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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내가 왜 끝을 내야하나요. 아직 행복하고 싶은데.
게시물ID : gomin_13278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래그래
추천 : 5
조회수 : 526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01/22 10:02:38
 
끝은 알고 있었지만 . 이렇게 빨리 올줄은 몰랐네. 
이젠 내려야 하는데. 내려놓을때가 됐는데..
 
오늘이 되서야 모든게 후회가 되네요.
 
27살 남자.  짧은 인생 기록.
 
9살무렵- 우리집은 부자였다..
아버진 사업을 하셨고 엄마는 주부. 그리고 3살많은 누나가 있었다.
내인생에 3분에1정도인 이때가 가장 행복했던 떄이고 불행의 시작이기도 했다
 
10살- 이무렵엔 자주 부부싸움을 하셨었다. 엄마가 집을 나갔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머지않아 빚쟁이들이 찾아왔다.
엄마가 아버지 몰래 사채를 여러군데 쓰셧단다.
빚은 몇십억이었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 가정은 점차 무너저 갔다
 
11살- 엄마가 오지않는다.
어딨는지도 모른다.
그냥 빨리 내 곁으로 왔으면 했다.
우리 가족은 조그만 집으로 이사오게 되었다,
엄마 대신에 누나가 나를 돌봤다.
 
14살- 중학교1학년이다.
우리가족은 엄마가 없는 생활이 어느덧 익숙해졌다.
하지만 엄마가 남기고 간 빚더미는 아직 있었다.
아버진 아직 빚더미랑 싸우고 계신다.
누난. 되게 어른스러워졌다.
난 가족의 어려움도 외면하는 사고뭉치였다.
이떄 가장 기억에 남는건.  돈이 없어 아빠가 가위를 들고 누나머리카락을 잘랐다.
난 거기에 대고 용돈을 요구했었다.
 
17살- 사건사고만 저지르던 나는 공고로 진학하게 되었다.
누난 대기업에 취업을 했다.
아버진 다시 재기를 꿈꾸고 계신다.
16살에 다시 이사를 가면서 나쁜 친구들이랑 어울리지 못했다,
이사를 가고나선 사고를 치지않았다.
아직 빚은 있지만 소소하게 가정의 평화가 찾아왔다.
 
공부를 시작할려했다.
수업진도를 따라갈려해도 도저히 따라갈수가 없었다,
이떄쯤. 나를 괴롭히는 무리가 생겼다.
어느덧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다
 
18살-  누나는 대기업에 취업하면서 기숙사생활을 했다. 한달에 한번정도 집으로 왔던거 같다.
아버진. 점차. 무너지고 계셨다. 그토록 굳은 의지도 돈앞에선 이길수가 없나보다.
나는. 학교가 무서웠다. 어느덧 맞는게 일상이 되었다.
벌을받고있나보다.
이지옥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19살- 누나는 일이 바빠지면서 집에는 거의 오지 못했다.
아버진 다시 재기를 꿈꾸고 계신다, 사업준비에 한창이시다. 잘되면 좋을텐데..
나는 겁쟁이가 되었다.
학교는 나에게 지옥이었고 빨리 졸업을 하고싶었다
쉬는시간마다 얘들을 피해 1,2학년 복도에 처박혀 있곤 했다.
 
20살- 드디어 지옥을 벗어났다.
아버진 사업을 시작하셨고 나는 군대를 가게 되었다.
 
훈련소- 도망치듯 입대를 했다. 군대에서 나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훈련소에서 고등학교때 그토록 괴롭히던 무리중 한녀석을 만났다.
온몸이 굳는다.
무서웠다.
다른게 아니라 . 아직 나에대해 모르는 훈련도 동기들에게
고등학교떄의 나에대해 말을 할까봐. 무서웠다.
 
후반기교육- 드디어 전화를 사용할수있게 되었다.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다.
받지를 않으신다.
누나한테 전화를 했다.
아버지가 자꾸 전화를 안받는다고 하니 말을 얼버무린다.
먼가 이상하다.
 
후반기교육 2주차- 아버지랑 계속 연락이 안된다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누나가 그떄서야 아버지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말을했다.
사업은 잘나가다 땅주인이 재판을 걸어서 망했다고 한다.
탈영하고 싶었다.
아빠가 너무 보고싶었다.
 
이등병 백일휴가- 아빠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
누나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난 집이 없었다.
백일휴가를 피시방과 찜질방에서 보냈다.  휴가가 싫다.
 
일병정기휴가- 갈곳없는 나는 이친구집에서 하루. 저친구집에서 하루. 찜질방에서 하루
휴가가 빨리 가기를 바랬다.
 
상병- 아빠랑 연락이 되었다.
미친듯이 웃고 다녔다.
그토록 싫던 휴가가 빨리 오기만 기다렸다.
 
22살 제대- 전역을 한 나는 갈곳이 없었다.
아빠가 있었지만 연락을 하니 지방에서 아는사람들과 일을 하신다고 하셨다.
난 전역하자마자 숙박가능한 일을 찾았다.
하루 뒤.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다.
뭣도 모르던 나는.
섬에 팔려갔다.
멸치잡이에.
 
섬- 나가고 싶다. 너무 힘들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을 칠수가 없다.
섬에 하루에 한번씩 여객선이 들어온다.
배를 타고 나갈려고 해도 매표소 직원이 어느집에 있는 사람이냐고 확인전화를 해야지만 표를 끊어 준단다.
이섬에 있는 사람들은. 정상이 아닌거 같다.
6개월정도 하면 된다고 한다. 멸치잡이는 한철이다.
이거만 끝내면 집에 갈수 있다 했다.
여긴 또 다른 지옥이다.
 
섬-멸치잡이가 끝날때쯤 꽃게잡이하는 집에서 나를 데려가겠단다.
반강제로 계약이 되었다. 멸치잡이가 끝나는대로 그집으로 가기로.
탈출루트를 세워둬야했다.
 
섬-멸치잡이가 끝났다.
난 끝나자마자 그섬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한테 부탁해서 사선을 타고
그섬을 탈출했다
 
23살- 몇달 놀던 나는 계약직으로 중국에서 일을하게 되었다.
거기서 첫사랑을 만나게 되었다.
너무나 행복했었고 그행복이 계속 되길 바랬다.
 
23살 12월-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한국으로 귀국 하라고했다. 이번에 나가면 중국으로 다신 못온단다.
난 그녀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말을 꺼낼 용기조차 못냈다.
그사실을 숨기다 결국 말했다.
 
그여자가 운다.
그여자가 말했다.
나를 가지고 놀았느냐고.
 
아닌데..그렇지 않는데..눈물만 났다.
 
근데. 갑자기 여자가 임신을 했다고 한다.
아이는 어떡할꺼냐고 묻는다.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일단 다음에 만나자고 말을 하고 호텔로 돌아갔다.
 
 
고민. 고민을 거듭했다.
내가 과연 여자와 아이를 행복하게 지내게 할수 있을까..
결론은 아직 나에겐 모든 준비가 부족했다. 그래서 할수가 없었다.
 
미안했다.
정말 미안했다.
 
24살- 한동안 술로 지냈다,
다시 정신 차리고 공장에 들어갔다.
 
26살-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장을 그만뒀다.
 
 
27살- 아빠는 새엄마가 생겻고, 두분이서 지방에서 잘 지내신다.
누난 재작년에 결혼을 했고 나에겐 조카가 생겼다.
난. 끝을 알지만.
 
살고싶었다. 그 누구보다도.
울아빠 호강시켜드리고 싶었는데..
울 누나.. 엄마같은 누나도. 귀여운 조카도,
돈 벌어서 언젠가는 찾아가고싶은 그사람도..
 더 오래 보고싶은데..
 
난 내 인생이 이렇게 빨리  막을 내릴줄은 몰랐다.
얼마 남지않은 인생.
가족에게도 알리지않을거다.
조용히. 조용히 끝을낼거다.
 
고마웠어요 오유여러분.
 
그동안 잘웃고 갑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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