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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소설) 헤어진 그녀와의 통화
게시물ID : humorbest_9521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쿠밍
추천 : 28
조회수 : 3221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4/09/27 13:09:09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9/26 23:35:49
"저기 기억나?"

"응?"

헤어진 지 석달 된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다. 
새벽한시. 한창 감수성이 예민해질 시간인지라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저릿했다. 
헤어진 원인은 다들 그렇듯 사소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애는 다툰 뒤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고 나는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했다. 결국 운명은 우리 사이를 갈라 놓았다. 하지만 서로 아직 마음은 남아 있나보다. 그렇게 상처주고 싸웠지만 이렇게 전화통을 붙잡고 있으니. 

"그때 기억나? 오빠랑 같이 워터파크 갔을 때..."

"그때 재미있었지. 너 몸매도 되게 좋았고."

"응. 오빠도 나 물에 빠진거 계속 건져주고 챙겨줘서 너무 좋았어."

"그래. 내가 한 자상함 하지."

벌써 새벽 2시. 이제 슬슬 전화를 끊을 타이밍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 아이는 할 이야기가 많은가보다. 

"오빠 지금 여자친구랑은 잘 지내?"

"응. 아직은 초반이라 알아가는 중이야."

"나랑 통화하는거 아직은 모르지?"

"그렇...지."

"오빠 못됬다. 진짜."

그렇게 말하면서 계속 전화를 거는 너는 뭔데. 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다.

"오빠 그런데 말야."

"미안한데 오빠 내일 출근해야 해서."

"응. 알았어. 오빠. 출근 잘하고..."

"응. 끊을게. 잘자."

"그런데말야 오빠."

막 끊기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스피커음이 나왔다. 약간 지지직 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침에도 전화 하고 싶은데 안되?"

"안돼!"

큰일이다. 흥분해서 큰 소리를 내 버렸다. 당황한 것을 알아채면 안되는데. 하지만 그렇게 내버려 둘 순 없다. 눈치채면... 제발 그런 일은...

"친구로서 전화하는건 괜찮잖아. 왜?"

"우리 프라이버시는 지키자. 저기 미진아. 제발."

"왜 안된다고 생각해? 내가 아침엔 전화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


꿀꺽-

"미진아. 내 말좀 들어봐."

"넌 행복하니?"

"미진아. 미안해."

핸드폰이 차가워진다. 지지직 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분노에 찬 목소리가 마치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하다. 

그래. 이 세상 것이 아니지. 

"왜 날 죽였니? 왜 날 기절시킨 다음에 내 목을 졸랐니?"

"아냐. 아냐. 무슨 소리야. 그럴...리가 없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았니?"

잠시 조용해졌다가 울린 소리는 핸드폰에서 들린 소리가 아니었다. 

정수리쪽에서 마치 울리듯 들리는 목소리. 

핸드폰에서 가까스로 귀를 떼었다.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았다. 외면하고 싶었다. 고개를 돌리면 눈앞에 있을 것 같았다. 

내 손에 목이 졸려 붉푸르게 변했던, 눈과 핏줄이 튀어나오고 거품을 내뿜던 그 얼굴이. 

미진이가 죽은 뒤 열흘정도가 지났을 때.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전화를 했을 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연기를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우린 맞지 않는다고 더이상 만날 수 없다고 헤어짐을 암시했고 결국 결별에 성공했다. 그 애의 기억속엔 크게 싸우고 토라진 것 까지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여자와 사귀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미진이의 전화는 매일 밤 12시부터 2시 반까지였다. 평소에도 전화를 즐겨 하던 시간. 

그래. 모르는 척 하면 될거야. 착한 아이였으니까. 자기가 죽은지도 모르는 멍청한 애니까.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했을 때 전화시간을 줄여야 오빠가 행복해 지겠구나. 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조금만 참으면. 슬슬 통화를 줄여나가다가 연락을 끊으면 될거야. 

너무 쉽게 생각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이 비정상적인 생활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리고 심지어 전에 없던 색다른 좋은 감정까지 피어나고 있던지라 

난 귀신에 대한 대비를 하나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당집 한번 가지 않았고 부적하나 받지 않았다. 생각나는 기도문도 없다. 

천천히. 매우 천천히 뒤에서 손이 어깨를 타고 내 목을 쓰다듬는 것이 느껴진다. 손이 덜덜 떨린다.

"미안해. 내 잘못이야. 하지만 후회하고 있어. 그리고 네가 싫지 않으니까 그동안 전화통화도 계속 했어. 저기 미진아..."

목에 올려진 차가운 손을 치우고 싶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젠 끝이다. 

저절로 한쪽으로 뉘여있던 몸이 돌아간다. 아직 켜진 핸드폰 액정 불빛에 천장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리고 상상했던 미진이의 모습도 보인다. 

그 와중에 예상했던 것 보다는 덜 끔찍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목이 졸린다. 미진이는 웃고 있다. 아니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이 울고 있다. 피눈물이 내 얼굴로. 입으로. 눈으로 떨어진다. 

의식이 흐려진다. 몽롱해진다. 

더 희미해진 그녀의 얼굴이 웬지 예뻐 보였다. 





fin

by. 쿠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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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의 말:
귀신과 사랑에 빠지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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