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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도 우리땅~! 쟁반 노래방 보다 뚜껑 열림 ㅡㅡ^
게시물ID : humorstory_948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REMEN™
추천 : 2
조회수 : 66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5/04/16 03:45:41
잃어버린 땅, 대마도 



일본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마도를 ‘한국 부산시 대마도구(區)’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을 사실상 한국인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최모란 기자  ♧ [email protected] 



''독도는 우리땅’
이것은 일본이 독도에 대한 망언을 할 때마다 우리나라 전 국민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는 말 중 하나다. 그리고 가수 정광태씨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정광태씨 노래는 국민들에게 독도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이러한 노래에 취재팀은 딴지를 걸어보고 싶다. 바로 이 노래 가사 중 4절의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일본땅,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부분이다.

대마도는 일본땅? 과연 대마도는 일본 땅일까. 사실상 대마도는 몇 세기 동안이나 일본의 영토로 여겨져 왔다. 그것은 대마도가 한국땅이라는 인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문물 교류지, 대마도

대마도는 현재 일본의 영토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와 더 가까운 섬이다. 부산에서 ‘대마도'가 보이지만 일본에서는 대마도가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보이는 그 섬이 일본열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마냥 신기해 할 수는 없다.

한반도에서 49.5킬로미터, 일본 규슈에서는 132킬로미터나 떨어진 이 섬은 그 위치적 특성만큼이나 한국의 정취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마도는 지리적으로 낚시하기에 매우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주위에 작은 섬들이 매우 많아 수자원이 풍부하고 양식하기에 적합한 섬이다. 대륙과 본토를 잇는 국경의 섬 대마도. 사람들은 이 섬을 스스로 이렇게 일컫는다. 

대마도는 오랫동안 대륙문화를 일본에 전하는 중요한 창구역할을 해왔다. 신라의 사신 박제상의 순국비(殉國碑)와 백제 도래인들이 축성한 금전성(金田城), 기원전 3세기 신라의 일족이 정착하면서 전파시킨 붉은쌀(적미), 옛 이즈하라의 성문이었던 고려문, 한일 우호를 상징하는 조선통신사, 구한말 대 유학자이자 항일운동가였던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 등 한일간의 다난한 역사가 곳곳에 숨어 있다. 


조선통신사 행렬

조선통신사는 일본의 에도 시대 때 조선에서 파견한 5백 여명의 문화사절단이다. 이들은 서울에서 출발하여 부산을 경유해 대마도에 도착했다. 심지어 일본이 쇄국 정책을 쓰고 있을 때도 이러한 문화 교류로 인해 학술과 문화를 활발하게 전파시킬 수 있었다. 

대마도에서 일본으로 학술과 문화 뿐 아니라 불교도 전래되었으며, 유명한 미키와치나 하사미 도자기도 이곳을 통하여 한반도로부터 전해졌다. 그러나 대마도는 한일간의 문화교류지로서의 의미만을 지니고 있는 곳이 아니다. 

대마도는 한국땅

일본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마도를 ‘한국 부산시 대마도구(區)’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을 사실상 한국인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사실 대마도는 독도와 마찬가지로 한국땅이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우리땅이란 인식이 있었다. 아울러 만주와 함께 우리가 돌려 받아야 할 땅이다.

대마도는 원래 신라의 땅이었다. 신라는 백제와 대화, 왜를 왕래하는 해상통로를 차단하여 이 삼국을 분리하고 고립시키기 위하여 대마도로 진출했다. 즉, 대마상도(對馬上島)소재의 소국인 남가라(南加羅)와 록기탄(록己呑)을 점령, 대마도에 교두보를 확보하였는데 이때 대마도를 속국으로 만든 것이다.

대마도는 고려시대 중엽부터 ‘진봉선 무역(進奉船 貿易)체제’하에 고려에 종속되었다. 그리고 고려는 대마도주(對馬島主)에게 ‘대마도 당관(對馬島 當官)’이라는 고려 관직과 ‘만호’라는 고려의 무관직을 주는 등 대마도를 종속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고려말, 대마도인은 왜구로 변질되어 수많은 약탈을 행하였다. 이는 고려말 여?몽 연합군의 대마도 및 일본 정벌과 일본 내부의 사정으로 인한 고려와 대마도의 관계 단절로 발생한 식량 문제와 관련이 있다. 

고려말 이후에도 대마도는 왜구의 소굴(근거지)이 되어 조선 연안 및 중국 남부 해안에서 많은 약탈을 행했다.


대마도가 포함된 한국지도

조선시대에 들어와 왜구 근절 목적으로 수 차례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그 이후 ‘수직왜인(受職倭人-조선 정부로부터 관직을 제수 받은 왜인)’제도와 ‘세견선 무역’등의 체제하에서 다시 대마도를 조선에 종속시켰다. 

16세기 초에 나온 ‘동국여지승람’에 대마도가 우리나라 영토라는 증거가 나와있다. 바로 “옛날에는 우리 계림(鷄林-지금의 경상도 경주)에 속한 땅이었는데 어느 때부터 왜인이 살게 됐는지 알 수 없다. 대마도는 경상도 지도안에 들어 있다”는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대마도도 역시 조선의 속국(屬國)이었다. 태종은 “대마도는 본래 우리나라 땅이나 다만 궁벽하게 막혀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이 살게 내버려두었더니 개 같이 도적질하고 쥐 같이 훔치는 버릇으로 군민을 살해하고 과부가 바다를 보고 탄식하는 일이 해마다 없는 때가 없었다”며 대마도 정벌을 약속했다. 그리고 세종대왕 때에 이르러 대마도는 정벌되었다.

17세기 윤두서의 지도에도 대마도가 우리 영토로 그려진 것을 보면, ‘대마도는 우리땅’이라는 생각이 그때까지 이어져 내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대마도가 우리 나라의 영토라는 기록은 여러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마도하면 이종무 장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세종 원년인 1418년 이종무(李從茂)장군은 대마도를 정벌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이라기보다는 조선의 후미진 변방 같은 ‘쓰시마(대마도)’를 친 것이다.

당시 대마도는 일본의 해적, 왜구의 소굴이었는데 대마도의 해적들은 고려 때부터 자주 우리 나라에 쳐들어와 재산을 빼앗아 가고 백성을 괴롭혔다. 

세종대왕은 왜적의 노략질과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쓰시마 섬을 공격하고 무찌르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명장 이종무에게 쓰시마 섬을 정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419년 이종무는 227척 중 10척을 먼저 쓰시마 섬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자신과 함께 출발했다. 

이종무 장군

이종무는 사납기로 소문난 쓰시마섬 왜인들과 대적해 왜선 129척을 빼앗았다. 그리고 여러 채의 집을 불태우고 왜군을 처형했으며, 왜인에게 잡혀 있던 명나라 사람들을 구해주기도 했다. 이리하여 대마도는 이종무에 의하여 다시 우리나라 땅이 될 수 있었다.

대마도가 일본 땅이 된 이유

그러나 현재 대마도는 일본의 영토로 되어있다. 지형의 80%가 원시림으로 뒤덮인 이 섬에 우리는 관심이 없었고 일본은 또한 그랬다. 전국시대의 일본 사무라이들은 자기들끼리 피를 흘리기에도 바빠 '영토'라는 말을 배울 틈도 없었다.

고려가 쓰시마에 당관(當官)을 두어 이 섬을 관리한 것은 영토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 바위섬은 언제나 곡식이 모자랐고 그로 인해 그곳에 사는 '야만인'들이 왜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종무 장군이 쓰시마를 정벌한 것도 왜구를 소탕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버려진 듯한 대마도는 일본의 전국시대가 끝나기 무섭게 일본 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고려시대 이후 중국 대륙 쪽으로만 관심을 기울였던 우리나라는 대마도 관리에 소홀해졌고, 그 틈을 타서 왜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일본땅이 되었다.

그리고 16세기 말,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의 지리와 실정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임진왜란 침략의 전진기지’로 대마도를 이용했다. 따라서 대마도는 ‘쓰시마’란 일본식 이름으로 바뀌었고, 조선의 영향력이 약화된 반면 일본의 영향력은 강화되었다. 

대마도

결국 임진왜란은 실패로 끝났으나 쓰시마는 일본땅으로 굳혀져 갔다. 그 뒤 제국주의 대열에 나선 일본은 쓰시마를 '당연한 일본땅'으로 굳혔다.

대마도 영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1949년 1월 8일 이승만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마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일본에게 대마도의 반환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건국 직후인 1948년 8월에 대마도 반환 요구를 했으나 일본측에서 의견이 분분하자 9월에 다시 대마도 속령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후에도 거듭 대마도 반환 요구를 했다. 그러나 일본측의 항의와 미국의 맥아더 사령부에 의해 거부되었다. 

현재 대마도는 일본어만 통하는 일본 지배하의 땅이 되었다. 그러나 대마도는 분명 우리땅이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해주는 사실이다. 일본이 독도문제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제시하는 역사적 근거와 비교해 볼 때 우리의 ‘대마도 영유권’주장은 훨씬 시기적 연원도 깊고 자료도 풍부하다. 

한일간의 역사를 볼 때 우리는 반드시 ‘공세(攻勢)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마도 영유권 ’문제를 확대시켜 나갈 중장기적인 전략을 수립, 실행하여 현재의 독도와 같은 외교적인 문제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대마도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와 전국민적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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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 검색에서 퍼 온 글입니다. 최근에 '대마도는 일본땅' 가사 부분이 '대마도는 몰라도'라고 바꼈다던데 확실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 해피투게더 쟁반 노래방에서는 '대마도는 일본땅'이라고 나오던데 상당히 불쾌하덥디다. 역사적인 자료를 보면 대마도 또한 분명 우리땅인데 일본땅이라고 하니까요. 게다가 일본인이 만든 곡도 아니고 한국인이 만든 곡에 대마도는 일본땅이라고 한 것도 기분이 나쁘구요. 그리고 해피투게더 담당 PD는 개념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요새 대마도도 한국땅이었다는 보도가 한참 나오고 있는 판국에 대마도는 일본땅이라니요? 여튼 독도는 우리땅 가사를 '몰라도'라고 바꾸지 말고 대마도도 한국땅이라고 하던지, 아님 하와이는 미국땅처럼 다른 나라 섬으로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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