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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전입에 대한 헌법학자 한상희 교수님의 글(이것도 결국 박정희 때문ㅠ)
게시물ID : sisa_9505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지갑에기적을
추천 : 24
조회수 : 1550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17/06/01 09: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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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전입(2)

기왕에 말 나온 길에, "위장전입"문제 몇 차례에 걸쳐 비판 좀 하기로 한다. 박정희의 망령이 55년을 지난 이 대명천지에 문재인의 발목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발목을 잡아 흔들고 있어 정말 화가 나기 때문이다.

1962년 제정된 주민등록법은 원래 ‘위장’전입-허위신고에 대해서는 3천원이하의 벌금에 처했다가 1968년 이 규정은 2중으로 주민등록한 자가 허위신고를 한 때에만 처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서면서 월남전등으로 정치적 불안을 느낀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긴급조치와 같은 살벌한 통치체제를 만들어낸다. 그 와중에 등장한 것이 “위장전입”을 다시 형사처벌하도록 한 주민등록법의 개정이었다.

실제 1975년 7월 주민등록법의 개정을 통해 강력하게 부활한 위장전입 처벌조항은 곧이어 제정된 민방위기본법과 함께 국가를 완전한 병영체제로 장악하려는 박정희의 의도가 노골화된 입법이었다. 그 처벌수준을 예비군 허위신고와 마찬가지 수준인 3년이하 징역 또는 15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상당히 무거운 벌칙(제21조제2항제1호)으로 만든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거기다 이 주민등록법은 사법경찰이 “간첩의 색출, 범인의 체포등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주민의 신원 또는 거주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때”에는 언제든지 주민등록증의 제시를 요구할 수 있게 하는 조항도 추가하였다. 우리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간첩이 아님-부랑자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제정이유는 간단하다: “안보태세를 강화하기 위하여 주민등록을 거주사실과 일치시키고 민방위대, 예비군 기타 국가의 인력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여 총력전 태세의 기반을 확립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마치 유신헌법이 그러했고, 긴급조치가 그러했듯, 이 주민등록법상의 위장전입에 대한 처벌조항은 간첩잡는다는 명분하에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을 수색하여 잡아들이거나 그들이 도망갈 곳 없이 만드는 것, 그래서 국민들을 철저하게 복종하는 무력한 사람으로 만드는 수단이 되었다.

이 주민등록제도는 그 자체 전대미문의 엄청난 국민감시체제를 구성한다. 지금이야 그냥 주민센터만 가면 간단히 전입신고되지만, 한동안 반장-통장의 확인도장이 있어야 전입과 퇴거신고가 가능했다. 최말단의 행정단위인 반장의 대면 확인이 있어야만 전입하고 또 퇴거할 수 있었던 셈이다. 주민등록을 하고도 오랫동안 반장과 통장의 시선에 드러나지 않는 사람은 주민등록이 말소된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공민권 자체를 상실하고 만다. 또는 주거부정자가 되어서 조그마한 범법사실에도 그냥 유치장에 끌려가고 또 쉽사리 구속되는 일종의 호모 사케르 비슷한 지위에 빠져 버린다.

박정희의 통치가 18년까지 이어지고, 부마사태가 그렇게 치열하였음에도 궁정동에서 시바스 리갈 마시며 큰 소리 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치밀한 국민감시체계가 존재하였고 그것을 권력의 피라미드를 따라 자신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때의 위장전입처벌은 민주인사탄압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부동산투기나 학군위반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냐 운운하는 것은 별로 의미 없다. 그때에도 “자녀들의 학구를 위반키위해, 신분을 감추기위해, 전화를 놓기위해, 부동산매매를 위하는 등 주로 위법,탈법등의 수단으로” 위장전입이 흔해 행해져 왔다는 비판은 있었다.(동아일보, 1975. 6. 19) 지금이랑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목적을 위해 위장전입이 횡행했었다.

하지만 이런 “사회문제”의 핵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학구판정기준이나 신분확인의 방법, 전화가설이나 부동산매매 등등 거의 모든 문제에서 사람을 일정한 지역(주소-보다 정확히는 주민등록지)에 묶어두고 그것을 떠날 경우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그 봉건적 제도에 있다. 마치 농노를 땅에 묶어두고 그 땅을 벗어나면 처벌하였던 중세처럼, 이 주민등록법은 사람을 주민등록지에 붙박아두고 그규제를 벗어나면 중형-형사처벌은 물론, 자녀의 취학, 전화가설, 부동산매매 등 사람구실도 제대로 못 했을뿐 아니라 심지어 주거미상자가 되어 사법경찰관에게 잡혀가는-에 처하는 또 다른 농노제를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이런 제도를 바탕으로 18년을 집권하였다. 그 이후 전두환도 마찬가지였고, 그리고 그 폭력성은 조금씩 희석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우리는 이 주민등록법에 순응하면서 국가의 명령에 알게 모르게 순치되어 간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출처 https://www.facebook.com/sanghie.ha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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