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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를 몰라서 잘못쓰는 엉터리 국어들
게시물ID : humorbest_952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GKSWKRYDBR
추천 : 33/16
조회수 : 3010회
댓글수 : 1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5/05/30 18:23:03
원본글 작성시간 : 2005/05/27 20:06:43
한자 교육은 국어의 올바른 사용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국어의 70% 이상이 한자어이다. 물론 한자를 학습하지 않아도 언어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가? 한자를 모른채 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다음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절대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추슬러’를 ‘추스려’ 라고 잘못 쓰는 등 국어 맞춤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부기지수다. 그런데 그 국어 맞춤법 좀 틀리고 잘 몰라도 일상생활에는 하등의 지장이 없다.

일상생활에 하등의 지장이 없다고 해서 틀린 맞춤법을 그냥 써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인가? 그렇게 언어 생활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는 국어를 사랑하고 한글은 자랑스런 우리글이라고 외친다. 과연 모순이 아닌가?

본인은 국한혼용이 옳은지 한글전용이 옳은지 까지는 언급하지 않겠다. 굳이 필자의 입장을 말하라면 인터넷이나 일상 생활에서는 한글 전용을 쓰고 정확한 의미 전달이 필수인 학술 논문, 공문서 등에는 국한 혼용이 올바르다고 본다.

한글 전용을 하는 것도 좋으나 현재와 같이 한문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은 올바른 국어 사용의 큰 장애이며 큰 문제를 유발시키고 있다.

여러분들께서도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잘못 쓰는 국어의 예는 무수히 많다. 그 중 몇 개만 예를 들어 보려고 한다.  

“안면 몰수하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이 문장을 잃은 사람들은 백이면 백, 몰수를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몰수 즉 沒收가 맞는지 의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문맥만으로는 도저히 윗 몰수가 沒收가 맞는지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그 몰수를 그 몰수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게 된다. 글의 전체 맥락으로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데 그런 짓을 했다.” 는 전체적인 의미 전달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다행히도 그 몰수가 그 몰수가 맞는 경우이다.

그러나 다음의 경우는 어떤가?

“인사이동이 있었다.”
“원본과 복사본의 이동을 살펴보자.”
“기차편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겠다.”

안면을 몰수하다는 문장에서는 사람들이 그 몰수가 그 몰수가 맞는지 의심이라도 하지만 윗  세 문장에서는 사람들은 의심조차 하지 않고 윗 세 문장의 이동은 모두 移動이라고 생각하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아무리 문맥으로 판단을 해 보려고 해도 세 문장의 이동은 모두 移動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인사이동의 이동은 異動이고 원본과 복사본의 이동은 異同이며 기차편의 이동에서의 이동은 移動이 맞다. 그러면 물체의 이동은 어떨까? 이 경우에는 移動이 맞다.

移動은 공간적으로 위치가 달라진다는 의미가 있고 異動은 꼭 공간이 아닌 다른 어떤 체제가 움직여 달라진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은 한자를 보면 금방 알 수가 있다. 그렇게 때문에 인사이동의 이동을 移動이라고 쓰면 틀리는 것이다. 내가 진급이 된다고 해서 그 이전의 직책과 공간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삼일절을 기념하여’

그런데 이 문장만으로는 글쓴이가 기념을 紀念이라는 의미로 쓴 것인지 記念이라는 의미로 쓴 것인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뒤에 어떤 일을 상기할 근거로 삼을 증거를 남긴다는 의미로는 記念이 맞고 지난 일을 상기하여 기억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는 紀念이 맞다. 

‘따라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의 반포를 기념하여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라는 문장에서는 記念이라고 써야 하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여’

에서는 紀念을 써야 한다. 그럼에도 문맥만으로 판단하는 우리 사람들은 그 어떤 경우라도 기념이라는 말이 나오면 紀念만을 생각하는 실정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형이라는 참형에 처해졌다.’

는 맞는 말일까 틀린 말일까?

참형을 慘刑이라고 쓰면 맞는 말이 되고 斬刑이라고 쓰면 틀린 말이 된다. 사람들은 참형이라고 하면 慘刑만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참형에서 慘刑과 慘刑은 다른 개념이므로 斬刑이라고 쓸 곳을 慘刑이라고 쓰면 안 되는 것이다.

루이 16세는 斬刑을 당한 것이고 허균은 慘刑을 당했다고 써야 하는 것임에도 사람들은 두 경우 모두 慘刑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慘刑은 단지 끔찍한 형벌을 말하는 것으로 꼭 죽이는 것이 아니라도 사람에게 잔인한 형벌이라면 慘刑이고 목을 자르는 것은 斬刑이 된다. 목을 자르면 당연히 죽게 되므로 斬刑은 반드시 죽이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아마 여기 많은 사람들은 慘刑은 반드시 죽이는 것이라야만 慘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라크의 저항 세력에게 목이 잘린 김선일씨와 닉버그는 斬刑을 당했다고 쓰면 바른 표현일까? 그렇지 않다.

斬刑의 형은 벌을 주다는 의미의 한자로 벌로써 목을 자른다는 의미이다. 닉버그나 김선일씨는 죄를 지어 목이 잘린 것이 아니므로 斬刑이 아니라 단순히 목을 자르다는 의미의 斬首가 맞다. 

참형이나 참수의 구별은 그나마 언어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자를 몰라도 문맥으로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참형이나 참수의 구별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의미상으로 보면 당연히 참수에 참형이 포함되므로

‘김선일씨와 닉버그는 斬刑을 당했다.’

고 하면 안되지만 

‘유영철이 斬首를 당했다.’

는 맞는 표현이 되는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폴란드 침략과 일본의 중국 침략으로 시작되었다.’
‘왜구들이 신라 영토를 침략했다.’

안타깝게도 일반인들은 이 두 문장의 침략을 모두 侵略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으나 실상은 첫 문장의 침략은 侵略이고 두 번째 문장의 침략은 侵掠이다.

侵略이나 侵掠이나 동시에 들어있는 침(侵)은 부당하게 친다는 의미이지만 略은 다스리다는 의미이고 掠은 도둑질한다는 의미이므로 侵略과 侵掠의 의미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侵略이라고 쓰면 상대를 부당하게 쳐서 지배하는 것이 되는 것이고 侵掠이라고 쓰면 쳐들어가 노략질을 한 것으로 영토나 지배와는 관계없이 재물을 얻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삼국지에서 조조는 마지막 말로 다음의 유언을 남긴다.

“내가 천하를 종횡한지 30년, 모든 영웅 호걸들을 모두 제압했지만 강동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은 제압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이렇게 바꾸어 보자.

1. 강동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은 정벌하지 못했다.
2. 강동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은 정복하지 못했다.
3. 강동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은 토벌하지 못했다.
4. 강동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은 점령하지 못했다.

어러분께 묻는다. “강동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은 제압하지 못했다.”라는 문장과 윗 4문장은 서로 바꾸어 써도 상관이 없는가? 계속 글을 읽기 전에 반드시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한자를 모르시는 분들이 보기에는 조조의 마지막 말 “강동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은 제압하지 못했다.”라는 말은 위의 4개 문장 모두와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는 것으로 밖에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문맥에만 의존한 국어 어휘 파악을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모두 비슷한 의미이지만 세부적인 의미가 다는 단어들을 문맥만으로 판단한다면 세부적인 의미까지 구분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강동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은 제압하지 못했다.”, “강동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은 정벌하지 못했다.”, “강동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은 정복하지 못했다.”, “강동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은 토벌하지 못했다.”, “강동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은 점령하지 못했다.” 가 모두 맞는 말로 생각이 되는 것이고 실제로도 혼용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인사이동, 물체이동같이 위에서 언급한 동음이의어의 경우는 애초에 문맥으로도 같은 의미의 단어로 착각을 하기 때문에 국어사전을 찾을 생각조차도 못하게 된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토벌, 정벌같은 이런 경우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그 의미가 확실해 질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문맥상 의미가 통하고 의사 소통에 지장이 없으니 국어사전은 찾지도 않는 형편이다. 아니 집에 영어사전은 즐비해도 국어사전은 없는 경우가 부기지수가 아닌가? 

하지만 한자를 학습한 사람은 윗 문장에서 무엇이 호환이 되고 무엇이 호환이 안 되는지를 바로 알 수가 있다.

한자의 의미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듯이 정복(征服)은 쳐서 복종시킨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조조가 유비나 손권의 땅을 자기 영토로 만들고 국민까지도 자기 아래에 두려고 했으므로 정복은 맞는 표현이 된다. 정벌(征伐)은 ‘칠 정’ 과 ‘칠 벌’ 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단순히 친다는 의미이며 정복(征服)에도 포함되는 개념이다.

국어사전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지만(최소한 본인이 가진 사전에는 그렇다. 표준 대 국어사전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 ‘벌할 벌’을 써서 정벌(征罰)이라고 쓰게 되면 죄있는 무리의 죄를 벌하기 위해 친다는 의미가 될 것이고 만일 이런 의미를 강조하고 싶다면 정벌(征伐) 대신 정벌(征罰)이라고 쓰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선 세종 때 있었던 대마도 정벌의 정벌을 征伐이라고 쓰지만 사실은 우리 영토였던 대마도가 배반을 일으켜 우리 조정에서 벌을 주는 의미로 친 것이므로 실상은 征罰이라고 써야만 정확한 의미가 될 것이다.  

점령(占領)은 한자의 의미에서 말 수 있듯이 다른 나라의 영토를 무력으로 빼앗아 자기 나라의 지배 아래 둔다는 의미로 예를 들어 일본 규슈 지방을 점령했다는 것은 그 지방을 일시적으로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기는 했지만 그 땅의 백성들을 완전히 복종시키지 못하여 완전한 자국의 영토라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만일 점령 상태가 지속되어 완전한 자국 영토가 된다면 정복이란 말을 쓸 수 있다. 따라서 조조가 “강동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은 점령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조조는 자신이 원하던 삼국통일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조조가 굳이 점령이라는 말을 쓰고 싶었다면 점령한 뒤 복종시키지 못했다고 해야 옳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이 북한군에게 점령되었다는 표현은 가능해도 정복되었다는 표현은 안되는 것이다. 

반면 토벌(討伐)의 ‘토’ 에는 (쳐서)벌하다는 의미가 있고 ‘벌’은 단순히 친다는 의미이므로 잘못한 상대를 벌하기 위해 치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잘 쓰지 않는 표현이라 틀렸다고 생각할 대마도 토벌을 맞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유비나 손권이 조조에게 잘못한 것이 없으므로 “강동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은 토벌하지 못했다.”는 잘못된 표현이다. 

하지만 조조가 만일 유비와 손권이 역적이기 때문에 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강동 손권과 서촉의 유비만은 토벌하지 못했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어디까지나 조조의 입장에서)

다음은 한자를 학습하지 않음으로써 오는 가장 큰 폐해인 ‘국어사전을 찾아보아도 절름발이 국어 공부밖에 하지 못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려고 한다.
  
아마 한자 학습을 하지 않음으로서 오는 대부분의 폐해는 바로 여기 있다고 하겠다.

이런 예가 아주 적당하다고 하겠다.

수제비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끓는 장국 따위에 조금씩 떼어 넣어 익힌 음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수제비에 대해서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즉 윗 사실만 알고 있다면 수제비라는 것에 대해 모른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수제비는 칼국수를 만들 때 면을 뽑는 것이 힘들어서 반죽에서 면을 만들지 않고 그대로 조금씩 떼어서 익힌 음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수제비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자를 학습하지 않은 사람은 수제비가 무엇인지는 알아도 수제비가 칼국수에서 유래했다는 것까지는 알 수 없는 상황과 아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이 무슨 뜻인지를 알 것이다. 설사 모른다면 사전을 찾아서 행정부의 수반이며 국가를 대표하는 공화국의 원수라는 사실까지는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정작 왜 대통령이라는 말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이 경우 통계, 통일, 통제의 통자가 대통령의 통과 같은 통자라는 것을 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통은 ‘일괄적으로’, ‘하나로 생각하여’의 의미이다. 결국 대통령(大統領)은 크게 생각하여 일괄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명령을 내린다는 의미 때문에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군사독재시절에나 어울리는 단어라는 주장이 나왔었는데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도무지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통계도 마찬가지이다. 통계의 의미는 사전에 의하면 사회현상이나 자연현상에서 일정한 집단에서의 개개의 요소가 갖는 수치의 분포나 그 분포의 특징을 나타내는 수치의 총체이다. 하지만 한자를 아는 사람들은 한단계 더 나아가 통계의 사전적 의미로부터 통계(統計)가 개개의 요소가 갖는 수치의 분포나 그 분포의 특징을 나타내는 수치의 총체를 하나로 통괄하여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통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까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화학은 왜 화학(化學)인가? 화학을 그토록 열심히 공부해도 왜 화학이라는 명칭이 붙었냐고 물어보면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화학은 물질의 특성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이고 물질의 특성 대해 연구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물질의 변화를 수반하므로 변화하는 것을 연구한다는 의미로 화학(化學)이 된 것이다. 솔직하게 화학을 화학실험실의 알코올 램프를 떠올리면서 火學으로 착각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그 단어를 아무리 사전을 찾고 잘 이해하고 있어도 이와 같이 절름발이 국어 공부밖에 하지 못하는 경우는 한자 학습을 하지 않음으로서 오는 대부분의 폐해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국사 교육에서는 더욱 안타깝게 나타난다. 청해진(淸海陣), 사간원(司諫院), 사헌부(司憲府), 대동법(大同法), 비변사(備邊司) 등의 단어를 왜 우리 조상들이 왜 그렇게 이름지었을까 최소한 생각해볼 기회조차도 누리지 못한 채 무작정 암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무작정 암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 한자만 알면 사헌부는 법을 돌보는 부서이기 때문에 법과 관련된 시정 논의, 백관 규찰, 기강과 풍속 정립, 억울한 일 해결을 하는 기관이라는 것을 너무도 쉽게 잃어버리지 않고 외울 수 있으며 조상들이 왜 그렇게 이름지었는지도 깨달을 수 있지 않은가?

대동법은 특산물로 쌀을 내던 것을 전국적으로 모두 쌀로 동일하게 내도록 했기 때문에 크게 같은 법이라고 해서 대동법이 아닌가?   

그럼 또 질문을 하자. 물리는 왜 물리인가? 화장실은 왜 화장실인가? 역할은 왜 역할인가? 여기 이글을 읽는 사람 중에 역할이 ‘일을 분담하다.’ 라는 의미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지 문맥을 통해서 ‘해야 할 일’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쉬운 단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인즉 단어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상태인 것이다.

영어독해를 할 때 모르는 단어를 문맥을 이용해서 파악하듯이 우리는 우리말을 우리 스스로가 영어 독해하듯이 문맥을 이용해서 파악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한자를 공부하면 맞춤법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솔직히’ 가 맞는가? ‘솔찍히’가 맞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솔찍히라고 쓰는 실정이다. ‘역활’ 이 맞는가 ‘역할’ 이 맞는가? ‘솔직히’에서 직이 ‘곧을 직’ 자임을 알고 ‘역할’에서 할이 ‘나눌 할’ 자 임을 안다면 이런 맞춤법은 틀릴 일이 없을 것이다.

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우리가 이미 한자어라고 알고 있는 단어이외에도 순우리말로 알고 있었던 단어들 역시 한자어인 경우가 무수하다. 예를 들면 어차피, 하여튼, 지렁이, 실랑이, 가게, 을씨년스런, 설렁탕, 김치, 동치미, 시금치, 싱싱한, 숭늉, 별안간, 성냥, 난장판, 빈대떡, 낭패, 내숭쟁이, 도무지, 흐지부지, 긴가민가, 도무지, 곤두박질, 나중, 동네 등등이 있다.

예를 들어 지렁이는 땅의 용이라는 의미의 지룡(地龍)이 발음하기 쉽게 ‘지렁’으로 바뀌고 여기에 여기에 접미사 ‘이’가 붙어서 이루어진 단어이다.

일각에서는 지룡이 지렁이가 된 것처럼 지금의 한자어들이 한자로부터 멀어져서 우리말식으로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그럼 Speed를 스피드라고 읽으면 영어고 스패드라고 읽으면 순우리말이 되는가? 게다가 지렁이가 아니라 지룡이라도 읽는 것도 이미 그 자체가 이미 우리말에 맞게 우리식으로 변형된 발음이 아닌가? 

지렁이만을 알고 있는 사람과 한자학습을 통해 지렁이의 어원을 알고 있는 사람. 누가 국어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한자학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우리말에 대한 이런 깊은 이해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기쁨을 포기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중국어나 한국어, 일본어는 한자어를 거의 대부분 그대로 똑같이 공유하고 있다.

예를 들면 ‘명’ 근처만 봐도 명목(名目), 명문(名文), 명문(名門), 명문(明文)의 단어는 한중일 삼국이 모두 동일하다. 이것은 여러분께서 네이버 한중사전 같은데서 당장 우리말인 아무 한자어 단어를 중국어 단어로 검색을 해보시면 당장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중일 삼국의 단어의 발음가 다를 뿐이다. 또한 중국어에서는 최근 들어 약자를 사용함으로써 중국인과 우리나라의 한자로 필담을 하는 것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하지만 간자 역시 정자를 알 때 쉽게 외울 수 있다는 것 도한 자명하지 않은가? 

또한 일본어 같은 경우는 어순도 같고 조사도 있음으로 해서 ない가 ‘~아니다.’  は는 ‘은’, ‘는’ の는 ‘~의’ 등등 약간의 가장 기본적인 일본어 단어만 익히면 단지 한자만으로도 80% 이상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알파벳이 페니키아인의 작품이지만 유럽인의 소중한 공통 문화 유산이고 기독교가 이스라엘의 종교이지만 서양 공통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듯 한글은 매우 과학적이고 자랑스런 우리글이지만 동시에 한자는 동북아시아 공통의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깨달아야 한다.

한자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미 한자를 통해 이루어진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과 우리 국어와 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포기하는 것이자 동시에 동북아시아의 공통된 문화유산을 포기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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