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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한 여자친구와 목숨같았던 전 여자친구
게시물ID : gomin_9579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ZmJkZ
추천 : 0
조회수 : 487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12/30 23:34:14
안녕하세요?

폭풍 욕먹을 각오하고 글을 올려요.
혼자서 아무리 해도 답이 없는 고민인 것 같아서요...

2년 전쯤 만난 여자친구가 있어요. 지금은 전 여자친구이지만요..
그 전에도 몇 번의 연애경험이 있었지만, 1년간 정말 절절한 사랑을 했습니다.
매일매일 영화를 찍는 듯이...
서로 굉장히 다른 사람이라서 처음엔 많이 다투고 울었어요.
그러면서도 둘 다 이성을 잃을만큼 좋아했어요. 초기엔 해야할 일들을 제대로 못 했을 만큼.
지금 생각하면 아주 값진 추억이지만, 그 당시엔 꽤나 힘들었던 것 같네요.
하루가 멀다하고 새벽마다 뛰어나가서 만나서 부둥켜안고 우는 식이었으니.
다행히 만난지 1년이 다 되어갈 무렵엔 내 몸같은 존재가 되었어요. 마음이 너무 잘 통하고, 서로를 낱낱이 다 알고 이해하는...
예쁘고 똑똑하고 착한 여자친구가 항상 자랑거리였죠.

그런데 만난지 1년 쯤 지나던 날에 여자친구가 어학연수를 떠났어요.
몇 개월 전부터 예정되었던 일이었지만 갑자기 혼자 지내게 되니 많이 힘들더라고요.
한 달동안은 거의 넋을 잃고 지냈네요.
그러다가 저도 바쁜 일들이 많아졌고, 하나같던 마음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꼈어요.
미움이 쌓이거나 서운한게 많은 것이 아니었는데,
그 전에 너무 뜨거웠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는지도 몰라요.
1년간의 어학연수가 절반정도 지나간 무렵에,
저는 혼자서 감당하기 아주 벅찬 일들을 해결하느라 한동안 밥도 거의 못 먹고 잠도 잘 못자면서 지냈어요.
그리고 그 때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처럼 서로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여자친구가 돌아와서 또 처음 만나던 때의 난리를 쳐야된다 생각하니,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을 붙잡던 끈을 놓아버렸어요.
제가 많이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는지, 미워한단 말도 없이 그 사람은 이별을 받아들였고,
다만 자기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이왕이면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어요.
저는 누군가를 만날 여력이 없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물쩡 그럴 것이라고 이야길 했던걸로 기억해요.
그 당시엔 힘든 마음에 헤어지고 싶어서 무언가 '미워할 거리'를 찾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게 뭔지 기억이 잘 안나요.
아마도 억지로 찾아냈던 거라 별로 말이 안되는 거였나봐요.

하지만 힘든 시기를 꾸역꾸역 넘기고, 혼자 있게되니 그것도 참 외롭더라고요.
전 친구들이 가까이에 전혀 없고, 술자리를 싫어해서 동료들과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 편이었어요.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곤 했는데, 그게 너무 지겨워질 즈음에 우연히 어떤 사람과 친해졌습니다.
외로워서 밥친구 술친구로 지내다보니 정도 좀 들고, 이 사람이 절 좋아하는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솔직히 설레는 마음 보다는 외로움에, 한 편으론 전 여자친구가 돌아와도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너무 힘든 시간이 또 시작될까봐 걱정되어서, 그리고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그 '미워할 거리'가 그때는 유효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성친구로 만나기로 했습니다.
처음 만난 사건이 좀 특이해서 내심 연애도 쿨하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왠걸.. 만나보니 완전 쑥맥에 순진무구한 사람이더라고요. 전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만 만나는 것이 아닌데.
애초에 설레는 마음이 별로 없는대다 제 동기가 순수하지 않은 것 때문에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가지도 않고, 그 좋아하던 스킨십도 왠지 꺼리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노력을 좀 해보고자 천천히 대화를 하면서 하나 둘씩 즐거운 일들을 만들어 갔습니다.
여전히 마음이 생기진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친구같이 좀 더 가까워지긴 했어요.
전 일부러 마음에 없이 잘해주진 않으려고 뜨뜻미지근하게 대했는데, 이 순진한 여자친구는 자꾸 감동을 받는것 같아 보여요.
저를 점점 더 좋아하는게 눈에 보입니다. 미운 구석은 없으니 그만 좋아하라고 밀어내지도 못하겠고요.
(쓰고보니 즐거운 일들을 만드는 것과 뜨뜻미지근하게 대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는 것 같네요.
뭐랄까.. 눈치껏 남자친구로써의 기본 요건만 만족시키자는 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전 여자친구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있었어요.
돌아오면 한번은 꼭 만나야할 일이 있어서 조용히 만났다가 지금 여자친구가 있다는 이야길 하고 덤덤한 척 헤어졌습니다.
사실 덤덤하지 않았어요.
헤어진 이후로 여러번 꿈에 나타났고, 자꾸 생각이 나고,
그러면 안 되는걸 당연히 알지만 지금 만나는 사람과 헤어진 사람을 수시로 비교하고 있더라고요. 그 비교는 대부분 일방적이었고.
전 여자친구에게 연락을 안 하고 있었지만, 오는 연락을 막을 마음도 없었어요.
한참이 지나서 문득 연락이 왔어요. 빙빙 돌려서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길 꺼내는데,
제 마음이 어떤지가 궁금했나봅니다.
간단히 대답을 하려다 고민에 빠져서 하루를 보내고, 결국은 다음날 아침 해가 떠오를 때가 되어서야 기나긴 이메일을 쓰기에 이르렀어요.
바람직하지 않은 줄 알지만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사실 아직 잊지 못한 것 같다고. 그래서 지금 상황에서 마음이 불편하고 머리가 복잡하다고.
곧 답장을 받았어요. 자기도 저를 잊지 못하고 있으며, 좋아하는 마음을 억지로 없애려 노력하고 싶지도 않다고 하네요.
반가운 이야기였지만 마음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그러곤 또 며칠이나 잠잠하다가 밤에 불쑥 전화가 옵니다.
받아보니 술을 좀 마신듯 했어요.
울면서 저를 찾는데 뭐라 달랠 수가 없더군요.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메일 답장엔 앞으로 어떻게 되든 평온한 마음으로 지낼 것 처럼 말해놓곤...;
지금 만나는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는게 아니면 얼른 정리하고 돌아오랍니다. 제 이름을 부르다 잠이 들었어요.
다음날 민망한 소릴 해서 미안하다고 카톡이 왔지만 미안해하지 말라고 얘길 했죠.
사실 그 밤 그 민망한 소리에 저도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고싶다고 대답을 했거든요... 
술 취한 사람이 제대로 기억할 것 같진 않지만

지금 여자친구를 만나다보니 오히려 제가 좋아하는게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어버렸어요.
쉽게 포기해버린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알 것 같고.
내가 누군가의 삶의 이유가 되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몇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게도 다들 돌아가라고 하네요.
남자들에게만 물어봐서 그런건가?
어쩌면 말하는 도중에 이미 속마음이다 드러나는 것인지..
머리는 안된다고 하고있어요.
마음은 그럴 수도 있다고 하고 있고.

매일 끝나지 않는 고민에 빠져서 정신이 분열될까 걱정하는 지경입니다.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니 여기서 여러분께 물어야하는 질문은 뭘까요..?

못나고 우유부단한 오징어의 고민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평온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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