 그 연기를 참 좋아했었다. 건강에 안좋은 줄도 모르고.

근데 다들 힘들 때 담배를 피우면 좀 나아진다고 하던데...

나도 담배를 피우면, 마음에 조금 위안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난 담배를 살 수 없는 미성년자인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려는데 바닥에 수많은 담배꽁초가 보인다.

 

내 이성이 말한다.

“뭐야, 더럽게! 저걸 주워서 피려고? 미성년자가 담배피우면 양아치밖에 안돼.”

 

내 감정이 말한다.

“피워버려! 아무도 모르게 피우면 되잖아. 그리고 어차피 오늘 딱 한번만 피울 건데 뭐.”

 

결국 난 내 감정에 취해 제일 멀쩡해보이는 담배꽁초를 5개 주웠다.

이제 피우기만 하면 될 것 같다.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계시는 어르신들이 보기라도 하신다면 분명히 혼날 테니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듯 보이는 한 정자에 가 앉았다.

그리고 아빠처럼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틱, 틱, 화르륵. 담배에 불이 붙어 연기가 난다. 그리고 연기가 내 목구멍에 들어온 순간. 기침이 심하게 난다.

콜록, 콜록.

담배연기가 눈에도 스며들어 눈이 많이 쓰라리다.

 

“더, 더, 더! 고통스러워해라! 건방지게 미성년자가 담배를 피우다니! 양아치 녀석!”

 

담배가 나를 혼내는 듯 연신 하얗게 연기를 토해낸다. 난 얼른 담배를 짓밟아버렸다.

하나의 의문이 생겨버리고 만다.

<힘들 때 왜 담배를 피우는 걸까?>

라는, 덕분에 복잡한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정자 주변이 뿌옇게 변해있다. 이 시간에도 운동하는 어른들이 몇 명 지나간다.

난 얼른 고개를 숙인다.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었다. 머리카락에선 담배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렇다면 옷에도 담배냄새가 배여버렸을텐데, 이런 상태로 집에 들어가기는 무리다. 큰일이다.

어떡하지? 고민하고 있는데. 주변이 조금 아까보다 밝아진 듯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드니.

"...우와."

눈이 온다.

새하얀 눈이, 그것도 굵은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눈이 오지 않았으면 했던 전의 생각과는 달리 막상 눈이 내리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고, 좋다. 너무 아름답다.

그리고, 춥다.

덜덜. 몸이 떨려온다. 입 밖으론 김이 마치 용의 숨결처럼 퍼져나간다.

아무래도 더 이상은 안되겠단 생각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으려 핸드폰의 전원을 킨다.

조금 긴장이 되어, 숨을 고르게 된다.

핸드폰의 전원이 켜지고 어떤 문구 하나가 뜬다.

 

‘부재중 통화 13통‘

 

생각보다는 부재중 통화가 적었다.

약간 실망했지만, 한 편으론 지금 집에 들어가도 덜 혼나지 않을까하는 안도감이 든다.

울엄마 7통.

울아빠 4통.

민준오빠 2통.

메시지 1건.

 

민준오빠.

저 이름을 보니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든다. 메시지도 이 사람이 보낸 게 분명해.

보지말고 핸드폰을 다시

끌까?

볼까?

볼까말까.

봐야겠다.

이제와서 사과의 메시지라도 보낸 걸까?

핸드폰의 메시지함을 눌렀다.

 

민준오빠

 

사랑하니까괜찮은거야

난너사랑해서그런거야

너도나사랑하는거맞지

근데우리이런거말...

 

사과의 메시지는 아닌 것 같다. 꽤 장문인 것 같은데... 어떤 개소리를 적어놓은 건지.

너무 무섭다... 손이 너무 떨린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숨을 골라보고. 다시 문자를 확인했다.

 

민준오빠

 

사랑하니까괜찮은거야

난너사랑해서그런거야

너도나사랑하는거맞지

근데우리이런거말하면

절대안돼가족한테도절

대말하지말고특히민희

한테말하면넌진짜내손

에죽는다오빠가못할짓

을했다는건아니지만솔

직히너도좋았잖아너가

좋아하는모습내가다찍

어놨어그러니까너이제

빼도박도못해알았지이

건오빠혼자서만볼께단

니가아무한테도말하지

않는다면오빠가이거혼

자만보고내가니성폭행

했다뭐했다지랄하는소

리같은거들리면아예내

가더많이많이더소문내

줄테니까그리알고근데

나지금도보고있는데너

정말이쁘게나왔어ㅋㅋ

 

메시지를 확인한 후 난 조용히 정자에 앉았다.

차곡차곡 땅에 쌓이는 함박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제 난 사람들 눈엔 그저 더러운, 몸이나 팔고 다니는 여자애로 보이겠지.

혼자 본다고? 개소리하네. 틀림없이 이제 저 동영상은 음란물사이트에 올라와 다른 창녀들과 같이 더러운 모습으로 저 놈과 같은 생각들만 머릿속에 가득찬 놈들을 즐겁게 해줄꺼야.‘

 

“하하, 하하, 하하하하.”

미친 듯이 쏟아지는 눈을 피해 정자에 앉아있는 나.

미친 듯이 쏟아지는 눈처럼,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웃음은 곧.

 

“흑, 흐흑. 윽.”

 

한참을 미친 듯이 울고, 웃고.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을 때 쯤 정자 밖으로 나가, 차가운 눈을 맞아본다.

굵은 함박눈이 차곡차곡 내 몸에 쌓인다. 금세 내 모습은 새하얀 눈사람처럼 되어버린다.

온몸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그 눈을 집어 입에 넣어본다.

사르륵. 녹으며 사라진다.

 

그래, 내 순수처럼.

 

주머니에서 진동이 온다. 핸드폰을 끄지 않고 있었더니 전화가 온 모양이다.

 

전화 왔습니다

울엄마

 

<엄마 미안. 나 오늘 집에 못 들어 갈 것 같아.>

 

아까 왔던 길을 걸어걸어왔더니, 다시 아까 그 이름도 모르는 다리로 왔다.

 

다리 옆 도로에는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고, 내가 서있는 이 다리 밑에는 강이 흐르고 있고.

하늘에선 굵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참, 추악하고도 고요한 아름다운 밤이구나.>

 

2.

 

눈을 뜨니 온통 까맣게 암흑이여서,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여긴 어디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다리 위에서 내 기억은 끊겼다.

내가 그 다리에서 떨어져 죽은 걸까?

아니면 살아있는 걸까, 지금 꿈 속에서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뭐지? 만약 내가 죽었다면, 여긴 천국?

마음껏 기뻐하려는데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그 순간 온통 까맣던 시야가 희게 변했다.

눈이 많이 부시다. 눈을 힘껏 뜰 수 없어 천천히 눈을 뜨는데,

한 남자가 보인다. 그 남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듯 보인다.

그 남자 뒤엔 한 TV가 놓여져있는데, TV의 모든 방송이 끝나면 백색소음과 함께 나오는 그 화면이 나오고 있다.

몸을 움직여보려 하는데 자꾸 움직여지지 않아 아래를 보니 나는 어떤 의자에 앉아있고, 그 의자에 내 팔다리는 수갑들로 고정되어 있는 상태다.

어느 여자가 내 머리에서 무언가를 떼어낸다. 머리에선 기분 나쁜 액체같은 것의 느낌이 난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그 인상 안좋은 남자가 입을 연다.

 

“그래, 어때? 소감을 듣고 싶구만.”

 

무슨 말이지, 소감을 듣고 싶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는데, 이것 좀 풀어줘요, 그리고 여긴 어디에요?”

 

내가 납치를 당하기라도 한 건가?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죽어서도 납치를 당하나?

아니, 난 분명 여기 이렇게 살아있다. 그런데 살아있으면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고 난 병원에 있을텐데.

 

“절대 풀어줄 수 없지. 네가 지금 어디 있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나.”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니 혹시, 여긴 지옥일 지도? 난 심판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난 교회를 다녀본 적이 있다. 그때 들어본 이야기 중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다고 들었는데, 내가 자살한 이유 때문에 여기서 심판을 받고 있는 걸까?

그렇지만. 내가 지옥에 가게 된다니, 억울한 희생자는 난데 그 새끼가 아니라 내가 왜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단 말인가?

억울한 나는 염라대왕으로 추정되는 저 험상궂은 남자에게 한 마디했다.

 

“전 지옥에 가면 안돼요. 절대 안돼요! 전 여태껏 살면서 지옥에 떨어질 만한 큰 죄 같은 건 지어본 적 전혀 없어요... 부모님한테 불효라도 조금 했다면 모를까. 설마 그것 때문에 제가 지옥에 가는 건가요? 부모님이라면 그 정도 희생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범죄는 제가 아니라 그 남자가 지었잖아요, 아시죠? 그 놈이 절 성폭행했고, 그것 때문에 제가 죽은 거란 말이에요!”

 

“푸하하.”

 

난 억울함에 호소했는데 누군가 비웃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색하며 그 곳을 째려봤다. 아까 내 머리에서 무언가를 떼어내던 그 여자가 서있다.

그리고 다시 최대한 가여운 표정을 지어 염라대왕을 바라보았다.

염라대왕은 여전히 날 쳐다보고 있었는데, 아까보다 눈빛이 조금 더 매서워진 듯 보였다.

잔뜩 인상을 쓰고 있고, 입 주변엔 작은 경련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무서웠다.

염라대왕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가 악마처럼 낄낄대며 범했던 너보다 어려도 한참 어린 16살 희연이의 심정이 되어본 소감이 어떠냐구.”

 

...

...

...

 

모든 기억의 조각들이 짜맞춰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내 바짓가랑이가 젖어드는 느낌이 든다.

희연이, 그래 저건 내 이름이 아니다. 내 사촌동생 민희의 친구 이름이다.

희연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모든 일들.

내가 당한 일이라 생각했던 그 일이 사실은 내가 벌인 일이였던거다.

내 심장은 즉각 내려앉았다.

   

...

...

...

   

이 공간에 흐르는 참을 수 없는 이 정적. 그 가운데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궁금해져 입을 열었다.

 

“전,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다시 정적이 흘렀다.

 

...

...

...

 

“물론 넌 지금 깊이 반성하고 있겠지, 분명히 그럴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런 단계를 거쳐 깨어나도 정신을 못 차리는 싸이코들이 있어.

그런 녀석들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넌 8시간 후면 사형집행에 들어가게 될 꺼야.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의 법은 먼 옛날 주저하고 망설이기만 했던 그 대한민국의 법이 아니기 때문이지.“

 

...

 

그 이야기를 듣고서도 이젠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무념무상이라는 게 이런 걸까?

 

죽음.

내가 죽는다.

나.

민희의 사촌오빠.

민준오빠.

그 놈.

그 새끼.

8시간이라, 너무 길다.

그냥 바로 지금.

사라졌으면.

...

...

...

 

3.

“오늘 대한민국 사상 두 번째 사형집행이 이루어질 것으로...”

뉴스에서 나오고 있듯, 사형에 대해 찬반논란이 끊이질 않았던 우리나라에 사상 두 번째로 사형이 집행되는 날이다.

오늘 있을 사형집행에는 방금 전 ‘회개 프로젝트‘에 참여한 성범죄자 김민준도 포함될 예정이다.

밖에 나와 담배 하나를 물고, 생각에 잠긴다.

‘회개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꼭 담배 하나가 생각이 난다.

범죄자를 회개하게 하고, 죽인다. 늘 달콤쌉싸름하게 다가온다.

 

“반장님, 또 담배 태우셔요?”

 

미소를 띠며 다가오는 저 여자는 아까 ‘회개 프로젝트’에 함께한 민형사다.

 

“그래, 천도복숭아 깎아먹을 때 마다 꼭 이게 생각나.”

 

“하하, 그 말 늘 적응이 안돼요. 천도복숭아라니...”

 

“어쩔 수 없잖아, 천도복숭아가 서 내에서도 기밀사항이니 천도복숭아라고 말하면서 조심조심하는 수 밖에.”

 

“하하하, 너무 웃기다. 근데 왜 천도복숭아인가요? 좀 더 짧은 걸로 줄여 말하면 안되나요?”

 

“줄였으면 좋겠어? 그래, 음... 그럼 천복이라고 하지.”

 

“네! 그게 좋겠네요.”

 

“정부쪽에서 천복을 진행하고 있다는 걸 공개해서 조금이라도 범죄를 막으려는 심산인가봐.”

 

“정말요? 에이, 별로 소용없을 것 같은데? 범죄 저지르는 놈들도 뭐 징역이나 사형 이런걸 모르고 하나요, 알면서도 그러는 애들인데.”

 

“그러니까 내 말이 그거야, 알면서도 그 짓들을 저지르는 싸이코들을 무슨 수로 막냐구.”

 

“그러니까요... 아! 근데 아까 그 놈 꼴이 좀 많이 웃기더라고요. 자기가 지옥에 온 줄 알았나? 반장님이 염라대왕인 줄 알았나봐요, 깔깔. 염라대왕이래... 웃음 참느라 혼났잖아요.”

 

“...”

 

“아, 죄송해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까 희연이가 했었던 독백이 좀 기억에 남아서.”

 

‘추악하고도 고요한 아름다운 밤이구나.’

 

...

...

...

 

“세상 참, 추악하고도 아름다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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