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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카페 시리즈] 아귀 - 1 -
게시물ID : panic_951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냥안경
추천 : 9
조회수 : 1079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7/08/24 2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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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보러가기 : http://todayhumor.com/?panic_95205
 
 
 
 
 
 
 

 
눈을 뜨면 어둠 속에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손가락 끝, 발가락 끝에서부터 끈적하고 기분나쁜 것들이 서서히 몸을 휘감아온다.

그것들은 조금씩 나를 갉아먹기 시작해 결국에는 게걸스럽게 온 몸을 뜯어먹는다.

비명을 지르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살을 뜯고 뼈를 씹는 추접스러운 소리만 귓가에 맴돈다.


어느 순간 어둠 속 저편에 무언가가 보인다.

희끄무레한 무언가는 무표정하게 나를 본다. 그것과 눈이 마주치지만 고개를 돌릴 수도 없다. 

나는 계속 뜯어먹힌다. 잡아먹혀 사라진다.




"............"

영원히 깨지 않을 것만 같던 악몽은 의외로 수업 종 소리에 맥없이 끝났다. 눈을 뜨자 늘 그랬던 것처럼, 방금 잠들었는데도 이틀은 자지 못 한 것 같은 피로가 몰려왔다.

"백상진!"

굵직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국어(우리 반 담임이다.)선생님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잠깐 교무실에서 선생님 좀 보자."


교무실 책상에 마주 앉은 담임의 표정은 좋지 않다.

흔한 불량학생들을 상대할 때의 짜증 섞인 표정이 아니라, 꽤나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너 정말 요즘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네가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건 오늘 처음 본다."

"죄송합니다. 몸이 좀 안 좋아서요..."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 불안한 표정. 하지만 진짜로 나를 걱정해서 나오는 행동은 아니다.

"...입시 준비는 착실히 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집에서 좀 쉬고 내일부터는 수업에 집중하겠습니다."

반성한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그제서야 담임의 표정이 풀렸다.

"그렇지? 어디 다른 이상한 데 빠진 건 아니지? 다른 녀석은 몰라도, 상진이는 착실하게 열심히 해서 서울대 노려 볼 사람이라고 선생님은 믿는다."


내 걱정이 아닌 내 성적에 대한 걱정. 전교 1등을 빼먹지 않는 학생이 혹시나 다른 길로 빠질까, 그래서 자신의 교사로서의 평판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본인의 안위에 대한 걱정.

짜증이 치밀어오른다. 하지만 '물론이죠' 하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집에 가서 오늘은 푹 쉬고, 힘내자."

담임의 격려 아닌 격려를 뒤로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3이 끝나 가는 지금까지 전교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었다.

모의고사에서는 전국 100위권 안에 들기도 했고, 토익이나 HSK도 고득점을 받았다.

그랬던 녀석이 갑자기 쪽지 시험을 절반도 채 맞추지 못하고, 수업 시간에는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선생님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도 공부가 손에 잡히질 않는다.

잠이 들 때마다 찾아오는 똑같은 내용의 악몽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온 몸을 뜯어먹는 꿈.

꿈을 꾸고 일어나면 하루 종일 몸이 무겁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몸살인가 싶어서 병원에 가 봤지만 별 이상이 없다는 얘기와 함께 두통약을 처방해 줄 뿐이었다.

이런 이상한 얘기를 들어 진지하게 들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도 그냥 컨디션이 안 좋은 것이려니 생각했었지만, 벌써 한 달이 다 되도록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처음엔 버틸 만하던 두통과 무력감도 최근 들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수업이 모두 끝났다.

학교를 나오는 길에 복도의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두통약과 함께 삼켰다.

약을 삼키며 창문을 올려다보는데,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일순간이었지만 희끄무레한 물체가 꺼꾸로 된 자세로 창문 밖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다음 순간 그것은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소름이 돋으며 온 몸이 얼어붙었지만, 다음 순간 난 아래층으로 달려내려가고 있었다.


싫어, 싫어, 싫어.

누군가 옥상에서 떨어졌다.


내 앞에서, 또.





하지만 미친 듯 뛰어 내려간 장소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분명 여기로 사람이 떨어졌는데...


거기까지 생각하던 차, 나와 눈이 마주친 그것이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의 관절이 각각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는 것도.

그럼에도 회색빛 눈동자만은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쾌한 공포가 몸을 훑고 지나갔다.

이제는 이상한 환영까지 보이는 모양이었다.

두통약 하나를 더 꺼내 물도 없이 삼켰다. 방금 전 본 것 때문인지 머리가 더욱 강하게 지끈댔다. 

집에 가면 오늘은 진짜로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학교를 나와 버스정류장을 향했다.

그 때,

"너, 어깨에 뭐 붙었다?."

하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네?"

소름이 훅 끼쳐서 질린 표정으로 돌아보자

"농담이야."

라며 말을 걸어온 여자는 실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자는 스물다섯살 정도 된 것 같았다. 대충 넘겨 묶은 포니테일에 파란색 코트를 입고, 알이 큰 검은테 안경을 걸친 여자는, 우리 학교 주변에서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20대 초중반에 호감 가는 외모를 가진 여자가 고등학교 앞에서 실없는 소리를 하며 아무에게나 말을 걸어댄다면, 보통 목적은 한 가지다.

"종교 관심없어요."

"...엑? 아니야! 종교 권유라던가 하려는 게 아니고..."

"그럼요?"

"그게...... 생각해보니까 종교 권유랑 비슷한 느낌일 것 같기도 하고... 저기, 일단 이야기 들어 볼래?"

횡설수설하는 여자를 무시한 채 발을 옮겼다. 가뜩이나 피곤해 죽겠는데, 이 이상 피곤한 사람은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저기, 요즘 이상하게 피곤하고 힘들지 않아?"

다시금 여자가 내게 걸어온 말은 내 발걸음을 멈췄다.

"아니면 악몽을 꾼다거나..."

"...어떻게 알아요?"

나도 모르게 대꾸하자마자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도를 아십니까'방식의 종교 권유는 보통 얼굴이 좋아 보인다거나, 혹은 안 좋아 보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마련이다. 딱히 내 상태를 알고 있다거나 해서 한 말이 아니다.

"아까 어깨에 뭐 붙었다고 한 건 농담이었는데... 너 지금 뭔가에 씌어있어. 이건 진짜야."

여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이비 전도사의 단골 멘트같은 말을 내뱉었다. 지끈거리던 머리가 한층 더 아파오며, 짜증이 훅 치밀어 올랐다.

"자꾸 이상한 소리 하면 경찰에 신고할 거에요."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는 최후통첩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내가 도와 줄 수 있어."

여자가 포기하고 다른 귀 얇은 사람을 찾아갈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의외의 부드러운, 하지만 단호한 어조의 말에 놀라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맑은 칠흑색 눈동자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분명 별다를 것 없는 검은색 눈인데도, 순간 눈동자 속 깊은 곳에서 푸른 빛이 비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사람을 찔끔하게 만드는, 꿰뚫어보는 듯한 눈이었다.

"...진짜로 신고할 거에요. 다른 사람 찾아봐요."

짧게 대꾸한 뒤 도망치듯 학교 앞을 떠났다. 끈질기게도 여자는 '나중에라도 생각나면 여기로 연락해'라며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마지 못 해 명함을 받은 후에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다행히 사이비 여자는 버스까지 쫓아오는 악질은 아니었다.

파란색 배경의 명함에는 의외의 장소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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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혼터'

                                          


점장 유시아 : OOO-OOOO-O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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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카페 홍보를 그딴 식으로 한 거야...?"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이상한 사람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며 습관처럼 인사했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버지랑은 따로 살고 어머니는 휴가를 가서 아직 오지 않았다.

집에 가족이 없으면 신경쓸 게 없어서 좋다. 시리얼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때우고, 쇼파에 털썩 누워서 TV를 켰다.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은 도저히 들지 않는다. 너무 피곤해서 일단 아무데에나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었다.

잠들어 버리면 또 악몽을 꾸겠지만, 지금은 그것조차도 별 상관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TV를 키고 채널을 미처 돌리기도 전에, 이상할 정도로 잠이 쏟아져왔다. 

눈이 감기고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차가운 기운에 눈이 떠졌다.

언제나처럼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 봤지만 나오지 않는 건 마찬가지었다.

또 악몽이다. 이제 손끝 발끝에서부터 기분나쁜 것들이 나를 갉아먹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눈을 뜬 곳은 어둠 속이 아니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 우리 집의 천장이었다.

그 때 무언가, 고개를 움직일 수 없어 시야가 미치지 않는 바깥쪽으로부터 검은색 물체가 구물대며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의 정체를 깨닫자, 나는 격렬한 비명을 질렀다. 아니, 지르려고 했다.

천장 전체를 구물대며 덮고 있는 그것은,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었다.


-아가각. 가각. 다가각.

목 안쪽에서부터 긁어내는 듯한 소름끼치는 탁한 목소리가 들렸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무언가가 벽으로부터 천장으로, 내가 바라보고 있는 바로 위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가아각. 아가각.

그것이 움직일 때마다 긁는 소리가 났다. 

이건 꿈이야. 악몽이야. 깨어나라, 깨어나라, 깨어나!

필사적으로 속으로 되뇌었지만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것은 천천히 기어왔다. 꿈틀거리는 머리카락이 내 시야가 미치는 공간을 전부 가려, 평소에 꾸던 악몽에서의 어둠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 가운데에 있는 그것은,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몸뚱이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그것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뼈와 가죽만 남은 비쩍 마른 몸이었지만, 부패한 사체처럼 배만은 터질 듯 부풀어올라 있었다. 창백한 피부 밑으로 검푸른 핏줄이 비쳤다.

미친 듯이 몸을 움직이려고 애쓰고 마음속으로는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질렀지만 내 몸은 가만히 누운 채 그것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것은 서서히 천장에서 내려왔다. 조금 더 내려오면 코가 맞닿을 것 같은 거리까지 내려와서는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눈을 감고 싶지만 눈꺼풀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이 숨을 내쉴 때마다 역겨운 악취와 함께 냉기가 불어닥쳤다.

그리고, 그것은 갑자기 기괴한 모습으로 웃었다.

아니, 웃었다기보다는 입을 벌렸다. 입이 크게 벌어지면서 입꼬리가 귀까지 말려올라갔다.

-아가가각. 가아각. 아가가각.

쇠톱을 긁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것은 몸을 비틀었다. 눈과 입의 구멍에서 걸쭉한 피가 새어 나와 내 얼굴에 한 방울씩 떨어져내렸다. 핏방울은 끈적거렸고, 얼어붙을 듯 차가웠다.

아------ 가악-------


미칠 것 같은 공포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것은 기괴하게 비틀린 자세로 더욱 활짝 입을 벌렸다. 깡마른 팔이 내 얼굴을 향해 뻗어왔다.

그 때였다.





"나가!!!!!!!!!!!!!!!!!"





천둥 같은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그 순간 거짓말같이 몸이 움직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것의 팔을 뿌리치고 소파에서 굴러 떨어졌다.
 
어떻게 집 밖까지 도망쳤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구르고 부딪혀 생기는 멍자국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나는 그저 미친 듯 뛰어 도망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파트 단지 밖까지 나온 후였다. 거친 숨을 삼키며 얼굴을 더듬었지만, 피는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다.
 
순간 긴장이 풀렸는지,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인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모든 게 다 꿈이었던 걸까?
 
나는 집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럴 리 없었다. 얼굴로 떨어지던 피의 불쾌한 느낌, 깡마르고 차가운 손길, 내가 겪었던 그것은 지금까지 꾸었던 악몽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설사 그것이 꿈이었다고 해도, 결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할 수 없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일으키려고 바지춤을 붙잡자,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손에 잡혔다.
 
 
 
 
 
'너 지금 뭔가에 씌어있어. 이건 진짜야.'
 
 
 
 
 
순간 저녁에 본 여자, 시아라는 사람의 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도와 줄 수 있어.'
 
 
 
 
 
흔들리지 않는 검은 눈동자는, 분명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그런 말을 했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저녁에 받은 카페 명함을 꺼내, 떨리는 손으로 다이얼을 누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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