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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기억을 먹어야 사는 여자
게시물ID : panic_954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샘미
추천 : 12
조회수 : 1847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7/09/13 23:08:40
※이 작품의 배경은 '이규만'감독님의 '허기'라는 단편영화에서 따왔습니다. 혹시 문제가 된다면 알려주세요:D 빠른 자삭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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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 배가 고파서 눈이 떠진 경험이 있는가?

당신이 만약 글을 읽는 지금 살아있다면 그 허기는 나의 허기의 눈꼽만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사자 우리 속에 사자와 단 둘이 남아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느낌.

나의 무기는 끝이 갈려 뭉툭해진 바늘 뿐이다. 물론 길이는 더욱 짧다.

그 속에서 나는 굶주렸고 헐벗었으며 상처입었다.

그래. 나는 그런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니지, 죽어가고 있다. 이것도 아니다.

그냥 죽은 건가?

나의 죽음에 대한 기억은 없다. 이미 오래 전 배고픔에 지쳐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이 벌-벌이라고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이 내게 닥쳤는지도 모르겠다.

그 기억 또한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여기에 오면서부터 생긴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음... 정확히 말하면 '먹을 수 없다.'

시도를 해봤지만 토악질이 나와 곧바로 그만두었다.

처음 이곳에 와서 '기억을 먹는 법'을 터득했을 땐 실로 놀라웠다.

그 맛에도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맛있다'는 단어로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저 세 글자로 그 맛을 표현한다는 것은 기억의 맛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내가 아는 단어로는 설명이 안된다고 하겠다.

앞에 수식어 수억개를 붙인다고 해도 모자르다고 볼 수 있다. 무슨 느낌인지 감이 오는가?

하지만 그렇게 맛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기억이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들 자기의 기억을 아끼려고 배고픔이 극에 달했을 때 먹고, 또다시 극에 달했을 때 먹기 때문이다.

4일동안 굶었는데 맛을 가릴 처지가 될까.

아무튼, 첫 허기에 나는 내 인생 최악의 기억부터 먹었다. 이제는 무슨 일인지 기억조차 안 나지만.

그 뒤로 배가 고플 때마다 내가 가진 나쁜 기억을 차례대로 먹어나갔다.

다음으로 먹은 것은 평범한 기억이었다. 몇날 몇시 어디에서 무엇을 먹었다는 그런 내용의.

역시나 그것들도 무슨 내용인지 기억할 수 없다. 이미 그들은 나의 입에서 씹히고, 식도를 타고 넘어가 위에서 녹고 내장에서 흡수되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먹은 건 나의 생애에 대한 기억이다. 언제 태어나서 언제 무슨일이 있었고 언제 죽은... 나는 내 탄생의 기억을 먹으며 새삼스레 내 뇌의 해마가 가진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 황홀한 맛에, 내 탄생이 나의 죽음에게 잡아먹히는 사실에, 나는 몹시 슬퍼졌다.

그러나 눈물이 고여 흘러내리기 직전 '눈물을 흘리기엔 에너지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울지 않았다.

그렇게 기억을 먹고 먹어가 나에게는 점차 행복한 기억들만 남게 되었다.

위에 적은 것들로 봐서 대충 알겠지만 나는 이미 거의 모든 기억을 먹었다.

0.01초의 작은 파편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나는 내 기억들을 게걸스레 먹어치웠다.

뜨겁게 달궈진 코에서 나오는 콧물과 기억이 사라지는 슬픔의 눈물이 흐르고 몸에서는 땀까지 났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누구라도 일주일 동안 굶은 후 수박을 딱 한 조각만 먹는다면 껍질에 붙은 하얀 부분, 아니 아마 껍질까지 다 먹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제 내게 남은 기억은 단 하나 뿐이다. 한 남자에 대한 기억.

사실 이 글도 그 남자때문에 쓰게 시작했다 하더라도 과언은 아니다.

나는 그 남자를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

웃을 때 뽀얀 초승달처럼 접히는 눈과 수줍게 입을 벌리는 왼쪽 볼의 보조개, 나보다 족히 10cm는 클 것 같은 키와 불에 그을리기라도 한 듯 새까만 머리카락과 눈동자, 그와 대비되는 새하얀 피부... 이게 전부다.

나는 그와 단 한번도 대화한 적이 없다. 눈을 마주친적은 있었을까.

그는 내 대학 동기였고 나는 흔히 말하는 '아싸' 였던 것 같다. 음. 내 생에 대한 기억들을 먹었더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를 쳐다볼 때 마다 내 주위엔 사람이 없었다.

기억 속에서 그를 볼 땐 항상 10발자국은 떨어져서 본 시점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도 모르고 사는 곳은 어딘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등등... 아무것도 모른다.

이름이라도 알았으면 좋으련만, 망할 학교는 왜 같이 듣는 수업마다 전자출결을 한 건지.

수업시간에도 기억나는건 오로지 그의 뒷모습이다. 그가 앞문으로 들어와 어디에 앉을까 고심하며 한 줄씩 뒤로 갈때마다 쿵. 쿵. 심장이 떨어졌다.

그가 맨 뒷줄에 앉은 날이면 하루종일 기분이 우울해지면서 어떻게 해야 쳐다보는걸 들키지 않을까 하는 마음뿐이었다.

내게 남은 마지막 기억이 고작 짝사랑 상대인걸 보면 내 인생에 행복이 어지간히 없었나보다. 아니면 다 먹어버렸든가. 먹었는지 안먹었는지조차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지금까지 뭐라 말이 많았지만 정리하자면 나는 죽었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왔고, 이 세계에선 기억을 먹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나는 대부분의 기억을 먹었고 남은 유일한 기억은 이름도 모르는 짝사랑 대학 동기.

아주 중요한 사실인데, 나는 지금 배가 엄청나게 고프다. '엄청나게'라는 단어의 의미로는 채워지지 않을 만큼 배가 고픈 상태다.

거의 일주일은 넘게 굶은 것 같은데, 무슨 기억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기억을 먹고싶지 않다.

그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건 싫다. 하지만 살아가기위해 무슨 기억이든 먹어야한다.

죽었지만 그 죽음에서 잠시마나 멀어질 수 있는 길은 오직 기억을 씹어 삼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죽었는데 무슨 상관이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다들 겪으면 단 1초라도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자기의 기억을 먹을 것에 난 감히 '그와의 첫 만남'기억을 걸고 말할 수 있다.

일주일동안 물 한방울 마시지 못해 목소리가 나올 턱이 없다. 숨도 겨우 쉬고 있는 수준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언가 더 볼걸, 더 들을걸, 더 느낄걸... 그런다면 와서 먹을 기억이 좀 더 늘었을 텐데.

이렇게 글을 쓰는 와중에도 계속 그에 대한 기억이 생각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사실 그를 보고 싶어 기억을 떠올리면 말라비틀어진 입안인데도 불구하고 군침이 돈다.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라도 된 것처럼.

내게 남은 기억은 오직 그와 관련된 것들 투성이인데, 그와 관련된 기억 중에서 덜 소중한 게 있을까?

(고민한 듯이 볼펜이 마구 그어진 모양)

있을 리가 없다. 아무리 뇌의 주름 한구석 한구석까지 뒤져봤자 나오는건 없다.

(꽤나 긴 공백)

아. 발견했다.

(다음 장. 볼펜으로 마구 그어진 알 수 없는 낙서)

(공백)

(아무거나 휘갈긴 듯한 자국, 손톱자국, 가운데가 갈라진 종이)






(머리카락 부분이 검은 펜으로 색칠되어 있는 남자로 추정되는 그림)
출처 제 뇌입니당... 얾 얼마만에 쓰는 건지 모르겠네요! 사실 허점투성이 글은 맞습니다...헤헤 최소한의 검토도 안거치고 막 떠오르는 대로 쓴 글이라서...
너무 날 선 지적은 하지말아주세요..... 순두부멘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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