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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16-3)
게시물ID : lovestory_960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0
조회수 : 149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5/02/13 19: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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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16. 자주독립 그리고(3)



 뒤주 하나의 지붕을 다 뜯을 때쯤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손흥석이 가족이 몇인지, 어른인지, 아이인지를 감안해서 분배를 했다. 건국연맹에서 토지의 공정한 분배에 대해 들은 바를 응용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어찌 불만이 없겠는가. 그런데도 더 달라는 사람은 없었다. 왜인들과 부왜분자들을 찾는데 동참하느라 오지 못한 사람들 몫은 따로 챙겨 놓았다.  

 황보뿐만이 아니었다. 김중을 비롯해 건국연맹에 관여한 지주 모두가 곳간이며 뒤주를 열어 곡식을 풀었다. 부왜분자들이 가지고 있던 양식도 몰수해 분배했다. 그러나 추수 때까지는 한 달도 넘게 남은지라 이 또한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푸성귀가 흔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건국연맹에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가 식량이라는 것에 모두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었다. 어차피 식량이 바닥인 왜국에서 빼앗아 오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베 등 아직 처형하지 않은 총독부 관리들을 통해 왜국을 압박하는 한편,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외교에 총력을 기울였다. 

 식량문제는 왜인 집결지에는 더했다. 붙잡은 왜인들에게서는 식량이 될 만한 것은 싹 다 압수했다. 그리고 노약자 우선으로 배급을 시작했다. 건강한 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배급에서 제외였다.

 김구는 늘 강조했다. 우리땅에 있는 왜인은 모두 적으로 간주해야 된다고. 선의로 우리땅에 온 왜인은 거의 없다고. 그랬다. 민간인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좇아서 왔지 선한 목적으로 조선에 온 왜인은 거의 없었다. 농민이라도 총독부의 내지인 정착 정책에 따라 동척이 빼앗아 놓은 토지를 저리 대출을 지원받아 헐값으로 불하받았다. 그런 까닭에 왜인 중에 빈농은 없었다. 최하 머슴 하나는 부릴 정도의 농지는 갖고 있었다. 뼈빠지게 고생하지 않아도 걱정없이 먹고 살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사업가는 물론이고 장사꾼도 총독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잘 먹고 살았다. 이 모두가 조선 민중을 착취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 그러니까 너희놈들은 전부 우리의 적이다. 우리는 너희놈들과의 전쟁에서 이겼다. 이제 너희놈들과 우리의 입장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너희놈들이 우리에게 그동안 어떻게 했나? 앞으로 우리가 너희놈들에게 당한 것보다 몇 배로 갚아주겠다. 우리 동포들은  50년을 너희 왜놈들 때문에 굶주리고 살았다. 지금까지 너희놈들은 배고픔이란 걸 모르고 살았을 것이나 이제 너희놈들이 굶을 차례다. 우리는 너희놈들이 다 굶어 죽어도 눈도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너희 왜놈들이 우리에게 빼앗아 간 식량 전부를 되돌려주지 않는다면 너희놈들 전부 굶어 죽게 될 것이다. 우리 먹을 양식도 모자라는데 우리가 너희놈들에게 주겠는가? 너희놈들의 왕이 과연 너희놈들을 생각한다면 제가 굶더라도 보내줄 것이요, 보내주지 않는다면 너희놈들 목숨보다 제 배 채울 일이 우선인 것이니 굶어 죽더라도 우리 원망은 하지 마라.“ 

 왜인들을 감시하는 청년단원의 말이었다. 민간인이라도 모두 왜적으로 취급하라는 건국연맹의 지침에 따른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도운 왜인들은 가려내서 독립운동가에 준하는 대우를 하라는 지침도 있었다.

 배급에서 제외된 왜인들은 어쩔 수 없이 기약도 없는 단식을 시작해야 했다. 물은 흔했지만 소금 구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세계대전 내내 치솟던 물가는 마침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8월 9일, 총독부가 왜인들에게 귀환 자금으로 나눠주기 위해 엄청난 금액의 지폐를 비밀리에 공수해 온 것이었다. 패망을 코앞에 두고 종이 조각이 될 돈을 유통시킨다는 것은 마지막까지 조선을 쥐어짜겠다는 악랄한 수작에 다름 아니었다. 총독부는 왜인들에게 무상으로 돈을 나눠주면서 본국에서는 조선은행권을 쓸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무조건 다 쓰고 귀환하라는 말이었다. 이 지폐들은 거의 골동품을 사는데 쓰여졌다. 별것도 아닌 호리병이 쌀 열 가마니 값에 거래되는 일도 있었다. 시중에 풀린 통화량은 어마어마했다.   

 건국연맹에서는 극심한 인플레를 잡는 길은 한시라도 빨리 신권을 발행해 유통시키는 동시에 구권을 폐기하는 길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거기에 더해 ‘한국은행권’을 발행해 국민 1인당 10만 원씩 공평하게 나눠주어 그간 더 고통받았던 민초들을 위로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국내의 국민 2500만과 앞으로 귀환이 예상되는 500만의 동포 그리고 은행들의 대출준비금까지 최소 4조원이 필요했다. 현금을 많이 보유한 지주나 자본가들의 피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돈을 어디서 찍느냐는 것이었다. 서울의 조폐창은 이름뿐이었다. 1910년 이후에는 쓴 적이 없었다. 그간 ’조선은행권‘을 왜국에서 찍어왔던 것이다. 그나마 지폐 인쇄기는 있지도 않았다.   

 소련 빼고는 아직 공식적으로 연락이 되는 연합국들은 없었다. 미국은 강성종이 있었지만 아직 그가 나설 단계가 아니었다. 중국은 내전 중이라 원조를 요청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왜국에서 화폐를 찍을 수는 없었다. 결론은 소련이었다. 

 “두고 보시오. 미・소와 잘 교류하면 왜나라와 동포들 송환 문제나 배상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수도 있소......“

 근자에 들어 건국연맹 지도부 인사들에게 자주 하는 여운형의 말이었다. 이번 세계대전을 계기로 팽창주의에 탄력이 붙은, 상극인 미・소 두 체제로서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서로 포기를 할 수 없게끔 됐다는 것이었다.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영 기울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균형을 맞추는 외교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팽팽한 실은 언젠가는 터지므로 그때까지 부강을 향해 나아가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나라에 배상만 제대로 받으면 우리나라도 바로 열강이오. 우리 그때까지 균형을 잘 잡읍시다!”

 늘 이렇게 끝을 맺는 것이었다. 

 여운형을 비롯한 건국연맹 관계자 여섯 명이 소련 영사관으로 갔다. 골돌린이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앞전 성명에서도 밝혔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에 큰 도움을 준 귀국 국민들과 귀국 군대와 귀국 정부와 스타로프 대원수 각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오.”

 ”선생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스타로프 대원수 각하에게 꼭 전해 드리겠습니다.”

 서로 외교적 수사를 주고받았다.  

 “내가 모스크바에 갔을 때가......”

 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 인민대표자 회의에 참석했던 인연을 강조하면서 여운형은 인플레의 질곡에 빠진 위급한 한국의 경제를 설명하고 식량 원조와 ‘한국은행권‘을 소련 중앙은행에서 발행해 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네멘스키로부터 한국 정부를 적극 지원하라는 스타로프의 지시를 전달받은 골돌린은 곧바로 본국으로 전문을 보냈고, 오래지 않아 회신이 왔다. 

 “내일 아침 여의도로 항공기를 보낼 테니 실무자들을 태워 보내랍니다. 제조한 화폐도 수송기로 보내주겠답니다. 도합 5일이면 완료될 거랍니다.”

 “고맙소, 고맙소이다!”

 “별 말씀을요...... 우리 공화국은 한국과 영원한 우방이기를 원합니다. 우리 공화국 인민들은 한국 인민의 편입니다. 한국 인민들이 굶주려서는 안 됩니다. 식량도 최대한 지원한다는 것이 우리 공화국의 방침입니다. 스타로프 대원수 각하의 특별 지시가 있으니 우리 공화국이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요청하십시오.”

 “고맙소. 한국 국민들은 귀국의 국민들과 스타로프 대원수 각하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을 거라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왜국에 대한 분할 신탁통치를 귀국이 주도해 주기를 요청하오. 왜국은 가만 두면 반드시 또다시 세계 평화를 위협할 악독한 족속들이오.”

 ”일본을 분할해서 신탁통치하는 문제는 저희 정부가 미국과 잘 협상하고 있으니 기다려 보시지요.“

 “또 우리나라가 50년간 왜국에 강점당한 피해를 배상받는데 귀국 정부가 도와주기를 요청하오.”

 “그 문제도 당에 건의하겠습니다.”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하는 문제는 실무자들이 따로 만나기로 합의를 봤다. 스무 날 가까이 노독에 시달릴 각오를 했던 재정위원회의 윤대호와 김유성은 화색이 돌아왔다. 여운형은 골돌린의 손을 잡고 흔들어 고마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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