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고 닳아서』
궤적이 점차 흩어져간다
고단했던 발자취에 그어진 균열이
아슬아슬 줄을 타던 사내의 발등에
한 움큼의 애잔한까지 올려놓는다
다시금 돌이켜 본다
모난 자갈이 숱하게 깔리고
성나게 굽이져 고독한 비탈길로의
첫 걸음 그 순간을
사내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파고든다
구름 끝에 걸린 시계추마냥 똑딱이며
어둡고 습한 그 비탈로 조금씩
그렇게 조금씩 가라앉는다
큰맘 먹고 떠나본다
먼 길 달려 사무친 영혼들이 찾는 그곳으로
고운 가루 위에 선 희미한 눈에
흑빛으로 침몰하는 황홀한 불덩이가 비치자
사내의 깊은 곳 가련한 촛불도 시들어버렸다
그리곤 다시 일어섰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있고
오늘과 같은 내일이 다가오는
닳고 닳은 비탈길 위에서
--------------------------------------------
작년에 써보았던 습작입니다.
시험기간에 도서관에서 밤을 샐 때 '과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진정 내가 원했던 것인가' 라는 회의감이 들더라구요.
그 회의감에 사무쳐 썼던 시입니다.
참.. 제가 썼던 시들을 유심히 보면 항상 휘황찬란한 수식어구들을 쓰려고 노력했더라구요 ㅋ
이 점도 고쳐야 할텐데 쉽지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