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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격리실의 얼굴들
게시물ID : panic_951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묻어가자
추천 : 17
조회수 : 162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8/30 0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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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도 코는 없어지지 않았기에 냄새라도 맡을 수 있었다. 그래도 맡을 수 있는 거라곤 우주선의 답답한 공기뿐이었지만 그거라도 좋았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냄새를 맡았다. 냄새를 음미했다. 그러고는 그 옛날 바닷가의 냄새를 떠올리기도 하고 처음 사본 향수의 냄새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기억을 회상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다시 이 눅눅한 우주선의 냄새가 느껴졌다. 지겨운 냄새. 역겨운 냄새. 아니, 그거라도 좋았다. 코라도 남았으니까.
 나는 며칠 전부터 내 눈 앞의 컴퓨터를 조작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컴퓨터는 홍채를 인식해서 마우스를 움직일 수 있었다. 전쟁이나 노동을 해야 할 때는 그렇게 조작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베잔틴 항성계의 7번째 행성으로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게 맞았다. 평소처럼 머리만 분리된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서 제발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바라거나 모니터에 나오는 방송을 시청하거나 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모니터는 일주일 전부터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눈알을 최대한 굴려서 다른 머리통들의 모니터도 그런지 보았으나 내 것만 그렇게 되었다. 나는 모니터가 조작이 되는지 연습해 보았다. 마우스가 움직여졌다. 하지만 정상 작동처럼 원활하지는 않았다. 내가 몇 분이나 집중을 해서 눈동자를 어떻게 움직이면 한 픽셀 정도가 이동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뭐라도 해야만 했다. 이 미친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냄새를 맡거나 눈동자가 볼 수 있는 각도의 풍경을 보거나 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언제나 변하지 않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나는 마우스를 조작했다. 그리고 결국 '육체' 프로그램에 접속할 수 있었다. 몸이었다. '몸' '몸' '몸' 내 몸이다. 그 어떤 아름다운 이성의 몸이라도 자신의 몸보다 탐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당신은 몸이 없어진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내 몸이다. 몸이 생길 것이다. 노동하지 않는 지금에도. 제발. 제발 그러길. 작동이 되길. 나는 실행 버튼을 눌렀다. 곧 밑에서 몸이 올라왔다. 그러고는 뻗어 나온 바늘 같은 커넥터들이 목과 척추에 곧게 연결되었다. 몸이 생겼다. 나는 팔을 움직여 목을 만져보았다. 그 동안 말도 할 수 없었다. 덕분에 이 미친 닭장 같은 곳에서 조용히 지낼 수는 있었다. 격리실 내의 모두가 말을 했다면 그 아비규환을 어떻게 참아낼 수 있었을까. 어쨌든 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악하... 카아... 아아아"
 내 입이 내뱉는 말이었다. 내 귀에 잘 들렸다. 내 팔에 소름이 돋았다. 내 팔이었다.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팔. 나는 움직였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옆에 놓인 머리통들이 모두 눈알을 최대한 내 쪽으로 돌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하였다. 어쩌면 그들에게도 몸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냥 이 답답한 격리실을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100여구의 머리가 저장된 격리실을 벗어나기 위해 문을 열었다. 우주선의 널따란 복도가 보였다. 넓은 길. 넓은 복도. 닭장 같은 공간이 아닌 곳. 나는 서둘러 복도로 나왔다. 뒤를 돌아보았다. 머리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폐가 없어서 한숨의 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꺼내줘. 나에게도 몸을 줘.'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냥 격리실을 잊고 싶었다. 나에게 몸이 생긴 이상, 그곳에는 1초라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문을 닫았다. 머리통들이 울부짖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은 환청이다. 그들은 소리를 낼 수 없으니까. 이제는 복도다. 넓었다. 너무 좋았다. 나는 방방 뛰었다. 손으로 우주선의 벽을 만져도 보고 두피를 쓰다듬어 보기도 하였다. 코를 만져도 보고 엉덩이를 긁어도 보았다. 내 몸이었다. 나는 그냥 좋았다.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나를 잡으러 올지도. 하지만 지금은 알 바 아니다.
 그렇게 나는 몇 시간이고 황홀하게 복도를 뛰어다녔다. 그리고 아차 하면서 무언가 떠올랐다. 몸이 생긴다면 가장 하고 싶었던 것. 다른 사람을 안아보기. 나는 격리실에 들어가서 이성과 키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본래의 격리실로는 돌아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할 만한 머리통들이 몇 있었음에도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무 격리실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머리통들이 나를 주목했다.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내가 여자였더라면 모든 남자에게 키스를 했을 것이다. 나는 남자였으므로 여자들에게 키스를 했다. 처음의 여자는 내가 뭘 하는지 알아채지 못했으므로 그냥 놀라했다. 그러나 짧은 입맞춤이 끝나자 그녀는 더 원하였다. 불쌍한 사람들. 몸이 없는 사람들. 나는 모두에게 키스를 해주었다. 그들은 더욱 원했다. 더. 더. 더욱. 심지어는 남자들마저도 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남자들에게도 해주기로 하였다. 나는 남자들에게는 대체로 볼을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가끔은 볼에 뽀뽀를 해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격리실 내의 모두와 교감을 나누고 나자 200개가 넘는 눈동자들이 격렬하게 나를 원하고 있었다. 혹시 내가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일까. 나는 이제 만족이 되었지만 그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만족할 때까지 쓰다듬어주는 일을, 나는 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결코 만족할 수 없을 테니까. 나는 채워지지 않는 식욕을 북돋아주었던 것이다. 나는 이곳 격리실을 빠져나왔다. 어두침침한 격리실을. 100개의 머리통이 있는 격리실을. 이 우주선에 있는 수천 개 격리실 중에 하나인 격리실을. 또다시 다가올 영원한 지루함에 몸부림칠 격리실을. 이제 어떡하지? 난 뭘 해야 하지? 그들에게 몸을 줄까. 컴퓨터를 조작해서 말이야. 나는 손이 있잖아.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내 몸을 내 멋대로 쓰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복도의 벽에 기대 앉아보았다. 그래, 이게 앉는 느낌이었지.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앉는 거. 숨을 내쉬고 들이마셨다. 잠깐의 평온이었다. 근데 갑자기 방송으로 말소리가 들렸다.
 
 "거기 너. 어떻게 몸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격리실로 돌아가라. 지금 돌아간다면 벌을 주지 않겠다."
 
 나는 생각으로 코웃음을 쳤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모른다. 나 스스로 그곳에 돌아갈 바에는 그냥 자살을 하는 게 나았다. 그래도 곧 기동대가 올 거다. 그러면 나는 붙잡혀서 다시 머리통만 매달린 신세가 될 거다. 아니면 폐기되거나. 일단은 본래 내가 있던 격리실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가는 길은 일단 자유일 테니까. 나는 어슬렁거리며 길을 돌아갔다. 천천히만 걸으면 두 시간은 걸을 수 있을 거다. 나는 절대 격리실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그곳을 향해 걸어가야했다. 숨이 막혔다. 단지 그곳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역행하지 않고 정해진 길을 따라 걸었다. 그래도 자유니까. 그래도 자유니까. 이렇게 생각하니까 숨이 덜 막히는 것 같았다. 
 나는 정해진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전쟁을 하거나 일을 할 때는 도저히 자살하고픈 생각이 들지 않게 마약이나 호르몬을 주입하는 것이 우주선의 통제 방식이었다. 이동을 할 때는 그 약물마저도 돈이 드니까 이런 식으로 머리만 떼서는 반항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 죽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일단은 걷기로 했다. 걷고 싶었다.
 결국 나는 본래의 격리실 앞에 도달했다. 나는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서있었다. 그냥 가만히. 곧 방송이 들렸다.
 
 "들어가라. 귀찮게 하지 말고 들어가."
 나는 그냥 서있었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들어가라."
 나는 많이 불안했다. 그러나 그대로 서있었다.
 "좋아. 그게 네 생각이군."
 
 그러고는 방송이 끝났다. 아마 기동대가 오겠지. 어서 도망가야지. 하지만 어디로. 이 우주선에서 어디로 도망가야 하지. 어디로 뛰든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텐데. 나는 허둥대면서 좌우를 살폈다. 가지 않은 복도가 보였다. 그러고는 그냥 달렸다. 아무도 날 잡으러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이내 뒤에서 뛰쳐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몸을 가지면 이런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걸까. 이미 따라잡혔다. 난 무서워서 돌아볼 수도 없었다. 뒤에서 기동대가 내 머리통을 붙잡았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내 몸과 머리를 분리시켜버렸다. 내 머리통은 기동대의 손에 대롱대롱 붙잡혀 있었다. 나는 여전히 도망가는 내 몸뚱아리를 볼 수 있었다. 몸뚱아리는 복도의 소실점을 향해 쓰러지지도 않고 계속 내달렸다. 허우적대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그들은 나를 벌주었다. 이제는 코도 없고 눈도 없었다. 나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어서 빨리 베잔틴 항성계의 7번째 행성에 도달하기를 바랐다. 어서 빨리 그들이 몸뚱아리와 일거리를 던져주길 바랐다. 깜깜하고 고요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거대한 적막에 압도당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무엇이든. 나는 바닷가의 냄새와 파도 소리를 기억해보았다. 그래. 조금 안정이 되었다. 그래도 뇌는 있으니까. 뇌는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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