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말 안 듣는 거라봐야 고작 경고잖아." "그게 그거지." 답답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빠듯한 현실, 그 이상의 죄책감은 한 층 더 그를 압박했다. 머리만 복잡하게 생각하니 다시 한번 더 흡혈이 당겨왔다. 이번엔 서형이가 흡혈을 그리워 했다. "피가 필요해." "그럼 니가 알아서 타겟을 골라." "아까 먹던 고기는.." "다 먹었잖아." 암담했다. 이젠 스스로가 피를 원하게 되다니, 아예 자발적으로 흡혈귀를 돕는것과 뭐가 다른가. 그렇게 그는 또 하나의 성분을 위해 밖을 나갔다. 이젠 전혀 걱정할 게 없었다. 때 마침 밖은 밤이었다. 또 낮에 보던 불량배가 있었다. 마침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저걸 흡혈하는거야..!' 가까이 다가가자 불량배들은 기절초풍을 하며 사과했다. "미안해, 때리지 말아줘. 부탁이야, 돈 줄게. 제발 그냥 지나가 줘."이렇게 몸 붙들고 애원하니, 흡혈할 이유가 사라졌다. '이제와서 저렇게 싹 싹 비니까 할 수가 없잖아.' 그는 다시 터덜터덜 길을 걸었다. 피가 모자라니 힘이 더 없이 빠졌다. 이대로 가다간 주저없이 그는 죽음에 도달한다. 차라리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희생하느니 차라리 자기가 희생되는 게 낫다고 말이다. 그 때였다. 어디선가 말 다툼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칼로 찌르는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무슨 일이지..?' 혹시나 생각에 지켜보니 한 남성이 여성을 무 차별적으로 찌르는 것이다. 여성은 비명을 질렀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래도 무 차별적인 칼 놀림은 멈추지 않았다. 김서형은 바로 뛰어 들어가 얼굴을 가격하고 흡혈을 하기 시작했다. 나쁜 놈을 흡혈 하는 거라면 죄책감이 그나마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 판단부터가 무른 것이다. 그건 단순한 '명분잡기'에 불과했다. 그도 흡혈귀와 다를 바 없는 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