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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해 6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근무할 당시 유엔 사무차장이 해당 기구에 관한 비판적인 내용의 내부 보고서를 발표하자, 곧바로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해당 보고서는 강 후보자가 사무차장보로 근무한 OCHA 조직에 관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전면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강 후보자의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자질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스티브 오브라이언 유엔 사무차장은 지난 2015년 7월 취임한 이후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이 최선의 조직과 자원을 가지고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등 효율성에 관한 '기능 검토(functional review)' 보고서를 세계적인 컨설팅 기관에 의뢰했다. 이 '기능 검토'에 관한 예비(preliminary) 보고서가 2016년 6월 9일 발표되어, 유엔 내부에서 회람되었다.
기자가 입수해 분석한 해당 예비 보고서는 OCHA 기구 조직에 관해 "관리 모델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고, 중요한 구성이나 상호 소통이 부족했다"면서 "대체로 조직을 위해 명확한 어젠더를 이끌 통합적인 관리 시스템이 없었다"라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또 "상위 관리 레벨에서 행한 의사 결정도 원칙성이 부족했고, 리더십 팀은 함께 작동하지 않았으며, 특정 관리자는 모든 행동에서 경직된(entrenched) 시각을 갖고 있었다"며 "(조직) 상호 간의 신뢰가 부족했으며, 지도력에서 뿌리 박힌 극단화와 모든 것이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라는 생각(sense)을 하고 있었다"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보고서는 특히, "모든 조직 의사 결정 과정에 투명성이 부족했으며, 상위 관리자들은 지속적으로 관리 모델에 부합하지 못했다"며 "몇 부서에서는 조직 내부 간의 세력 다툼을 통해 왕궁(kingdom building)을 건설하고, 내부자 간 싸움을 통해 '충성도(Loyalty)'가 종종 승진의 주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라고 혹평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유엔이 각국에 원조 등 지원 사업을 총괄하는 부서로 그동안 기구의 비효율성에 관해 논란이 많았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이 진행한 해당 보고서에서도 OCHA는 38개의 유사한 비영리기구 중 조직 문화 부문에서 최하위 성적을 기록했다. 이에 해당 보고서는 OCHA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운영과 재정, 인사관리 그리고 조직문화 부문 등 모든 부분에서 전면적인 개혁을 요구한 것이다.
지난 2013년 3월 OCHA 사무차장보로 취임한 강경화 후보자는 OCHA 기구의 조직 등 업무를 총괄하는 핵심 주요 인사다. 특히, 해당 보고서는 강 후보자가 취임한 2013년부터 OCHA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으로 강 후보자도 지적된 문제에 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이 예비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2016년 7월 29일에 공식 발표된 최종 보고서(final report)에도 그대로 담긴 것으로 밝혀졌다.
강 후보자, 보고서 유엔 내부 회람 사흘 뒤 바로 사표 제출
청와대 관계자, "후보자 개별적인 사항에 관한 입장 적절치 않아"
강 후보자는 이 예비 보고서가 발표된 사흘 후인 2016년 6월 13일, OCHA 직원들에게 사표를 제출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 강 후보자는 해당 이메일에서 "많은 슬픔과 또한 깊은 고마움과 성취의 감정으로 나는 다가오는 달(months)에 나의 직책을 떠나기로 한 결정을 공유하고자 한다"면서 "나의 결정은 (유엔)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에게도 전달되었고, 두 사람은 이러한 결정을 존경스럽게 받아들였다"라고 자신이 사직서를 제출한 사실을 공지했다.
강 후보자는 또 그동안의 소회를 피력한 다음 "후임자를 영입하는 데는 몇 달이 걸리고 사무차장과 협의를 하고 있어 정확한 사임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마지막 날까지 여러분과 함께 최선의 헌신을 다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강 후보자는 이미 지난해 6월 사표를 낸 상태에서 후임자를 물색하기 위한 기간 동안 OCHA 사무차장보로 활동한 것으로 밝혀진 셈이다.
이후 강 후보자는 지난해 10월 14일, 새로 선출된 안토니우 구테호스 유엔 사무총장 당선인의 지명으로 유엔 사무 인수팀장을 맡았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강 후보자가 반 전 총장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사무총장 이양 업무를 다시 맡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 후보자도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반기문 총장하에서 활동한 게 밑거름이 돼서 구테흐스 사무총장 당선인의 인수팀을 맡게 됐다"라고 밝혔다. "(사전에) 이런 일을 맡을 것으로 예상했나"는 질문에도 "전혀 아니다"라며 "저는 10월 말로 유엔의 업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려고 귀국 준비를 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앞서 6월에 사표를 제출할 당시 후임자 영입에 몇 달이 걸린다고 밝힌 내용과 일치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러한 내용에 관해 3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강 후보자 지명 시기에 사직서 제출 등 이러한 사실을 알았느냐"의 질문에 "청와대에서는 최선을 다해 각 후보자를 지명한 만큼, 각 후보자의 개별적인 상황에 관해 청와대 관계자가 개별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가적인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다면, 국회 청문회 등을 통해 국민들께서 검증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강 후보자 측에 수차례 질의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인사청문회 준비 등으로 바빠 제때 답변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말만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