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욱...' 토를 할 뻔 했다. '아직 익숙해지려면 멀었나...' 속으로 생각한다. 백번은 넘게 워프를 한 것 같은데 아직 나는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남들은 많으면 하루에 몇 십번씩 하는데 나는 이 망할 울렁증 때문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한다. 이는 필히 어릴 때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워프를 한 번도 안하셨다. 할아버지는 워프를 개발한 과학자이신데... 정작 할아버지께서 절대 워프를 하지 말라고 하셨단다. 나도 아버지께서 절대로 워프를 하지 말라고 수없이 강조 하셨는데 10살 때 아버지 몰래 했다. 어떻게 아셨는지 워프를 한 것을 들켰고 나는 엄청 많이 맞아 죽을뻔 했다. 어린 나를 얼마나 화내시며 때리셨는지 그때 맞아서 상처가 생겼었는데 지금은 소멸됐다. 하지만 그 후로는 워프를 허락해 주셨다. 안전하지 않아서 일까? 그때 왜 그렇게 화를 내셨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 트라우마로 나는 아직도 워프를 하면 토를 하거나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그래서 워프를 꺼려 하지만 오늘처럼 오지의 행성에 와야 할 때면 어쩔 수 없다. ‘여긴 어디지?’ 예상과 다르게 낮선 곳에 워프가 됐다. 오지행성의 워프기계는 구식이라 정말 드물게 오류가 난다고 한다. 이런 구식 기계는 빨리 소멸시키고 새로운 걸로 교체해야지... ‘정말 죽겠네... 드문 일인데 하필 나한테...’ 남들은 다시 워프를 하면 되는 쉬운 일이지만 나한테는 정말 역겨운 일이다.
워프를 했다...124
‘우웩...’ 이번엔 토를 했다. 한참 후에 일어나 주위를 둘러 봤는데 이번에는 정확히 도착했다. 오지 행성의 익숙한 환경. 지구의 시골처럼 건물이 없고 한적한 동네가 눈앞에 보인다. 지금 이곳에 온 이유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만나러 온 것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죽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할아버지 세대는 돈이 많은 사람들만 이 기술의 혜택을 봤는데 할아버지는 워프를 개발하신 과학자여서 소멸되지 않고 아직까지 살아 계신다. 앞으로 계속 살아계시겠지. 두 분이 문 앞에 서 계시는데 나를 마중 나오신 것 같다. 다른 가족들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지만 두 분을 뵈려면 워프를 안탈 수 없다. 여기까지 우주선을 타고 오셨다니 왜 직접 개발한 워프를 안타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낭비하면서 오셨을까? 전에 한번 물어 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나는 이런저런 추측만 할 뿐이다. 뭐 그 덕에 풍요로운 인생을 살았으니 워프울렁증만 제외하면 남부럽지 않은 인생이다. 같이 저녁을 먹는데 아버지께서 대뜸 워프를 얼마나 했냐고 물으셨다. “지금까지 백번은 넘게 한 것 같네요. 워프할 때마다 정말 죽을 것 같아요.” 나는 대답했다. 대답만 들으시고는 침묵하셨다. 어릴 때는 나를 많이 아껴주시고 좋아하셨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나한테 냉대해 지셨다. 아마... 몰래 워프한 것을 들키고 나서 부터인가... 거짓말을 해서 많이 실망한 것인가... 그땐 10살 이었는데... 두 분은 이 곳 행성에서 지내면서 가족들이 오면 맞이해 주시고 이곳을 절 때 떠나지 않는다. 오지 중에서도 정말 오지의 행성이지만 오지라도 초광속 복사 기술로 필요한 물건이나 음식은 마음껏 복제할 수 있다. 하루 밤을 지내고 나는 지구로 연결된 워프 앞에 섰다. 언제나처럼 두 분이 워프 앞까지 마중 나와 주시고 나는 작별 인사를 했다.
“도착하자마자 홀로그램 휴대폰으로 연락 할게요” 나는 말했다. ‘하.. 워프는 정말 싫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고 워프기계 안으로 들어갔다. 워프 기계는 투명해서 안과 밖이 서로 잘 보인다. 밖에는 아직 두 분이 서있는 모습이 보였고 나는 워프기계 안에서 작동을 시키고 출발 버튼을 눌렀다. ‘또 토를 하려나...’ 걱정이 앞선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 나는 아직도 이곳 오지 행성에 있다. ‘고장인가? 이런 적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무슨 일인지 아직도 나는 워프되지 않았다. 보통 3초 정도면 기계가 작동해서 도착지의 워프 기계 안에서 눈을 뜨지만 지금은 아직도 두 분 앞에 서있다. 근데 두 분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워프가 아예 작동을 안 한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게 뭐 대순가? 하지만 두 분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진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표정. 놀란 건지 화난건지 귀신 보듯 쳐다보는 두 분의 표정. 그 표정 때문에 괜히 기분이 이상해진다. 갑자기 두 분이 억지로 워프기계 문을 열려고 한다. 나는 점점 더 불안해 진다. 평소에는 감정적이지 않던 두 분이 이상한 표정으로 기계에 달려들어서 억지로 문을 열려고 하다니. 그 때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찰제복 같은 옷을 입은, 아니 군복 같은 옷은 입은 사람들이 정찰기에서 내려와서 두 분을 워프기에서 떼어놓고 기계를 통째로 옮기려 한다. 두 분은 필사적으로 매달려 방해한다. 나는 지금 고장 난 기계 안에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고 있다. 밖의 상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기계를 통째로 묶어서 정찰기로 옮기고 있고 두 분은 필사적으로 막으면서 소리친다. “도망쳐! 어떻게든 도망쳐! 살아야 돼! 도망쳐!” 나는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아챌 수가 없었는데 그 때 바닥에 떨어진 아버지의 홀로그램 휴대폰에서 내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 할아버지 저는 잘 도착했어요. 워프울렁증 때문에 이제야 정신 차리고 연락하네요. 다음에 또 봬요. 그리고 제 반지를 놓고 온 것 같은데 찾아보시고 제 집으로 복사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