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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과 권력
게시물ID : phil_107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고맨
추천 : 12
조회수 : 922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5/02/04 15:17:35
인간은 성형수술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몸, 특히 외모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게 되었다.
생긴대로 살아야 하는 삶에서 (돈만 있다면) 스스로 원하는 눈, 코, 입, 몸매를 가질 수 있는 삶으로 변화된 것이다.
하지만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이 자기 자신에 대한 주체성과 정체성까지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맘만 먹으면 성형수술을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눈, 코, 입, 몸매는 사실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것이다.
당장 조선시대의 미인과 현대의 미인을 비교해 보라. 미의 기준 자체가 다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더 이상 앵두같은 입술을 원하지 않지만, 오똑한 콧날과 잘록한 허리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이 여자이든 남자이든) 아직도 서구형 미인을 원한다.

왜?
나는 내가 아니다라는 라캉의 말처럼, 당신이 원해서도 아니고, 우리가 원해서도 아니다.
누군가 당신이, 우리가 그것을 원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은 인간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지만,
정작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결정하는 것은 과학기술이 아닌 대중심리다.
그리고 대중심리를 결정하는 것은 대중심리 너머에서 대중심리를 조종하는 '권력'이다.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은 '디드로 효과'에서 찾을 수 있다.
어느날 디드로는 스카프를 선물받는다. 그는 선물받은 스카프에 즐거워하다 자신의 카페트와 스카프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제 스카프와 카페트의 부조화가 꺼림직해진 디드로는 며칠을 고민하다 스카프에 맞는 신상 카페트를 구입한다.
그리고 그렇게 카페트에 맞는 의자, 의자에 맞는 탁자, 탁자에 맞는 옷장을 구입한다.
그재서야 디드로는 깨닫는다.
'어? 이게 아닌데? 뭔가 잘못된 거 같아'
 
권력은 당신에게 직접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당신을 변화시킬 단 하나의 요인만 건드릴 뿐이다.
물론 무식하면 무식할 수록 직접적으로 작동한다.  박정희나 전두환 시대를 떠올려 보라. 푸코가 보여준 중세의 고문과 뭐가 다른가?
사실 우리를 옳아매는 이 권력은 우리 정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그랬음 좋겠지만 이들의 권력은 이들을 지배하는 천조국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실 그래서, 이 권력이 무섭고 여기서 빠져 나가기가 어렵다.
눈에 보이는 권력은 무식한데, 그래서 권력에 콧방귀를 뀌는데,
알고 보면 이 권력 뒤에 훨씬 더 정교한 권력이, 보이지도 않는 권력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계몽주의에 입각해 '백과사전'편찬에 앞장섰던 디드로조차 자기 자신도 모르게 당하지 않았던가?
그가 권력의 작동방식을 볼 수 없었던 것은 그 기재가 선물로 받은 스카프였기 때문이다.
겨우 스카프 하나가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변화시키리라 어떻게 짐작했겠는가?
하지만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우리가 가진 코딱지만한 집이, 껌딱지만한 자동차가, 후줄그래한 옷과 가방이 우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조그마한 것들로 인해 우리는 점차 변해간다.
조금이라도 더 먹고 살기 위해, 남들 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자본의 무한경쟁체제에 슬금슬금 우리 자신의 몸을 담그게 된다.
'나? 날 봐. 이것밖에 안돼. 그래도 남들 사는 아파트, 남들 사는 자동차 정도는 끌고 다녀야 하지 않겠어?'
'나 하나 신경 안 쓴다고 뭐 어때? 나 하나 살기도 벅차. 내가 해봤자 뭘 하는데?'
결국 그렇게 우리는 자기 자신의 삶에, 혼자만의 이기적인 삶에 충실해진다. 그리고 작으나마 성공할 수록 그 삶에 만족하게 된다.
그것이 이미 누군가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우린 성형수술을 하듯이, 돈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 돈으로 인해 (그 돈을 통제하는 권력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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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4 15:55:42추천 3
유행...
나이키를 샀다.
이제 남들과 다르지 않다.
댓글 0개 ▲
2015-02-04 16:05:58추천 6/3
1. 저도 나이키를 샀습니다. 너무 너무 사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사면서도, 사고나서도 부끄러웠습니다. 그 나이키가 동남아시아의 아동노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내가 나이키를 하나 산 만큼 동남아시아의 아동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거네 뭐네 식의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할 수 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저 담부턴 결코 나이키를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뿐입니다.
댓글 0개 ▲
2015-02-04 18:50:37추천 10
남을 흘어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댓글 0개 ▲
2015-02-06 00:05:35추천 17
저도 많은 착오속에서 남들을 의식하지 않기 시작하면서
비주류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죠.
흔히 말하는 매니아들은 약간 덜떨어진 거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사실 매니아들은 오히려 비주류 속에서 더 값진 것들을 찾아내고 있었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죠.

남을 의식하면서 어거지로 딸려가느냐,
의식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고 가느냐.
그 차이가 엄청나게 크더라고요.
댓글 0개 ▲
2015-02-06 02:49:42추천 2
1. 저는 아직 실존을 깨닫기만 했을 뿐, 실천까지 옮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부럽군요.
댓글 0개 ▲
베스트 게시판으로 복사되었습니다!!!
2015-02-07 22:57:39추천 1
정말 맞는 말이에요.ㅇㅇ
댓글 0개 ▲
[본인삭제]금메달리스트
2015-02-07 23:01:38추천 2
댓글 0개 ▲
2015-02-07 23:03:38추천 1
'나'가 있어야 '세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시는 게 실천에 도움이 되지않을까요? 좋은 글 잘 보고갑니다
댓글 0개 ▲
2015-02-07 23:08:20추천 4
우리가 현재 '55'사이즈라고 생각하는 사이즈가 예전에는 더 작은 사이즈였어요.
예전에 44를 입던 여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자기 사이즈가 55가 되었다는 걸 알고 다이어트를 시작하죠.
다이어트 시장이 확대됩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44사이즈가 되요.
그럼 이제 '의류 시장'이 확대됩니다.....
다이어트와 의류에 신경쓰는 동안,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함께 생각하기는 어려워지죠.
댓글 0개 ▲
[본인삭제]초인군
2015-02-07 23:12:53추천 3
댓글 0개 ▲
2015-02-07 23:30:45추천 0
좋은글 감사합니다 ㅎㅎ
댓글 0개 ▲
2015-02-08 00:22:37추천 0
이런 사유는 어떻게 하면 나오나요. 꿰뚫는 듯 한 정리가 좋네요.
명료한 정리 감사합니다.
다음에 권력이 던지는 그 '스카프' 에 대해서도 한번 더 정리 해주시면 잘 읽을께요.
댓글 0개 ▲
2015-02-08 01:53:13추천 4
나는 내가 아니다라는 라캉의 말처럼, 당신이 원해서도 아니고, 우리가 원해서도 아니다.
누군가 당신이, 우리가 그것을 원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은 인간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지만,
정작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결정하는 것은 과학기술이 아닌 대중심리다.
그리고 대중심리를 결정하는 것은 대중심리 너머에서 대중심리를 조종하는 '권력'이다.
이 부분 정말 공감되네요...
화장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자기만족이라 답하는 사람들에 대해 저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이 의문에 대한 논리적인 해답인 것 같아요.
솔직히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본 사람들의 반응에서 나온 만족이겠죠...
밖에 나갈일 없어도 화장 자주하시는 분이면 자기만족이 맞겠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외출할일 없으면 안꾸미잖아요...
댓글 0개 ▲
2015-02-08 03:19:10추천 3
1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본 자신의 반응은 논외로 치는 건가요 ?

왜 굳이 남의 반응만을 중시하죠 ?

왜 자신의 반응은 논리적 해답이 될 수 없죠 ?
댓글 0개 ▲
2015-02-08 05:04:06추천 0
와.... 너무너무 가슴 속에만 꽁기꽁기하게 엉켜 있던 말인데 정확하게 집어주셨네요. 여러 사람이 이 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신규회원이라 제약이 있지만 여럿의 추천 받았으면 좋겠어요ㅠㅠ
댓글 0개 ▲
[본인삭제]구란줄알았음
2015-02-08 18:28:27추천 0
댓글 0개 ▲
2015-02-08 23:32:35추천 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댓글 0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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