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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의 기준이 다른 나와 신랑
게시물ID : wedlock_95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언젠가그날
추천 : 3
조회수 : 2011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7/07/31 11: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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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한지 5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저는 남편을 도통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지난 주말을 계기로 저는 왜 남편이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아주 약간은 알겠더군요

 지난 주말, 토요일엔 친정부모님이 일요일엔 시어머님이 다녀가셨어요
 원랜 그럴려던게 아닌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고요 뭔 일이 있던건 아니에요
 양가 다 점심식사 후 귀가하셨는데
 그 짧은 과정에서 참 여러가지를 느꼈더랬죠

 저희 집은 아주 예민합니다 특히 엄마가요
 사소한 거 하나하나 그냥 넘기질 못하고 다 신경쓰고 케어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입니다
 그렇다보니 결정을 잘 못 내립니다
 결정을 내려놓고도 다음날 바꾸고 또 바꾸고.. 나이 드시더니 그게 요즘엔 더 하세요
 저는 엄마의 이런 성격이 피곤해서 저는 엄마랑 오래 붙어있으면 있을수록 정신적으로 시달림을 느끼는데
 문제는 저도 언제부턴가 나이들면 들수록 엄마의 이런 성격을 닮아간다는 점입니다(가장 스스로에게 소름끼치는 순간)

 그리고 군인 집안에서 자랐다보니 예의범절에 굉장히 엄격하시고요
 아빠도 그건 좀 고지식하게 따지는게 있죠
 사소한 거.. 물컵 따를 때 두손으로 받치는 거, 어른에게 받을 땐 무릎 꿇고 받는거라는 둥, 먼저 수저 들거나 자리에 앉으면 안 된다는 둥...
 아주아주 사소한 걸로 트집 잡듯이 그러는데 제가 하도 지랄지랄해서 요즘은 좀 덜 그러십니다

 그런데 남편 집안은 아주 엄청 쿨해요
 그리고 어르신들도 격이 없고 이모님들도 신랑이랑 가끔 말 놓고 수다 떨고 같이 술 마시고 까불거리며 뒹구는 타입...
 저는 처음 결혼하고 방문했는데 너무 문화 충격을 받아서... 거의 영혼이 빠져나간 수준이었죠
 저희 집은.. 명절에도 다들 엄청 차분하고 조용하고... 할아버지 기준으로 자기 자리가 정해져있고... 대화도 잘 없고요
 할아버지께서 으레히 6.25 전쟁부터해서 남북통일까지.. 여러 이야기를 하시면 자식들은 그걸 듣고 끄덕끄덕.. 그러다 뉴스 보면서 현 정세에 대해 얘기하고...
 삼촌들은 신문 펼쳐 읽으시고... 여자들은 뒤편에 따로 앉아서 과일 깎아먹으면서 조용조용 수다 떨고...

 이런 집에서 살다가 명절에 갔더니 할아버지 할머님은 대화의 절반이 육두문자.. 어르신들 이미 술 반쯤 취해서 헤롱거리고
 깔깔거리고 목소리 엄청 크고.. 신랑 사촌들도 왔는데 신랑하고 치고 받고 장난치면서... ㅎㅎ 너무 친해서 친구랑 하듯이 그러더라고요
 저는 익숙치는 않았지만 집안간의 문화 차이고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사실 저희 집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고요-_-;

 어머님이나 신랑이나 이런 환경에서 사셨다보니 본인이 원하는 건 아주 직설적으로 딱 요구하세요
 그리고 결정 질질 끄는거 딱 질색이고 누구 하나 목소리 큰 사람이 이거 하는거다 하면 다들 군말없이 예~ 하고 따라가고요
 그 목소리 큰 사람이 우리 신랑이에요
 어머님도 한 목청 하시는데 신랑이 성인 되고부터는 신랑한테 완전히 기죽어서 하자는대로 하세요

 자, 이런 상황이었는데
 지난 주말은 굉장히 더웠죠
 그리고 저희 부모님은 결정을 잘 못 내리십니다
 저희 신랑은 엄청난 더위에 그날 엄청 짜증이 나 있었고 그래서 당장 어디든 들어가서 식사를 하고 싶었죠
 마침 눈에 저희가 자주 가는 고깃집이 보입니다
 날도 더운데 저기 가서 모처럼 고기를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바로 그리로 가더군요

 그때 상황이 신랑이랑 아빠가 앞서 걷고 엄마랑 제가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깃집으로 막 걸어가길래 제가 어디가는거냐고 물었더니 신랑이 고깃집 하고 손으로 가리키더군요
 아, 하나 빼먹었군요
 저희 친정부모님 특히 엄마는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십니다...

 엄마가 표정이 안 좋더군요
 엄마한테 다른데 가자고 할까? 하니 엄마는
 아냐~ 더운데 사위가 고기 먹고싶은가보다 하고 그냥 따라가시더라고요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죠
 그래서 신랑한테 카톡을 보내려는데
 이미 앞선 두 남자는 고깃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더군요
 엄마 에어컨 바람 피부가 아리다고 싫어하는데 에어컨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아서요
 (추가: 제가 이유 얘기하고 바로 자리 바꿨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태연하게 삼겹살 4인분을 시키고
 엄마는 몇 점 안 드셨고
 아빠는 눈치를 보다가 나라도 잘 먹어야겠다 싶었던지 엄청 드시더군요
 고기 추가하라고 해서 항정살 2인분 추가하고
 여전히 엄만 나물이나 겉절이만 조금씩 드시고 아빠랑 신랑은 대낮부터 쏘맥 말아가며 신나게 드시더군요
 저는 엄마가 신경쓰여 죽겠고요

 고기를 다 먹고 나서서 커피 한잔 잠깐 하다가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가셨고
 저는 너무너무 화가 나는겁니다
 우리 부모님이 우습나? 왜 묻지도 않고 지멋대로 고깃집에 그냥 막 가는거지?
 화가 끓어오르는데 신랑 입장은 뻔해요
 분명 못 정하고 그냥 아무데나 가자고 할거 뻔한데 간만에 내 덕에 고기도 드시고 좋지 않냐고
 (추가: 사실 엄마가 건강이 계속 안 좋은데 의사가 너무 고기 섭취가 부족해서 영양밸런스가 안 맞는다고 고기 좀 드시라고 권했대요. 그래도 잘 안 드세요)
 그렇게 분명하게 자기가 왜 그걸 선택했는지를 자기 기준에서 딱 얘기할겁니다
 제가 단정할 수 있는 이유는 이걸로 초반에 여러번 싸웠었거든요
 그때마다 저렇게 말하더라고요
 자기라도 결정을 딱 내려서 시간을 절약해야지 전부 다 결정 못하고 헤매면 어떡하냐고요

 그때 제가 했던 말은
 우리 부모님을 직장 상사 대하듯이 하라고
 당신 회사에서 상무님하고 식사하는데 상무님 취향 묻지도 않고 당신 먹고싶은데로 모시고 가냐고
 그러니 어떻게 가족과 회사 상사랑 같냐면서 비교급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자긴 장인장모님도 내 부모님이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서요

 그리고 일요일에 시어머님이 오셨는데
 어머님도 고기를 잘 못 드십니다 소화를 잘 못 시키시거든요
 근데 어머님은 아들이 워낙 쎈 걸 아니까 차마 그런 얘길 안 하고 그냥 아무거나 라고 얘길하는거예요
 신랑은 '아무거나'라는 대답을 제일 싫어해요
 왜 자기 뜻 분명하게 말을 안 하냐고 엄청 뭐라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나 초밥 먹고싶다'고 하니까 신랑이 그래? 하더니 근처 초밥집으로 가더군요
 어머님은 내심 고맙다는 싸인을 보냈고요

 어머님도 집으로 돌아가시고
 저는 신랑에게 전후사정을 다 말했어요
 당신의 오판으로 우리 부모님은 먹기 싫은 고기를 억지로 드셨으며
 내가 아니었음 어머님은 당신이 좋아하는 순대국을 드셨을거 아니냐고
 신랑은 아무 말이 없더라고요
 잠깐 삐진 것처럼 행동하더니
 한참 후에서야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던지
 커피 먹고싶어? 사다줄까? 하고 카톡이 오더군요
 저는 됐다고 한동안 당신이랑 대화하고 싶지 않아 라고 답을 했고요

 물론 신랑의 그런 확 밀고 가는 성격 덕에 저도 득을 본 적도 있습니다
 저도 결정을 잘 못 내리는 편이라서요
 그리고 저도 너무 화가 나서 진짜 토요일에는 신랑 꼴도 보기 싫었는데
 생각해보니 저 사람은 그게 되는 집안에서 자라서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더군요
 그리고 신랑 사촌들이 저더러 왜 그렇게 눈치를 보냐고 말했던 것도 그 이유를 알겠고요
 우린 참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정말 다른 사람이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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