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성과 남성은 왜 싸우는가?
남녀 관계에서 생기는 어려움들이 본질적으로 성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듯 ... 그러나 그건 그렇지 않다. 남녀는 근본적으로 인간 사이의 관계이다. ... 남성과 여성간의 관계는 승리한 집단과 정복당한 집단 사이의 관계로 정의할 수 있다. 남성이 지배하는 부권사회에 앞서 모권사회가 존재 ... 소수의 원시 종족에서만 일종의 고대 모권적 형태를 띤 잔재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모권제는 자연적인 애착관계, 자연적인 평등, 사랑에 더 역점을 두고, 부권제는 문명, 사고, 국가, 발명, 산업 그리고 많은 방식에서 진보의 요소에 더 가치를 둔다. ... 부권사회에서 발전되어 나온 여성 본성에 대한 통념들(감정적, 허영심, 어린애 같다...)은 너무나 분명하게 현실과 어긋난다. 차이들에 대한 생각을 접고 상투적인 견해들을 잊어버릴 때에만 우리는 상대방 자체가 목적이 되는 (남녀)평등의 의미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프롬,「남성과 여성」중에서-
-'남녀는 왜 싸우는가'에 대하여 프롬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성적 지배에서 그 답을 찾는다. 게이트 밀렛의 말하는 '성의 정치'가 끝나지 않는 한 남성과 여성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과 마찬가지로 프롬은 통념화된 여성성이 가부장적 부권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는 시몬드 보바르의 주장처럼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입장이다. 프롬은 모권사회에서 작동하는 여성적 가치를 그 사례로 제시한다.
그러나 사실 여성과 남성은 분명히 다르다. 인지적 측면이나 가치지향에서 차이를 거부할 수가 없다. 그것은 진화생물학이나 성인지학적 탐구들에서만이 아니라 '여아와 남아'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실험과 '육아 경험'에서도 얼마든지 확일 할 수 있다. 연애를 하면서, 데이트 과정에서의 싸움이나 부부사이에서 싸움이 단순히 두 남녀의 '인격'과 '성격'에서 만이 아니라 성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안다. 소위 돌봄의 윤리를 주장하는 여성주의자들은 남성과 다른 여성 고유의 가치지향을 재평가하며 그것을 인간과 사회운용의 중요한 규범으로 설정할 것을 주장하지 않는가? 육체, 감정, 자연과 같은 남성적 시각에서 폄하되었던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평가하고 공감, 배려, 공존과 상생, 평화, 돌봄과 같은 여성적 가치를 새로운 사회의 대안가치로 제시한다.
프롬은 남녀평등을 인간 사이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여성주의적 시각을 비판하면서 '차이'들의 실현을 강조하며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극성과 차이들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발현시키도록 할 때 남성과 여성이 싸우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셈이다. 차이와 대극성의 인정과 그것의 실현은 다른 한편으로 '인간을 타자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간주하는 것이며 싸움을 종식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프롬은 '차이와 대극성의 본존'에서 싸움의 종식을 보지만 그것으로 인한 '긴장'과 '갈등'의 내재적 가능성은 놓치고 있다. 대극성과 차이의 실현 사이에 '수많은 지뢰'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프롬의 해결책은 싸움은 줄일 수는 있지만, 종식시킬 수 없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싸움은 본질주의 입장이든 젠더 입장이든 그 사이에 어떤 지점을 점유하려는 지속적인 과정이고 그러한 싸움은 남성과 여성이 존재하는 한 끝나지 않는 과정이다.
출처: '인문고전 아카데미'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