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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11-2)
게시물ID : lovestory_954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1
조회수 : 68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6/27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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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11. 조국을 향해 앞으로(2)



 우가는 적극 부왜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그 누구보다 앞에 설 작정이었다. 그리고 볼일이 생겨 경찰서에 들어갔을 때,  더욱 확고히 마음을 굳혔다. 서장이 직접 영접을 나와 허리를 굽신거릴 때,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사만 봐도 괜히 오금이 저리던 우가였다. 무지렁이도 아닌 자신도 오금이 저리는데 진짜 무지렁이들은 어떻겠는가. 그런데 순사에 비하면 할아버지, 아니 시조 격인 서장이 자신에게 허리를 굽신거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왜놈 서장이 말이다.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가려면 예술가들은 자고로 힘 있는 쪽에 붙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필봉이라고 하여 마치 붓이 칼을 능가하는 힘을 가진 것처럼 깝죽대는 자들은―이자들은 주로 겁도 없이 나라를 되찾겠다고 설치는 자들이었다— 뭘 몰라도 한참을 몰랐다. 붓은 칼에 부역할 때만 힘을 얻는 것이다. 붓으로 충동질을 한다고 해서 제 죽을 줄 모르고 나설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그러나 칼은 얼마나 강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은 모조리 베어 버리면 되는 것이다. 죽지 않으려면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몇 놈이 나서서 나라를 되찾겠다고 아무리 나발을 불어 봤자 말짱 도로아미타불일 뿐이었다. 합방되기도 전부터 쓸개빠진 놈들이 나라를 되찾겠다고 설쳐댔지만 아직도 왜국이 물러가기는커녕 더욱 위세가 당당해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창씨개명의 미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앞장서 이름을 바꾸었다. 자고로 예술가란 선구자 역할을 다해야 된다고 우가는 믿고 있었다. 예술가는 무슨 일이든 일반 대중들보다 한발 앞서나가야 하는 것이다. 문화정책이라는 미명하에 왜제가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광분하기 시작할 때부터 생각해 온 일을 한 것이었다. 마쓰무라 교이찌(松村狂一)로 이름을 바꾼 그는 이름 자에 광(狂)자가 들어간 데 대해서 못마땅해하는 총독부 관리들이나 부왜 예술인들에게 결연히 외쳤다.

 “우리는 천황 폐하와 대일본제국에 그냥 충성해서는 안됩니다. 미친 듯이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봤자 그 지극한 은혜에 100분지 1이나 보은할까 미지수입니다.”

 관리들과 부왜파들은 모두 감동했다. 특히 김광주는 크게 감명을 받은 눈치였다. 김가가 가무라 교로(香村狂郞)로 창씨개명한 데는 우가의 영향이 지대했다고 할 수 있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미친 듯이 부왜행각을 벌여온 덕분에 39년 말에 결성된 김광주를 회장으로 하는 조선문인협회에서 조선인 간사 중 하나로 선출됐다. ‘황군을 위문하는 문예의 밤’을 개최한 더없이 기쁜 날을 그냥 보낼 수 없어 다시 청화정으로 몰려가 예술적으로 한잔했다. 예술적으로 기생의 사타구니에 손을 넣었으며, 예술적으로 거시기를 하면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후에도 우가는 각종 부왜단체에 이름을 올리고, 수십 편의 논설로 영・미타도와 신도(臣道)실천을 역설하고, 징병에 앞장서 왜국이 이땅의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데 제 역할을 다했다. 당연한 결과로 재작년에는 조선문인보국회 시부 회장이 됐고, 징용과 징병・학병을 찬양하는 내용 일색인 왜어시집 ‘팔에 팔을’을 출간해 회장 취임의 변을 웅변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조선문협 사무실은 예상했던 대로 썰렁했다. 심부름하는 귀분이와 박동한만 있었다. 여자라면 닥치는 대로 빠치는 박가가 귀분이에게 수작을 부리는 중이었다.

 “우시인이 웬일이오?”

 말로는 반가운 척하면서도 표정은 아닌 채로 박가가 일어섰다 앉았다.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렸으니 기분이 좋을 턱이 없었다.

 “오랜만에 소식도 좀 들을 겸해서..... 야루탄지 어딘지 하는 이야기 들었소?”

 우가는 어색한 분위기를 모른 척하면서 말을 꺼냈다. 박가가 금세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대충 이야기는 들었소이다만 무슨 다른 소식이 있습니까?”

 “나도 거기까지밖에 모르오.”

 “이러다가 정말 패망하는 것 아닙니까?”

 박가가 귀분이를 재빨리 곁눈질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 대일본제국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기야 하겠소. 그놈들이 그냥 큰소리 한 번 쳐보는 것 아니겠소? 심리전술로 말이오.”

 “그렇게 돼야 할 텐데 말입니다. 총독부에 물어볼 수도 없고...... 물어본다고 바른대로 말해 주지도 않겠지만......”

 우가는 박가가 아니라 오히혀 자신이 들으라는 심정으로 큰소리를 쳤고, 박가는 풀이 죽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총독부에서 아무 연락 없었어?”

 “없었는데요.”

 귀분의 짧은 대답에 우가는 어쩐 일일까 의아했다. 신탁통치가 결정난 상황인데도 너무나 조용했다. 난리를 칠 상황인데도 부왜단체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조용한지 모르겠습니다. 총독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요?”

 “긁어 부스럼이라고 모르고 있는 조센징들에게 선전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이 맞겠구만요.”

 우가는 아는 척 떠들었고, 박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각종 부왜단체를 배후조종하는 총독부는 김가의 말대로 신탁통치 결정사실을 떠들어서 알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괜히 이 땅의 인민들에게 왜국의 패망이 가까웠다고 광고를 할 이유가 없었다.

 “이러지 말고 우리 술이나 한잔 하러 갑시다. 오늘은 우리 동지들 모두 모아서 오래간만에 걸판지게 한잔 합시다.”

 “예, 그러지요.”

 우가의 제안에 박가는 흔쾌한 듯이 동의했다. 그러나 귀분이를 어찌하려고 별러 놓은 김가의 거시기는 식지 않고 있었다.


 경성의 소련영사관으로 마동주가 들어섰다. 골돌린 영사에게 입국 보고를 했다.

 “오느라 고생했소.”

 “처음 뵙겠습니다.”

 소파에 앉아 한참을 소련의 현상황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골돌린이 본론을 꺼냈다.

 “동지의 첫번째 임무는 조선공산당 재건이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와 연락이 닿는 당원이 하나도 없소. 민상희 동지를 찾으시오. 우리는 아직 그의 소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소. 마동지라면 당 재건은 쉬울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소. 동지만 믿겠소.”

 왜국의 패망을 앞두고 당을 재건해야 한다는 데는 마동주도 이의가 없었다. 민상희 없이 조선에서 공산당을 재건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왜경들과 밀정들이 민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지 벌써 몇 년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꼬리도 잡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민을 몇 년만에 국내로 들어와 찾아내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그러나 이번이 기회일 수 있었다. 왜놈들이 찾지 못하는 민을 자신이 찾아낸다면 더욱 믿을 것이고, 소련의 어떤 저의를 파악하는 일이 한결 쉬울 것이었다. 민은 건국연맹에서 노동위원장을 맡고는 있었지만 활동은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먼저 고애숙의 행방을 알아내야 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난 것이 8년쯤 전이었다. 그녀는 경기고녀 독서회의 리더였다. 그때부터 당성을 인정받을 정도로 그녀는 열성적이었다. 마동주는 그 그룹을 지도하다가 공산당원 일제검거를 피해 은신 끝에 국경을 넘어 모스크바로 향했고, 그녀 또한 지하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였기에 당을 떠났을 리가 없다고 믿었다. 민이 국내에 있다면 그녀와 선이 닿아 있을 것 같았다. 어렵사리 그녀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 그녀는 원산 적색노조의 외곽에서 건국연맹의 선전・선동조직을 꾸려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깡충깡충 뛰면서 반가워했다.

 “선생님!”

 손을 마주 잡는 그녀의 눈에 금세 눈물이 맺혔다.

 “고생이 많구나.”

 “선생님도 고생 많이 하셨죠?”

 “나야 남자 아닌가.”

 “아직도 남녀차별을 못 버리셨나요?”

 그녀가 짐짓 화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햇볕 따가운 청명한 가을날, 넓은 운동장에서 통통 튀어다니는 공소리 같은 음성은 여전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달한 그녀의 목소리엔 그런 풍경이 떠오르게 하는 경쾌하고 맑은 울림이 있었다. 

 마동주는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그래, 내가 말을 잘못했구나. 가차없이 비판하는 건 여전하네.”

 “선생님의 의식 중에 그만큼 깊이 남녀차별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아니고 뭐예요?”

 그녀가 다시 곱게 눈을 흘겼다. 그러나 표정은 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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