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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미쳤다. 사랑이 섹스를 위한 계약이냐
게시물ID : phil_95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iπ=-1
추천 : 2/5
조회수 : 1032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4/08/30 03:25:33
연애나 결혼이란건 성교를위해 상대를 도구로 전락시키는게 아니라
인간 내에서 일어나는 숭고하고 고결한 감정이다. 감정없는 이성은 기계적 프로그램과 다를바 없다.

저 밑에 글쓴사람하고 댓글단 몇몇은 진짜 사랑이란걸 해봤는지 모르겠다.
사랑하면 "바람피는건 합당한가 아닌가?"가 아니라
"아, 그녀가 지금 내곁에 없구나!" 밖에 생각이 안난다.

정말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경제적 불평등이 아니라 극단적 쾌락과 고통에 의한 인간성의 말살이다.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혁명이 필요할때다.


"모든 해방은 인간세계와 인간 자기 자신과의 인간적 관계의 회복이다."
-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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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30 03:54:06추천 5
자기 말만 맞다고 가르치려 드는 스타일이넹..
댓글 0개 ▲
2014-08-30 06:07:07추천 1
저는 인간이 욕망의 집합체라고 생각합니다. 이성을 바라보는 나의 욕망이 '수컷'으로서 암컷을 바라보는 욕망도 있을것이고 '인간남자'로서 인간여자를 원하는 욕망도 있을것이고 '인간존재' 대 인간으로 바라보는 욕망도 있을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있어서 이 세 욕망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어느하나만 선택할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그리고 사람마다 어느 욕망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 큰지 다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향점라는것도 있지만 본인이 아닌걸 맞다고 할수도 없는것이죠.
댓글 0개 ▲
2014-08-30 10:56:23추천 1
소통하기 싫어하면서 창은 계속 여는 심리는 대체 뭘까. 걍 자기 글 읽는 사람에게 주입시키고 찬성만 해주길 원하는 걸까
댓글 0개 ▲
2014-08-30 12:32:36추천 1
가정을 이루고 싶은 건, 이성이 아닌 본능의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예외적인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의 경우, 후천적 요인으로 본능을 거스를 만큼의 신념이나 환경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구요.
어느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를 낳기 싫고, 평생토록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라는 건 사회-경험적 책임감에 따른 스스로의 선택이라 봅니다.
다시 돌아가서, 가정을 이루고 싶은게 본능의 영역이라면, 본능에 따라 섹스는 자연발생적인 행위겠죠.
헌데 사람의 성욕은 동물의 발정기와 달라 개인차는 있겠지만 항상성을 갖는 것이겠고, 또 쾌감과 교감이란 정서-심리적 이익을 가져다 줍니다.
사회관습과 도덕적인 부분에 있어, 일단 결혼을 하게되면 배우자가 아닌 타인과의 섹스는 지탄을 받거나 죄책감을 가져오기 때문에 내가 결혼을 한다는 것은, 해당 사람과만의 독점적 지위에서의 섹스를 향유하겠다. 라고 결과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섹스를 위해 한다. 라고 하는 것은,
마치 인생을 돈을 벌기위해 산다고 하는 것과 같은, 수단이 목적에 앞서는 오류가 되겠죠.
따라서, 결혼의 근본적 이유 > 섹스, 최소 이정도의 관계는 형성된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예외는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 예외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있는 '결혼'이라는, 같은 단어의 다른 개념을 가진이들의 것이겠죠.
댓글 0개 ▲
2014-08-30 14:11:08추천 1
저도 글쓴이에게 미친놈으로 정의된 것 같아 미친놈이 반론을 써봅니다.

지금 글쓴이가 하고 있는 오류는 마치 코끼리의 코만 보고 코끼리의 특성을 이야기 한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님 몇 명이 코끼리의 코, 귀 등 일부분만 만지고 코끼리의 특징에 대해 자기 말만 맞다고 싸우고 있는 것과 똑같죠.
글쓴이는 사랑이나 연애가 다른 것과 다른 차이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애가 계약이라고 한 사람은 코끼리는 포유류다, 네발동물이다, 눈코입이 있다 등등 다른 것과의 공통점을 통해 연애를 보고 있습니다.
계약과의 유사점이 있기 때문에 계약을 통해 연애를 바라본거죠.
그러니 글쓴이의 이야기와 글쓴이가 비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주 다른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두 같은 것을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글쓴이는 연애를 계약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물신주의에 빠진 사람들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부정의 대상으로 정의한거죠.
그러나 그런식으로 표층만을 바라보다가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우려가 있습니다.
인간의 객체화, 대상화는 단지 자본주의 발달 이전부터 나타난 것일 수도 있거든요.
푸코는 17~18세기 정치경제학의 변화과정을 추적하며, 중상주의에서 중농주의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을 천천히 바라보며
규율사회가 조절사회가 되어간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위험이란 것은 100% 근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달았던거죠.
그 결과 위험이란 것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위험을 관리하는 비용을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위험을 근절하는 것이 아닌 최적화시키기 시작한거죠.
그런 과정과 동시에 나타난 것이 인간이 아닌 '인구'란 인간 종족이라고 푸코는 주장하였습니다.
제가 말의 선후관계가 엉키게 이야기했는데 푸코는 인과관계보다 관련없어 보이는 것이 서로 비슷하게 변화하는 과정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죠.
그러면서 푸코는 중농주의에서 자유주의로 다시 신자유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인구를 어떤 식으로 관리하는지를 분석합니다.
정작 중농주의자나 자유주의자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보이지 않는 손'은 신자유주의를 통해 역사적인 당위성과 자명성을 가집니다.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서점이나 도서관가면 5분 안에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자유주의의 역할은 이 '보이지 않는 손'에 적합한 사회와 제도 만들기, 그러한 인간이 될 수 있는 환경만들기가 된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에 적합한 인간 만들기로 바뀌어버린거죠.
그러다보니 경제학 중심으로 모든 학문이 재편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 중 재미있는 것이 형벌제도에도 새로운 경제적 인간상이 나타나는거죠.
기존의 논리는 사람이 이성적이라 감옥에 가는 것이 손해이기 때문에 범죄를 단념하지만 아닌 사람도 있다라는 식이면
그런거 없다 어떠한 범죄도 사람은 털끝 만큼의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므로 높은 형량은 의미가 있다는 의미로 바뀌게 됩니다.
또한 경제학이 형사정책에 개입하니 범죄체계에 대해서 경제학적인 재편을 시도하는 경우
(마약중독자는 어차피 내놓은 존재니 낮은 가격으로 마약을 시도하려는 사람에게는 시도조차 못하게 높은 가격으로 책정하면 마약범죄 관리가능)도
나타났습니다.
푸코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강의 전에 생명관리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며 인종주의를 정의한 것으로 보아
이 경제학적 인간상에 맞지 않는 사람의 처우는 어떠할지 우리는 말을 안해도 잘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즉, 이런 경제적, 사회적 발전에는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시각이 존재하고 그 시각이 우리에게도 깊숙히 스며드는 내밀화과정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 푸코의 이야기만 정리했을 때에는 글쓴이의 주장과는 별반 다를 바는 없습니다.
오히려 저같은 존재가 신자유주의의 경제학적인 인간상에 매몰되어 경제학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버리는거죠.
그러나 과연 꼭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중농주의의 발전에서 나온 위험이란 개념은 중상주의와 그 이전에도 존재하던 것이었죠. 그때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가 중농주의의 발전에 따라
그것을 제대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 이전에도 범죄자를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고,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종교제의를 지내는 것은 위험을 알았다는 당연한 증거죠.
중농주의를 통해 그 위험을 인식하고 관리할 준비과정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절권력 이전에는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봤을까요?
푸코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푸코의 논의였던 생명관리정치와 통치성의 논의가 완성되지 못하고 끝나버리자 아감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나름대로 푸코의 유지를 이어나갑니다.
말이 그렇지 푸코의 논의를 바탕으로 우스갯소리로 폭주와 마찬가지로(몇몇 학자는 푸코의 변주곡을 연주한다고 표현하더군요.) 논의를 진행합니다.
그러다가 나타난 것이 지난번에도 적었지만 '호모 사케르'였던거죠.
호모 사케르란 단어를 통해 현대의 신자유주의를 바라보겠다는 느낌만 풍기고 끝나버린 책이긴 하지만
이 단어 발굴 하나로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관점이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시기가 아닌 고대까지 확장되어 버립니다.
역사적으로는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논리적 근거의 일부분이 나타난거죠.

푸코가 말했던 생명의 정치화, 그 결과이자 근거인 호모 사케르는 자본주의 그 이전부터 진행되어 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푸코가 자유주의를 논의하며 자유주의는 일종의 자연주의라고 잠시 평가했는데 이를 확장해서 논의하면, 자유주의의 기원도 이 생명의 정치화처럼
그 시작이 앞당겨질 수도 있습니다.

글쓴이의 말처럼 인간성 회복을 위한 혁명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민이 없는 혁명은 성공할 수 있지만 혁명 이후가 문제가 되겠죠.
농담조로 술자리에서나 하는 이야기지만 인문사회계열 사람들도 정치는 쉽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독재를 하면 제대로 다 바뀐다는거죠.
그런데 누가 독재를 하면서 제대로 하겠습니까? 제대로 하는 것은 힘들고 티도 안나지만 권력을 잡고 언론조작하는거는 그것보단 쉽죠.
그냥 정권을 차지하고 언론장악만 해버리면 독재자는 역사상 최고의 성군이 되겠죠. 이 모순적인 상황을 타개하려고 하지만 참 해결하기 힘들죠.
까면 깔수록 장난아니거든요. 정치적인 것인지 사회적인 것인지 욕망적인 것인지 유전학적인 것인지 이제 시작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과 같이 얽히고 설켜있는 분야입니다.
오히려 글쓴이에게 묻겠습니다. 인간성이란 무엇일까요? 단지 자본주의 물신화에 대한 부정으로 인간성은 회복할까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인 것을 잘 알고 물어봤습니다. 오히려 설명을 한다면 잘 못 된 설명을 할 가능성이 높은 부분입니다. 제가 이렇게 긴 글을 적었는데 알맹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거죠.

글쓴이도 마르크스(근데 저 말을 한 사람이 마르크스입니까? 막스 베버입니까?)를 인용했으므로 저도 푸코가 했던 말 중에 자주 인용되는 말이 있어서 그걸 써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위험한 것이다."

오히려 이 말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해주는 말 같습니다.
중농주의가 위험을 깨달은 것은 우리에게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죠. 그러나 위험관리로 나아가면서 인간이 실종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없는 개입보다 적자생존인 자연 그대로 놔두는 것이 더 잘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태되어버린 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죠. 사회까지 자연으로 만들어버렸나 봅니다.
글쓴이가 말한 것처럼 연애를 계약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상대를 수단으로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목적 그대로 바라보면서 수단화시켜버리는 방법도 존재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모든 것은 자기 책임이죠. 자기 결정에 따라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당수 사람들은 이렇게 자유로운 세상에서 자유를 느끼기 힘듭니다. 재미있죠. 칸트와 자연의 적자생존이 비정상적 기형적으로 엉켜버린 형국이 되어버렸습니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하였는데 왜 홍시라고 물으시면..." 이라는 대장금의 대사가 있었죠.

경제학의 발전으로 우리는 경제학이 아닌 부분도 경제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물론 신자유주의에서의 경제학의 타학문 침투의 영향을 받았겠죠.)
항상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의 새로운 면이 보이기 시작한거죠. 그렇지만 이 새로운 면도 그것의 한 내용입니다. 새로운 면이지 새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대로 가다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해서 애초부터 금지시켜야 한다는 것도 잘 못 된 말 같습니다.
우리가 자주하는 예시(칼과 자동차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그러니 쓰지 말아야 할까?)와 같은 것이죠.

제가 글쓴이에게 미친놈으로 정의받고 진짜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 부분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했던 것을 다른 사람이랑 비교해보면 연애라고 하기엔 뭔가 모자란 것 같고,
지금보다 상당한 부분에서 인격적, 지식적, 지혜적 성숙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제 상태가 일본 아키하바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구요.)이 되어버렸는데
전 오히려 글쓴이에게 "인간을, 자기자신을 사랑해본 적은 있습니까?"라고 묻고 싶군요.
생각이 다르다고, 가치관이 다르다고 서슴없이 미친 놈이라고 규정하고 세계에서(자기 자신의 세계이긴 하지만) 배제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의 그 수많은 감정 속에(좋은 감정 뿐만 아니라 나쁜 감정, 이상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제가 미친놈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일부분만 이야기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수많은 감정을 우리에게 사실대로 다 털어놓을 이유는 없죠.(그러면 어제부터 저만 이상해지게 됩니다.)

그렇다는 것과 그래야 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즉 존재와 당위는 다른 것이죠.
글쓴이는 자신의 당위를 가지고 존재를 말살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손'이 잘 작동되어야 하기 때문에 인간을 바꿔야 된다고 하고 실제로 바꾸고 있는 신자유주의자들과 다를 바 없죠.
당위란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천부인권, 사실 근거는 없습니다. 그래야 한다는 선언이죠.
인민, people란 단어 속에 가난하고 배제된 자의 의미가 담겼다는 아감벤의 해석을 가져오면 그 당위에 어느 정도 근거를 갖게 합니다.
그러나 다른 어마어마한 것이 당위란 이름을 같고 우리에게 접근하고 조종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자의 당위는 무서운 것이고, 약자의 당위도(강자가 되었을 때의 생각이 없다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바라본다는 관점, 있는 그대로 한번 본다는 개념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데올로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역할을 하지만 이데올로기로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도 설명할 수 없지만 보인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당위에 맞지 않다고 그런 부분을 무시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또다른 권력이 되어 권력자의 행동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세상의 변화는 제대로 된 의도를 통해 변화하기도 하지만 그런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발단이 되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겠지만 여러 분탕질이 존재하는 이 현실 속에 관용이 필요없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용이 필요할 때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상 진짜 사랑은 해본 적이 없는 감정없는 자본주의 물신주의 아키하바라에서 자주 볼 만한 안경돼지가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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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삭제]Exupery
2014-08-30 15:59:24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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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30 16:01:54추천 0
인간이 세안을 하면서 명품세안제을 구매하여 사용하고 다시 비싼로션등의 기 능성화장품을 수십가지씩 덧칠해도 얼굴피부에선 향기가 날때 항문피부에선 똥을 쌉니다. 비싼화장품을 바른다고해서 똥을 안싸는 것처럼 착각해선 안된 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인간이기 이전에 짐승입니다.
물론 항문이 더럽다고 얼굴에 똥을 묻혀도 상관없다는건 아니죠. 얼굴은 얼굴이고 항문은 항문이라는겁니다. 그 둘 모두가 인간의 신체라는걸 잊지 말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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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30 17:08:45추천 0
1 인간을 동물(본능)이라는 '보편자'에 종속시킨 상태에서 논리를 진행하셨는데 제가 '사회적 계약'을 강조했던 까닭은 '개체' 하나하나에 더 의미를 두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성을 얼굴에, 본능을 항문에 빗대신 것 같은데 상황에 따라 얼굴이 우선일 때도, 항문이 우선일 때도 있는 것이지 얼굴 표정 얘기하고 있는데 똥꾸멍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면 맞는 말이라도 공감하기가 힘듭니다.
(글쓴이의 글과 저의 댓글을 바탕으로 작성한 댓글이니 무슨 말인지 이해 안가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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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30 17:12:11추천 0
글쓴이 님은 '계약'을 단순히 차용증이나 매매증서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는 듯이 보입니다. 여기는 인문학 게시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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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30 17:22:16추천 0
'정말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경제적 불평등이 아니라 극단적 쾌락과 고통에 의한 인간성의 말살이다.' 이 문구는 굉장히 울림이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도 철학게에서 냉정한 척 하느라 인간미를 유실한 부분이 있지않나 돌이켜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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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삭제]더원영점오
2014-09-04 13:02:09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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