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라는 단어는 무섭다.
아무도 책임 안에 '희생'이 들어 있다고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책임과 희생이 같이 가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건
그 누군가를 위해 내가 가진 일부를 포기해야 하고,
하기 싫은 일도 꾹 참고 해야만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나'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그건 이미 희생이 아닐 것이다.
만약, 내가 없더라도
스스로 일어서고, 먹고, 마실 수 있는 존재라면
그건 절대적인 책임을 피해 갈 수는 있다.
최소한 '나 때문에'저렇게 망가진 것은 아니라는 흔한 자기합리화가 성립되는 거다.
정말 나쁘지만, 최소한 그건 된다.
그러나 아이는, 내가 낳은 아이는 그게 아니겠지.
오직 나를 숙주처럼 사용해야 하고, 아이에게 세상의 존재는 곧 엄마이니까.
난들 내가 낳은 아이를 내 품에 안아보고 싶지 않겠는가.
내 아이를 갖는다는 건
나른한 일요일 오후, 따뜻한 체온을 전하는 내 새끼를 끌어안으며
'이렇게 행복해도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행복할 것 같다.
그렇지만 '나'가 책임지지 않으면, 만약 책임지지 못한다면
그 아이는 온전히 살 수 없다.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기이니까.
아이를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과 구속의 양면이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잠들기 전, 고요한 집에서 홀로 느끼는 사무치는 듯한 외로움과 고독이
내 스스로에게 죽일 듯이 달려들여 죽도록 나를 쓸쓸하게 한다 해도,
그렇다 해도,
남들처럼 못해주는 엄마라는 이름에 짓눌려 무거운 삶을 짊어진 채로
오직 나만을 원망하고, 내 가슴에 파고들며 안기는 내 아이의 눈물을 닦아줄
그런 자신이 내겐 없기에.
-오늘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