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후보자 때리다 지친 야당, 보이콧하겠다 생떼
기사승인 2017.06.04 09: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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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한마디로 무딘 창과 벼른 방패의 대결이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들의 검증공세는 잽 수준을 넘지 못했고, 그나마 제대로 김 후보자를 타격하지도 못했다는 평가다. 이번 청문회의 수준과 분위기는 이 하나의 문답이 대신 말해준다.
의원 : 하루에 카드 28,000원 꼴로 쓰는 게 정상인가?
김상조 : 대답할까요?
의원 : 하지마세요
김상조 후보자에 대해 언론들이 쏟아낸 의혹들은 엄청났다. 그러나 청문회가 열리고, 그 의혹들은 대부분 의혹 자체를 부풀린 것들로 판명이 났다. 아니 적어도 야당은 그 의혹들을 기정사실로 유인하는 데 실패했다. 야당으로서는 김 후보자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서 무던 애를 썼지만 제풀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기세로서는 자유한국당보다 훨씬 더 날이 선 국민의당조차 청문회 직후에는 딱히 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비토 의견을 내지 못하고 시간을 끈 대목에서 이 청문회의 진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2일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 후보자를 매서운 공격으로 낙마시킬 능력은 없지만 야당들은 결코 김 후보자에게 꽃을 뿌려줄 의도가 전혀 없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벌 저격수라 불리는 김후보자를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을 것이다. 지난 최순실 청문회가 국회에서 열렸을 때 국정농단의 진실보다도 재벌 총수님들의 건강을 더 걱정했던 장면들을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짐작이 된다.
그러나 김상조 죽이기에 나선 야당과 언론의 모습은 결과적으로 자해한 꼴이 되고 말았다. 김 후보자를 낙마시키고자 하는 의지만 번뜩였다. 도대체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지난달 두 번에 걸쳐 방영된 KBS <추적60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오리온과 삼성 회장가의 비자금을 추적한 이번 <추적60분>은 새삼 달라진 세상을 실감케 했다. 세상의 수많은 권력들 중에서 정치권력 하나만 바뀌었을 뿐이라지만 세상이 스스로 더 좋아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투표 한 번 잘했을 뿐인데 이런 선한 효과, 긍정적 영향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어쨌든, 두 주에 걸쳐 방송된 이번 <추적60분>은 방송은 재벌들이 얼마나 비열하고 치졸하게 비자금을 만들고 사용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삼성일가는 자신들이 거주하는 집 수리비를 세금계산서 없이 하라고 요구했고, 공사대금도 백만 원 권 수표다발로 결제를 했다. 당연히 회장 개인돈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수표들 일부는 발행된 지 2년이나 훌쩍 넘긴 것들도 있었다. 이렇게 수상한 돈들이 지켜주는 재벌들의 호화로운 사생활은 아마도 공정위가 제대로 작동하면 더 어려워질 것이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3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이낙연 총리후보자 임명 동의안이 상정되자 퇴장해 로텐더홀 계단에서 '문재인 정부의 자기모순적 인사참사! 국민 앞에 사죄하고 부적격자 지명 즉시 철회하라!'라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
언론들도 작동하는 공정위 하에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남양유업법(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대한 법률)에 한겨레를 포함한 조중동 등 총 6개의 언론사가 해당된다. 공정위가 이 법을 엄정하게 운용한다면 당장 언론사들은 큰 곤란을 겪게 된다. 또한 김후보자가 신문사들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명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음은 과거 인터뷰(미디어오늘)를 통해 확인된 사항이다.
"삼성을 비롯한 대형 광고주들이 언론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불공정거래 여부를 조사하고 제재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대통령이 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한다면 국회일정을 전부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청문회를 통해서 그럴 만한 이유를 충분히 밝히지도 못하고, 설득하지 못한 채 생떼만 쓰고 있는 것이다. 지난 9년이 왜 적폐인지, 인사청문회에 비친 그들 모습만으로도 설명이 되고 있다. 총선까지 3년은 모든 것을 다 잊을 정도로 길지 않다는 것을 야당만 모르는 것 같다.
그렇지만 두 번에 걸친 인사 청문회가 남긴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 청문회에도 그랬지만 특히 이번 김상조 후보자 청문회를 본 많은 사람들은 내심 현재 야당이 원하는 의원내각제에 대한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부패한 것보다 무능한 것이 더 나쁘다는 것은 보수의 흔한 논리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준 그 능력치라면 절대 의원내각제는 반대라는 사람들이 급증한 것은 참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